동네는 시내를 중축으로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5분 정도 걸으면 구멍가게와 여러 상가들이 늘어서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살 곳은 겨우 단칸방과 간소한 주방이 있는 집일뿐이다.
이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을정도의 크기였다.
화장실은 겨우 밖에 나가야 볼 수 있는데 나는 여전히 화장실이 밖에 있다는 사실이 무섭고 내키지 않는다.
이모를 처음 만난건 부산에 도착해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이모의 집을 두드렸을 때였다.
갈색빛이 도는 얕고 싸구려 냄새가 풍기는 문이였다.
그 문을 열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아는 신발이 놓여있는 현관문부터 보여야 하는데 그저 간소한 주방과 겨우 한발자국 넘으면 방한칸이 나올뿐이다.
거기에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오빠가 있었고, 이모도 어머니와 같이 남편없는 한부모 가정의 부모의 자격으로 살고있었다.
내가 본 오빠는 유승준의 노래를 좋아하는 여느 청소년과 다름 없었고, 이모는 어머니와 같이 날카로움은 없는 인자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와 이모는 일찍이 부모님을 떠나보내서 그런지 사는 형편이 전혀 넉넉치 않았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의지할 수 있는 피붙이라곤 이모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모 말고는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 조차 없는 단칸방 살림
알고보면 그 시절에 몸을 가눌 수 있는 공간이 단칸방이라도 있을 수 있다는게 어쩌면 다행이였을지도 모른다.
이모는 홀로 아들을 키우며 그 작은 방안에서 오빠를 키웠으리라 짐작했다.
어머니와 나를 맞이한 이모의 모습은 반가움이였다.
그 반가움속에 나는 낯설기만 했고, 유일하게 아는 오빠의 장성한 모습이 여전히 쟁쟁할 뿐이다.
나는 이모집에 맡겨졌고, 이모와 오빠와 함께 그 작은 공간에서 지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부재가 많았다.
여자 혼자서 자식하나 거둬 먹일려면 일을 했어야 했기에 어머니는 식당일을 나갔다.
집에서 멀지 않은 시내에 위치한 식당에서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이모집에서 지내다 어느날 어머니와 나는 이른 새벽 그집을 나왔다.
고등학생인 오빠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다 화가난 오빠의 뒷모습을 뒤로 나는 그 집을 나왔다.
이유는 모른다.
나는 고작 5살 정도였을 거고, 날카로운 파편처럼 뇌리에 박힌 기억들이 조각조각 이기에 나는 모든 상황을 짜맞출 수 없다.
그 새벽 이후로 나는 한치앞도 예상 못했다.
그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새벽공기를 맞으며 도착한 곳이 낯설지만 큰 집이였다.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살게될줄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알았을까?
여전히 나는 그 새벽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따뜻한 느낌이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늘 어머니의 등을 볼 수 있는 내 작은 모습만 생각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