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밤으로 감정 정리하기
KCC건설 스위첸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광고를 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모르는 광고라면 유튜브로 검색해서 한 번 보시라. 나는 그 광고를 참 좋아했다. 벌써 몇 십 번이나 봤다. 광고 속 부부는 이런저런 문제들로 싸운다.
'음, 그래. 저게 부부의 삶이지.'
그런 점에서 우리 부부는 잘 싸우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그 5년 동안 서로 많이 싸웠다. 경험상 싸움 끝에 꼭 무슨 결론과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과격한 목소리로라도 서로의 생각들, 감정들을 표출해 내는 것이다. 나는 그 싸움들이 자랑스러워 결혼식 날 혼인 서약서로 자랑까지 했다. 우리 커플은 참 많이 싸웠고 덕분에 서로를 더 깊이 알게 됐다고.
이런 일이 있었다. 배가 고픈 저녁, 카페에서 나온 우리는 식당에 가서 저녁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나는 지극히 P적인(MBTI 검사를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지만) 사람이라 적당히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제자리에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걷고 싶은 나는 아내를 잡아끌며 그렇게 걸으며 휴대폰을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아내는 가만히 좀 있어보라며 나를 나무란다. 아내가 기쁜 목소리로 "이 근처에 맛집이 있대!"하고 소리쳐도 나는 이미 잔뜩 속이 상해 뾰로통한 것이다. 그 뒤로 우리는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내는 계획 후에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나는 직접 부딪히지 않고 계획만 하는 것을 따분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좀 더 장기간 싸우며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 부부는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자주 싸웠었다. 나는 사랑은 자유라고 생각했고, 아내는 사랑은 구속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가면 그 자리에 남자가 있건 없건 신경 쓰지 않으려 했고, 혹시 내가 전화하는 것이 불편할까 연락도 자제했다. 그것은 나의 배려였고 사랑이었다. 물론 아내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이런저런 개별 사건으로 갈등을 겪던 이 싸움은 아내가 '어쩌면 사랑은 자유인 줄도 몰라'로 돌아서며 끝났다. 모임이든, 여행이든 가고 싶은 대로 보내주던 나에게 모임이든, 여행이든 가지 말라고 하기가 미안해진 아내의 포기였다.
그렇게 잔뜩 싸웠으니 결혼해도 우리는 서로 다툼 없이 잘 살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결혼하고도 종종 싸웠다. 아, 서로를 이해해 가는 과정에는 끝이 없는 법인가. 연애 때는 마주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들을 마주하며 또 싸울 거리가, 그러니까 이해할 거리들이 생긴 탓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런 싸움들이 상대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지만 또 나에 대해 알려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나와는 다른 상대를 마주하며, 또 화나고 분노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아,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지금 이 사람과 싸우고 있는 거구나.'하고 깨닫는 부분들이 있다. 문명의 충돌은 커다란 피해를 낳기도 하지만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는 것이다.
결혼한 지 5년 차. 요즘 우리는 자주 다투지 않는다. 서로 어느 정도 이해하고, 또 어느 정도 포기하고, 또 일정 부분은 꾹 참고 있으리라.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또 싸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두렵지는 않다.
싸움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감정이 격해지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만한 말들을 하기도 하고, 화해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싸움의 끝에 화해하고 나면 늘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런 대화의 흐름이다.
"좋아, 화해해."
"좋아, 그런데 나 딱 한 대만 때려봐도 돼?"
"싫어. 나도 한 대 때리고 싶어."
"절대 안 돼."
"그럼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승자에게는 딱밤을 때릴 기회가 주어진다. 패자는 분하지만 아무튼 그렇게라도 때리거나 맞고 나면 마음이 좀 더 정리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