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쌀쌀한 뒷모습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해주듯 나는 자연스럽게 아버지 품에 안겼다.
영동에 다시 돌아온건 1~2년 만인 것 같다.
새 어머니는 아주 예뻤고 친절했다.
영동역을 벗어나 내려온 곳에는 작디작은 티코 한대가 서있었고, 수동으로 내려야 하는 창문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새어머니의 무릎에 안착해 있었다.
어머니와 헤어지고 울거라는 일차원적인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새어머니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말이 나왔다.
새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아버지가 모는 티코를 타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자장면 집이었다.
맞은편에는 새어머니가 앉아있었고, 옆에는 아버지가 앉았다.
자연스럽게 내 앞에 놓여진 자장면 그릇은 그리 탐스럽게 먹고 싶은 비주얼은 아니었다.
그릇에 코박고 먹을거라는 기대와 달리 이상하게 입맛이 없었다.
아마도 기차에서 먹은 도시락이 나의 작은 몸뚱이를 배부르게 한것같다.
자장면을 먹고 발길을 돌린 곳은 친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신 집이었다.
새어머니는 내가 덮고 잘 이불과 베개를 받으러 간다는 것이다.
이불과 베개를 받고 들어온 낯선 집에는 헤어졌던 오빠와 새어머니가 데려온 오빠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려는 과정속에 발을 들였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아버지가 말하길 만약 새어머니가 나를 데려오는 것에 반대를 했다면 데려오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새어머니는 흔쾌히 나를 받아 준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통화할 당시 데려가지 않으면 고아원에 버리겠다고 협박한 사람이다.
물론 나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하면 자신이 키울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감정이 격해져 한순간에 그런 결정을 한 어머니가 한편으론 이해는 되지만 이해할 수 없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건 온전히 어머니와 아버지의 선택이었지 나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늘 어떤 선택을 하던 신중하게 생각해야 된다는 것
차라리 그때 아버지와 살게 냅뒀더라면 더럽고 구질구질한 경험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꿈과같이 몰래온 손님처럼 나를 괴롭히는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발작처럼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나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지만 한편으론 용서는 한다.
부디 현재는 따뜻한 남편과 어머니를 보호해줄 수 있는 자식들과 행복하게 살고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