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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씨 Sep 05. 2024

우린 분명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다는

 확신과 믿음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 몇 점 떠있는 맑은 날엔 22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사뭇 달라진다.

뿌연 안경렌즈를 깨끗하게 닦아낸 것처럼 흐린 날엔 볼 수 없는 아득한 풍경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런 주말엔 집에 있기 아깝다는 것이 우리 세 식구의 공통된 의견!

 

그렇게 급 결정된 나들이의 목적지는 가벼운 등산과 고요한 바다를 거닐 수 있는 작은 섬.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그곳은 1시간 거리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창문을 여니 햇살내음이 묻어나는 보송한 바람이 뺨에 와닿았고 어느새 창밖엔 초록과 파랑이 뒤섞인 바다와 산이 펼쳐졌다. 맑은 하늘이 거울에 비친 바다빛깔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서해바다는 바다 축에도 못 낀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마법이라도 부렸나.  

내 고향 남쪽의 푸른 쪽빛 바다가 펼쳐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안선을 보자 가슴 깊이 감탄이 터져 나왔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윤슬.  뜻하지 않은 행운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참새처럼 내내 재잘거리던 딸아이는 한참을 창밖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둥그런 머리, 통통한 볼, 작고 빨간 입술. 초롱초롱한 눈망울. 

어떤 얼굴은 바라보고 있어도 그립다고 하는데 조용히 생각에 잠긴 여섯 살 딸아이의 얼굴이 나에겐 그렇다.  

그때 문득 아이가 물었다. ”엄만 뭘 좋아해? ”

아이의 질문은 얕은 개울처럼 맑고 투명하다. 이 질문의 샘물은 분명 사랑에서 흘러왔을 것이다.


“엄마는 초록색을 좋아하고 초록색을 좋아하니까 나무도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하니까 숲도 좋아하고 나무로 만든 책도 좋아하고”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다 신나게 끼어드는 아이. “그래서 산도 좋아하고” “그렇지, 산은 나무들이 사는 동네니까.”      


이따금 아이는 나에게 묻는다.

“엄만 무슨 과일을 좋아해?” “엄만 무슨 색깔을 좋아해?” "엄만 무슨 계절을 좋아해?"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흘려듣지 않고 마음속에 소중하게 보관해 둔다.

그리고 가끔씩 꺼내 이야기한다. "엄만 사과 좋아하잖아." "엄만 내가 태어난 가을을 제일 좋아하지."

흐릿해져 가는 본래의 내 모습을 잊지 말라는 듯, 새침하게 분명하게. 


한 달 전부터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매 수업마다 작품을 하나씩 완성해 왔다.

미술선생님은 그날의 수업내용을 문자로 보내주시곤 하는데 코멘트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색을 고를 때 아이가 엄마가 좋아하는 색이라며 초록색을 골라 정성껏 칠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의 우주이고 아이가 엄마의 우주라면

우린 분명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며칠 전엔 아이가 미술학원에서 수채화로 나무와 호수가 보이는 풍경을 완성해 왔다.

연두색과 연초록 그리고 짙은 초록이 섞인 커다란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아이의 작품을 거실 액자에 걸어두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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