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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결혼하니 뭐가 좋아요?

친한 친구들에게만 말해줬던 속마음

by 말미잘

29살에 결혼을 했다. 빠르다면 빠르고 늦다면 늦겠지만 내 또래 친구들 중 결혼을 빨리한 편이었다. 덕분에 결혼 후에 주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결혼하니까 어때? 좋아?"를 물어왔다.

이해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한 번도 결혼해보지 않았기에 결혼이 두려웠던 나는 주변 형들에게 결혼에 대해 묻고 다녔었다.

"형, 결혼하니 뭐가 좋아요?"

그러면 한결같이 똑같은 대답을 들었더란다.

"결혼? 좋지. 좋아. 좋은데.."

뒤에 말이 포인트다.

"너 진짜 잘 생각하고 결정해라."

무슨 뜻일까? 좋다는 말일까, 끔찍하니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몰래카메라인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지만 모두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잘 생각해 보라며 어깨를 토닥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대답해줄 차례가 된 것이다.

"결혼하니까 어때? 좋아?"

"좋아.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도 많고, 무엇보다 삶의 안정감이 느껴져."

이건 좀 덜 친한 친구들이 물어왔을 때 대답이다. 그저 인사치레로 안부를 물어온 그들은 나의 대답에 만족해했다. 나의 결혼을 부럽다며 축하하는 미혼 친구들에게 나의 본심과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들의 경우 질문에 담긴 절실함의 무게가 달랐다. 그들도 나처럼 두려워서 물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다른 결혼 선배들처럼 두루뭉술 좋다고 얘기해주고 싶지 않았다. 아직 결혼 생활이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최대한 내가 느낀 점을 그대로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운을 띄웠다.

"좀 묘해."


5년 동안 꽤 장기 연애를 하고 결혼했음에도 연애 중이었을 때와 결혼 후는 좀 달랐다. 각자 살던 사람들이 같이 살게 되니까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결혼하고 나면 휴지 거는 방향때문에도 싸운다는데 우리 부부가 처음 싸운 건 뚜껑이 깨져버린 반찬그릇을 버리느냐, 다른 용도로 사용하느냐였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다툼들이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당황스러웠던 점은 나 스스로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정체성의 변화.

나는 분명히 '남자'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유부남'으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남자였을 때 나는 연애 중이긴 하지만 다른 여자들에게도 남자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싶다거나 바람을 피우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냥 다른 여자들에게도 남자로서 멋있고 싶고, 남자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고 싶었다. 그런데 유부남이 된 나는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상대도 나를 남자로서 좋아하면 안 됐고, 나도 상대에게 남자로 매력을 어필하면 안 됐다. 나도 상대도 나를 유부남으로 인식했다.

말할 것도 없이 '남자친구'에서 '남편'으로 변하기도 했다. 연애 중일 때도 서로 행복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혼 식 때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고 어쩌고 저쩌고를 수만은 하객들 앞에서 약속했지 않나. 그전에는 순전히 여자친구가 기뻐하길 바라는 나의 호의였지만 이제는 일종의 도덕 혹은 윤리가 되어버렸다.

또, 나와 부모님의 관계 역시 변했다. 그전에는 분명 부모와 아들의 관계였는데 결혼 후에는 서로를 '독립된 가정'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집에 가기 전에는 먼저 연락해서 약속을 잡는다. 가기 전에 뭔가 사갈만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손에 뭔갈 들고 가기 시작했다. 나도 부모님을 여전히 사랑하고, 부모님도 여전히 날 사랑해 주시지만 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그런 변화들이 좋다, 나쁘다 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고 생각한다. 뭐든 장단이 있기 마련이니.

다만 나는 사라진 나의 정체성들에게 담담히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나의 모습들에 적응해 가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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