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밤 잘 채비를 하고 어머니와 함게 이부자리에 누웠다.
이부자리에 누웠지만 곧바로 잠이 들지 않았다. 딱히 어린아이가 뭔가를 걱정하고 있어 잠을 못이룬게 아니였다.
내가 잠들려는 차 어머니가 자꾸 옆으로 가라고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누울 공간이 부족했는지 자꾸 벽쪽으로 더 가라고 야단이었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옆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벽사이로 기어가는 바퀴벌레 걸음거리 소리가 내 작은 귓가에 크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사정을 모르는 어머니는 자꾸 옆으로만 가라고 소리를 쳤고, 나는 무서운 마음에 절대 가지 않겠다는 나의 의사를 전달했다.
어머니는 인내심이 폭발했는지 단박에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앉아 나의 작디 작은 오른쪽 뺨을 갈겨 버렸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이내 뺨을 타고 무색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으며, 소리내어 엉엉 울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어두웠던 작은 단칸방에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불 스위치를 올렸고 다급하게 전화기로 손을 뻗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전화를 건 사람은 아버지 였다.
어머니는 통화를 하며 불같이 화를 내었고 단지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나를 데려가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화에 치민 전화통화는 끝이났고, 나는 기억을 뛰어넘은 다음날 기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어머니는 간식거리를 잔뜩 싫은 승무원에게 도시락을 사들고선 어린 내게 주었다.
어머니는 창밖만을 응시한채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나는 시장이 만찬이라고 무릎을 꿇고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이 도시락이 어머니가 나에게 무언가를 사주는 마지막이었다.
그 날 먹었던 도시락의 구성따위는 내 기억속에 있지는 않다.
다만 신나게 무릎꿇고 앉아 먹던 그 도시락은 꿀맛이었던건 기억한다.
나는 영동역에 도착했고, 마중나온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머니는 영동역에서 내 손을 놓아버렸고, 단 한번도 뒤돌아 보지 않았고 영동역 안으로 몸을 숨겨버렸다.
나 또한 어머니의 품을 떠나 붙잡으려 달려가지 않았다.
내 손은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달려있었다.
끝으로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영동역에서 내게 등을 보이고 돌아선게 마지막이었다.
어머니의 얼굴 형태는 전혀 기억에 없다.
단지 몸이 통통했다는 것 밖에는 말이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본다는건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그때 알았더라 해도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른들끼리 나눈 대화속에서 그들만이 선택권이 있었고, 어린 나에게는 그들이 보호자라는 명분으로 그들의 뜻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한번 집을 나갔고, 집 나간뒤 나를 데리러 왔을때 이렇게 다시 영동으로 돌아올줄 몰랐다.
무엇이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것인가
왜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했던가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것이 힘든건 알겠지만 어머니는 내 손을 두번이나 놓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어렸을 때 경험하고 나니 이토록 원망스런 마음이 들기도 하다.
애초에 자신이 데려가려고 했을때 끝까지 책임져야 하지 않았나.
어른들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지만 이미 이혼 재혼 두번의 버림 어린 내게 이토록 살아가는데 혼란과 슬픔을 안겨준것이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의 얼굴과 나와 함께 살았다는 그 느낌과 희미한 기억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얼굴과 내가 죽을때까지 기억할 수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만이 유일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