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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6년전 쓴 글)

강연 회사 대표가 들려주는 교육 이야기

'거리의 교육자'가 되겠노라 다짐하고 학교를 그만둔지 2년이 다되어 간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교육'이라는 부문에 대한 기다가 너무나 컸었다. 아니, 기대가 컸다는 표현보다는 현실이 너무나 차가웠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교육'이라는 현상을 둘러싼, 학교. 그 학교 안에 있는 선생님, 학생, 교과내용 모든 것이 삐걱거리고 있었다.




교육과 관련된 그간의 여러가지 생각 중  가장 먼저 소개할 내용은 '존경'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던차에 TV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특성화고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해서, 일선 현장에 바로 취업을 연계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출연한 아이들의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각 분야의 '장인'으로 불리는 기업체의 대표들이 직접 노하우를 전수하고, 학생들을 평가해서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형태의 포맷이었는데, 출연한 아이들은 진심으로 '존경'을 표했다. 어떠한 꾸지람에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이 없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스승의 마음에 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마저 보였다.

동일한 수준의 꾸지람을 학교에서 들었다면?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리를 박차고 교실을 나갔거나, 선생님들께 대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TV속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의 모습은 카메라 앞에서 조작된 모습이 아니었다.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때부터, 무엇이 존경을 이끌어내는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고민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은 '지식과 정보의 제공'여부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통했던, 과거 조선사회를 생각해보자. '글'을 배울 형편이 되는 집의 아이들은 글선생을 집에 들이거나, 서당 등의 교육기관을 통해 글자를 익혔다. 문맹률이 높았던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글'이라는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즉,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스승 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에 필요한 지식을 전수해줄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는 점은 자연스럽게 '존경'을 이끌어냈을 것이다. 해방 이후부터 고도성장기까지를 생각해보자. 부모님은 대부분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주변 어디를 봐도 새로운 학문과 기술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은 '교사'밖에 없었다. 지식 전달의 유일한 창구였기에 '교사'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만큼 '지식'의 독점은 엄청난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최신의 정보와 지식을 배울 수 있다. IT기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몇 번의 검색만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교과서보다, 선생님의 필기보다 훨씬 자세하고 정확한 최신의 지식을 실시간으로 배울 수 있기되며, '지식'을 소수가 독점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특히나 학문의 기초적인 영역의 경우 더욱. 학문의 최신 흐름은 소수만이 독점하고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의 경우 독점의 벽은 허물어졌다.  더 이상 학교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아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학교는 더 이상 맹목적으로 '존경'을 요구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TV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모습을 보인 이유는? 현업의 대표들은 교과서나 인터넷에서는 배울 수 없는 지식을 전수해주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의 최신, 최고의 지식을 제공해주는 유일한 통로. 좋던 싫던 '존경'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학교가 계속해서 존경과 존중, 사랑이 넘쳐나는 공간(꿈같은 말이다)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최신의 학문경향을 공부해야할까? 아니다.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필요없는 내용일 수 있다. 어차피 학교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장소에서, 영감과 사고를 자극해줄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해야한다.

역사적 지식 (예컨대 미국의 독립연도, 프랑스 혁명의 정신 등)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현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곳은 없다.

문학작품의 집필배경과 작가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지만, 그 작품의 내면에 흐르는 인물간의 갈등상황과 인간에 대한 이해에 대해 생각하 수 있도록 지도하는 곳은 거의 없다.


모든 교과가 마찬가지다.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 그 이면에서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 그 불꽃을 틔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단편적인 지식의 나열 속에서 내가 생각해야할 것을 찾게 해주고, 그것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스승. 존경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아쉽게도 현재의 공교육 체제는 전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선생님을 양성하는 사범대학에서는 아직도 전공서적 암기 위주의 시험을 치고 있고, 채점기준도 비공개인 임용고사를 통해 순위를 매겨 발령을 낸다.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운영 자율성은 제한적이고, 교사의 권한은 더더욱 작다. 입시를 통해서 줄세우기가 너무도 당연해진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할 문제다.




다시 학교.

그래도 아이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선생님이 학교마다 한 두 분은 계신다. 그 분들의 수업을 들어보자. 평소 모습을 보자. 아이들이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 '무엇'을 나는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끄는 통찰.


하지만, 2015년 대한민국 학교에 통찰은 없다. '통찰'을 이끌 수 있는 교사 개개인의 능력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전혀 다른,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고, 답을 얻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

'정답'이 없는 사회에서 각자의 삶에 적합한 '정답'을 스스로 찾는 교육.


재미있지만, 힘들고

보람되지만, 어려울 수 있는 모험이다.


모험에 동참하고자 하는 분들은 언제든지 연락달라.

(e메일...sea_captain@naver.com)


 함께 항해를 시작해보자.

 

                                                                                       2015년 늦가을. 여행을 떠날 준비를 시작한 SEA 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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