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하지 않는 나다움에 대해서
징검다리 연휴기간에 쓰게 된 휴가.
남편은 회사로 아이는 유치원으로
각자 흩어져 나는 나만의 진짜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15년간 프리랜서로 살아온 자유영혼주의자인 내가
매일 출퇴근하는 회사원이 된 지 7개월 만에 갖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어느 때보다 힘차게 손을 흔들어준 나는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지금부터 진짜 자유시간이다! 야호!!
그런데 어딜가지?
아이하원 시간을 계산해 보니 대략 6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꽉 채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때 뇌리에 스친 것이 바로 책.
마침 집에서 챙겨 나온 에세이 책 한 권도 있겠다
조용한 카페를 검색하던 중 이십 분 거리에 헌책방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당장 그곳으로 내비게이션을 찍고 출발!
20대 젊은 시절 주머니는 얇고 읽고 싶은 책은 많았던
그 시절의 나는 헌책방을 자주 다녔다.
부산에는 보수동 책골목이라는 곳이 있는데
허름하고 낡은 헌책방가게 앞엔 하얀 머리칼처럼
수북하게 먼지 쌓인 책들이 층층이 쌓여있었다.
가게 안은 사람 몸하나 들어가기 비좁은 책장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싱싱한 활자들이 펄떡이는 새 책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고
어둡고 쿰쿰한 헌책방에서 만난 책들이 더 정답게 느껴졌다.
내가 느끼는 헌책의 낭만과 멋이었다.
평소엔 커피수혈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원두 맛도 모르고 하루에 서너 잔씩 마시던 커피가
이날만큼은 달랐다.
그냥 아메리카노가 아니고 정성이 담긴 드립커피여서 그랬을까.
첫 모금에 온몸에 싹 도는 커피 향이 너무 감미로워서 황홀한 기분이 들정도였다.
자유의 한 모금. 캬~
조용히 책들을 고르다
소설코너에서 중2 때 감명 깊게
읽은 소설책을 발견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조창인 소설가의 "등대지기"였다.
정확한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한 울림이 있었던 책이었다.
그 시절 "등대지기"소설책은 꽤 인기가 있었나 보다.
다섯 권이 나란히 꽂혀있었고 나는 그중 한 권을 꺼내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중2였으니,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넘은 세월인데
신기하게도 책을 한줄한줄 읽어나갈 때마다
그때 느꼈던 책의 온도가 책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렸던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심정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싶었다.
과거의 나와 도란도란 대화하듯 한가롭게 책에 빠져있으니 새삼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잘 느끼지 않았다. 심심하고 적적하다 정도였지 외로움까진 아니었는데.
내가 선택하고 내가 원하던 가족 안에서 외롭다 느껴질 땐 각성한다.
남편과 딸에게 마음을 너무 기대고 있구나, 많은 것을 바라고 있구나. 그럴 땐 차라리 혼자 있는 시간이 도움이 된다.
박하사탕을 머금고 숨을 크게 들이쉬듯
가슴이 상쾌해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