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은 위층에 살았고, 그 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은 2~3명 정도였다.
드디어 어머니와 둘이 지낼 공간이 생겼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단칸방은 사람이 살곳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머니가 깨끗하게 집을 청소하더라도 바퀴벌레가 제집인듯 기어다니곤 했다.
어머니는 다시 집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어머니는 그 식당의 번호를 종이에 적어주고 일을 나가곤 했다.
어머니는 밤늦게 일을 마치고 들어왔고, 나는 다시 이모집에 맡겨지곤 했다.
사실 이모집은 밤에 가서 자고 나오곤 했고, 낮에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며 놀곤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날 어머니가 어차피 없을거라 생각해 선생님께 어머니가 없다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선생님이 같이 집까지 들어가주었고, 그제서야 집안에 어머니가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뻐했었다.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대부분 나는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 어린 나이에 그 작은 단칸방에 혼자 있었던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남이보면 부모가 자식을 내팽겨치고 학대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우리 어머니는 나를 맡겨놀 곳이 없었기에 그리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한날 집에서 혼자 자고 저녁쯤에 눈을 떴다.
바퀴벌레가 이불위를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자 깬것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 무서워 그저 바라볼뿐이었고, 화장실에 가고싶던 나는 작은 주방에서 소변을 보려고 했으나 그 하수구 틈사이에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것을 보고 기겁하여 방안으로 수건을 가지고 들어와 그 위에 소변을 보았다.
배고픔에 냉장고를 여니 내가 꺼내먹을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고, 고추장을 꺼내 흰밥에 살짝 비벼 먹는게 전부였다.
바퀴벌레와의 싸움에서 이기진 못했지만 굶주린 배는 채울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밤의 두려움은 어린 내가 이겨낼 수 없었다.
그 텅빈 집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큰 소리로 펑펑 울었다.
집주인이 그 사실을 알게되었는지 나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집주인 손녀, 손자들인지 그 틈에 나도 끼어 이불 틈 바구니에 앉아있었다.
잠을 자진 못하고, 세상 모르게 자고있는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어쩌다 그런 신세가 되어 그런 부분을 부러워 해야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서글픈 감정이 든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내가 집주인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속상했는지 마음에도 없는 화를 내었다. 그때는 내가 왜 혼나야 되는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자기가 곁에 있을 수 없는 사실에 자신에 대해서도 화가 났을 것이다.
나는 동네 아이들과 잘어울리긴 했지만 나의 뚱뚱한 모습을 보고 돼지라며 놀리곤 했다.
그 놀림에 울며 집에 들어온 나를 보며 어머니는 문을 열고 한소리는 하셨지만 그건 그 때뿐이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잘놀던 언니가 더이상 나와 놀아줄 수 없다며 나를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고, 그 틈에 낄 수 없었다.
나를 왜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모집에서 잠을 자다가 집으로 다시 가고싶어 이모에게 말을 하고 나왔다.
겨우 5~6살인데 그 새벽에 정처없이 걷다가 남의집 계단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려보다가 집에 들어가곤 했었다.
다른 아이들과 미장원 앞에서 놀다가 누구의 어머니가 더 빨리 퇴근하고 오는지에 대해 시합한적이 있다.
여러명이 쭈구리고 앉아 우리 어머니가 빨리 올것이라며 티격태격 하는 사이 중간에 앉아있던 친구의 어머니가 먼저 오셨고, 조금더 기다리니 그제서야 나의 어머니도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린 내게 있어 어머니의 퇴근은 반가움이었다.
우리 집에 오는 낯선 아저씨가 있었다.
아마 우리 어머니와 만나는 사이였던 것 같다.
아저씨는 우리집에 올 때마다 내가 좋아할 것같은 물건들을 가지고 왔었다.
한번은 스케치북을 10권 정도 뭉태기로 사오셔서 내게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단칸방이다 보니 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기에 아저씨가 꾀를 내어 나에게 천원씩 주며 슈퍼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라고 하셨다.
그 돈을 들고 슈퍼에 가서 메론모양 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사먹었고, 슈퍼갔다 곧바도 들어가면 다시 돈을 쥐어주며 내보냈다.
사먹는것도 한계가 있으니 5분거리에 있는 횡단보도 길가에 자리잡은 스티커 사진기 앞에 들어가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하며 거리를 쏘다닌 적도 있었다.
한번은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에 전화를 걸었는데 낯선 아저씨가 받았다.
아무래도 그분은 식당 주인분인 것 같았는데 내가 어려서 말을 웅얼웅얼 해서 그런지 우리 어머니 이름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싱겁게도 어머니와 통화를 하지 못하고, 끝낸 기억이 있다.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어머니와 이집에 들어오고 나서 둘이 놀이동산을 간적이 있다.
어머니가 나에게 햄버거를 사주었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 그리고 여러개의 놀이기구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참 좋았었다.
나는 늘 어머니와 함께하길 바랬지만 먹고사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부재는 늘 나를 외롭게 만들기도 했다.
아마 어머니도 나를 데리고 온 후부터 자식을 혼자 키우는 것이 정말 힘들고 고달픈걸 몸소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와 단둘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건 참 행복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는 그런 어머니를 사랑했고, 늘 기다렸다.
어머니 또한 나를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