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고 싶지 않아서 악썼던 것 같기도 하고.
"우린 언제든 헤어질 수 있어."
이런 대화들이 쌓인 어느 날 밤, 우리는 대차게 싸웠다.
"왜 너는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 너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아?"
나는 안일한 동화적 사랑에 대해 비난하고, 아내는 공포스러운 비관적 사랑에 대해 비난했다.
우리가 진정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던 것은 서로 목청을 높이고 분노에 몸을 맡긴 채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기관총처럼 뱉어내고 난 후였다. 싸울 대로 싸웠으니 이제 화해할 일만 남아있었다. 서로의 감정에 충실한 것도 좋지만, 우리는 부부니까, 싸움 그 후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깨진 유리컵의 조각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는 심정으로 우리는 침대에 걸터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감정이 좀 가라앉고 나서야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 대신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대답하기 시작한 것이다.
찬찬히 대화를 나눈 결과 우리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의 사랑 표현 방식을 고수하려고 했던 건 각자가 지닌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불안감을 가지게 된 건, 각자가 서로 가장 오랫동안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결혼의 샘플인 부모님의 결혼 생활 때문이었다.
나는 한 번도 우리의 결혼 생활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결혼생활에 부모님을 연결시켜 본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내와 함께 "대체 왜?"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억압되어 있던 속마음, 우리는 그게 놀라웠다.
자세한 내용은 더 이상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될 테니 여기에 적을 수는 없겠다. 다만 나와 아내는 공통적으로 부모님의 결혼 생활이 화목하지 못하다고 느꼈다. 결혼이 처음인 우리는 우리의 결혼생활이 부모님처럼 될까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려면 반대 상황인 이별을 기억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내는 서로 사랑한다는 약속을 통해서 불안함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우리는 서로 싸웠던 것도 잊고, 서로를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보고 이해하게 됐다는 것에 기뻐하며 감탄했었다. (오죽하면 딱밤 때리는 것도 잊었다.) 우리는 정말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키워왔던 것이다. 아내라는 나무의 가지와 기둥만 보고 있던 내가 그 뿌리를 조금 들여다본 것 같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더 이상 관계의 메멘토모리를 되뇔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 말들이 아내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졌으며 나 역시 우리 부부 관계를 부모님 결혼 생활에 덧대어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이었다. 결혼생활에 대한 낭만, 소망, 기대, 막연한 불안함과 두려움. 내가 결혼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털어내고 얻은 것은 아내와 더 좋은 관계와 자유였다. 자유라는 말이 맞을까? 평온, 홀가분함, 뭐 그런 좋은 느낌들. 다른 고정관념들도 모두 훌훌 털어내고 열린 마음으로 아내를 바라볼 수 있다면.
아, 그래서 사랑은 열린 문이라고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