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근씨 Sep 19. 2024

어른이 되는 법

아이를 낳아봐야지?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길러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과정이 현재진행형인 내 입장에선 어떨까?

열 달 동안 품고 있던 아이를 생애 최대치의 고통을 느끼며 낳고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인내심 레벨 테스트를 하듯 퀘스트를 달성해야 한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배우자마저 이제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받아들이는 고행을 강제적으로 경험해야 하니 득도의 경지, 내적성숙, 열반의 경지에 얼추 비슷하게 다다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미성숙하느냐로 귀결이 되는데 어리석게도 최근까지도 나의 생각은 그렇게 쏠려있었다. 그것은 나의 오랜 사회생활에서 축적된 경험 때문인데. 


업무로 만났던 많은 상사들 중에서 비교적 실수에 너그럽고 사소한 일에 매달리지 않는 배포 크고 자상한 인품을 갖춘 분들은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쉼표하나, 글꼴하나에 파르르 떠는 옹졸함과 극 예민한 나르시스트의 경우 미혼이거나 아이를 낳지 않은 분들이었다. 

살면서 미혼의 상사에게 크게 데인적이 많았던 터라 새로운 팀으로 이동할 때마다 출근 첫날 상사의 결혼유무 자녀유무를 제일 먼저 파악하고 마음의 대비태세를 갖췄던 것 같다. 

'노처녀' '노총각' 프레임을 씌우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소연할 때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아봤으니 자기밖에 몰라'로 마침표를 찍었던 것 같다. 

 

다시 나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어떨까. 자녀의 유무가 내적 성숙에 도달하는 기준이 될수 있는걸까.  

자식을 낳고 길러보니 환절기에 아이가 콧물 안 흘리면 감사할 일이고 내 자식이 이렇게 귀하듯 누구나 귀한 자식이기에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됐다. 

그리고 출산과 양육은 스스로 나의 민낯을 그대로 마주하게 되는 경험들의 연속이었다. 

아이의 생떼에 화르륵 화를 냈다가 아이 잠든 밤이 되면 눈물지으며 '이렇게 사랑스러운 내 새끼한테 내가 무슨 짓을. 난 정말 형편없는 엄마야." 하며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때마다 아이 타이르는 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본다거나 육아 서적을 펼쳐 본다거나 내가 왜 별것 아닌 일에 아이에게 얼굴을 붉히는지 내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그래도 어제보단 조금 상냥한 엄마가 좀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갔던 것 같다. 만약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한 번은 언니처럼 사려심이 깊은 2살 터울의 미혼인 동생 B와 술을 마시며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면 어떻게 나이가 들면서 성숙할 수 있겠냐는 것.

(돌이켜 생각해 보니 미혼인 동생에겐 불쾌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결혼유무 출산과 양육보다는 개인의 노력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 건강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책을 보고 자신의 행동과 말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이 모든 것을 해내는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내가 존경하는 동생 B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요가를 하면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고 불교대학을 다니며 세상을 좀 더 깊게 바라본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들어주고 엄마를 모시고 지방에 계신 외할머니댁에도 부지런히 다니며 가족 행사와 여행을 챙기는 살뜰한 장녀이다. 만약 내가 남동생이 있다면 꼭 소개하고 싶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이토록 좋은 서른 여섯의 미혼이 가까운 내 곁에 있는데 미혼이라고 다 미성숙하다 생각했던 내 생각이 너무 미성숙해서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이 주제는 내딸의 남사친의 엄마 K와의 소주타임에서도 꺼냈던 얘기인데

그분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부모 중에도 늘 최악의 행동을 반복하고 자식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결국 사람마다 다른 것.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떤 사람은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 브런치 서랍에 보관된 일기에는 이기주의의 끝판왕,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부모들을 향한 분노의 글들이 심심찮게 있다. 




자식을 담는 그릇



by윤슬 Jul 11. 2024


5초 남은 횡단보도 앞 

아기띠에 갓난아기를 안고 

서둘러 걷던 엄마가

고개를 휙 돌리더니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그 대상은 그녀의 딸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 


너 때문에 신호에 건너지 못했다며 분노와 짜증을 쏟아냈다.

안타깝게도 그 짜증을 받아내기엔
아이는 고작 네 살이나 됐을까. 너무 어렸다. 


어려도 똑같은 감정을 느낄 텐데,
사람들이 쳐다보는 틈바구니에서

아이의 표정에서 속상함과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후덥지근 

보슬비에  

아기의 뜨거운 체온까지 더해져 

불쾌지수가 상당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본인의 불편한 감정을 그렇게 여과 없이 쏟아붓기엔 

아인 너무 어렸다.


내가 마음의 그릇이 좁다면 

자식은 내가 담을 수 있는 만큼만 

낳아야 한다. 


분명 그렇다.





자식을 낳고 키우는것도 가치있고 성숙해지는 길이겠지만 

스스로를 좀 더 아끼고 인생을 즐기는 것도 또다른 성숙의 길이겠지. 


그래서 내가 결론 내린 진짜 어른은 어떤 상황이든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 사람이다. 

큰 어르신이 되고 싶다. 




이전 02화 태어난 김에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