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씨 Sep 12. 2024

태어난 김에 산다는 것  

너는 너 나는 나


만약 우리 딸과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나는 열 달의 잉태기간과 콧구멍으로 수박을 낳는 그 미치고 펄쩍 뛰는 경험을 한 번 더 해낼 자신이 있다.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도 나는 남들에게 당당하게 얘기했다.

무슨 복을 받았는지 우리 딸은 순해서 키우는 게 전혀 힘들지 않다고. 규칙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딸아이의 기질 덕분에 목소리 높일 일도 거의 없었고 먹고 배부르면 잠도 푹 잘 자는 터라 부모님께 도움을 구할 일도 없었다.


더도 덜도 없이 지금 모든 것이 존재 자체로 완벽한 아이.  아이가 세상밖으로 나오는 순간 탯줄이 끊어지고 한 몸이었던 우리는 너와 나. 별개의 인격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난 아직 우리 딸이 꼭 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딸이 경험한 일들을 나의 시각에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딸아이가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큰 착각을 하곤 하는데.  

가령, 한창 즐겁게 혼자 놀이를 하다가 친구가 다른 놀이를 하자고 제안을 하면 딸은 주저 없이 거절을 할 수 있다. 세상 쿨하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거절하는 그 모습이 눈물 나게 멋진 언니 같아서 달려가서 꼭 안아주고 보너스로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서 보여주고 싶을 지경이다. 거절하는 것이 무슨 대수일까. 그런데 그 당연한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게 바로 나다. (거절하지 못하는 건 거절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딸에게서 나와 다른 새로운 포인트들을 발견하는 일은 종종 있다. 그중에서도 주어진 하루를 무척 아쉬워한다는 것은 나에겐 가장 신기한 부분이다.

해 질 녘 집이 어둑해지면 "벌써 하루가 다 갔어! 뭐야!" 입이 삐죽 나온다. 시간과 꼬리잡기 하다 넘어진 아이처럼 분하고 속상해한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많은 의식을 치러야 한다. 최대한 침대까지 가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지금 먹고 있는 과일을 다 먹어야 한다는 둥, 내팽개쳐뒀던 종이를 가져와 오늘 꼭 색칠을 끝내야 한다는 둥. 온갖 이유를 늘어놓고 약속 시간을 10분 정도는 너끈히 넘기는 우리 딸. 그렇게 눈뜨고 있는 시간이 즐거울까. 그래서 안심이 된다. 너의 하루가 즐거움으로 가득 차있구나 싶어서.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유년 시절에는 가족끼리 갔던 여행지의 장면만 한 컷씩 떠오르고 그때의 나의 감정등은 남아있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을 관통하는 한 가지 느낌은 지루함과 무력감이었던 것 같다.

엄마아빠의 부부싸움이 극을 달해가던 시기였고 손바닥만 한 시골 초등학교 교실은 정겨움은 없었다.

 눈을 뜨면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하기 싫은 숙제처럼 느껴졌다. 어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루. 싸운 뒤 냉랭해진 부모님 사이의 온도를 가늠해 보고, 아빠의 기분이 오늘은 맑음이냐 흐림이냐 태풍전야이냐, 엄마의 한숨은 얼마나 더 깊어졌나 등을 살피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하루가 길었고 하루를 끝내는 시간이 가장 반가웠다. 그러니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고역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침잠이 많은지도)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길에 유독 하늘이 맑고 깊어서 동네 언덕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언덕배기 낮은 바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그때 나는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 같다. 같은 눈으로 다 같은 것을 보는 것은 아니라고.

고작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는 나비 날개 같은 구름 파란 하늘을 마음에 담지 못했다. 잿빛 투성이의 내가 너무 초라해져서. 눈가가 축축해졌다.

습관처럼 손가락을 펼쳐 월화수목금토일 일곱 개의 날짜를 세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저 어른이 되면 내 의지대로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놓여있는 환경들과 상황 속에서 쏙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태어난 김에 사는 인생. 그게 바로 나였다. 그러다 스무 살쯤 맘을 고쳐먹었다. 인생은 단 한 번뿐, 멋지게 살아야 해. 남들보다 더 멋지게. 내 존재가치를 증명해야지.

그렇게 인생에 수식어를 주렁주렁 달수록 불행하다는 걸 깨달은 건 서른 중반쯤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하루종일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날들은 몸과 마음이 닳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극기훈련 같던 그 순간에도 아이가 방긋 웃어주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졌다.

그렇게 깨달았다. 달팽이가 잎사귀를 갉아먹고 개미가 땅굴을 파는데 이유가 없듯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딸이 요즘 들어 유치원에서 배워온 말이 있다.

"오늘은 되는 일이 없는 날이야"

안 좋은  말을 내뱉으면 진짜 안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말하니  흠칫 놀라는 기색.

그러다 갑자기 춤추며 노래 부르는 이토록 쿨한 언니가 정녕 내 속에서 나왔나 싶다.  


부디 우리 딸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하고 외치며 유쾌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이전 01화 우린 분명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다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