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재우고 소리를 끈 채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아내에게 도와달라는 카톡이 왔다. 안방에 들어가니 아내가 둘째를 안고 있다. 맑고 똘망똘망한 순진무구한 눈동자.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한밤중에 보는 것은 달갑지 않다.
"왜 깨어있어?"
"수유 중에 자길래 깨웠는데 아주 깨버렸나 봐."
오랜 시간 아이를 재우려 시도하다가 지친 아내를 거실로 보내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재미있는지 주위를 둘러본다.
[낮에는 커튼을 활짝 열고 밝게, 밤에는 어둡고 심심하게 해야 합니다.]
첫째를 키울 때 육아 영상에서 봤던 말이 생각났다. 암막 커튼을 끝까지 쳤다. 어두운 방에는 조명 스위치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도 밝아 보였다. 그 빛에 어슴푸레하게 사물의 윤곽선은 볼 수 있었다.
울기 시작하는 아이를 안고 걸었다. 어두워서 보이질 않으니 자연스럽게 생각들이 뻗어나갔다. 조금 전 글쓰기 모임에서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말해볼걸 하는 아쉬움과 함께 고찰해 본다는 건 어떤 것인지, 이미지화해본다는 건 또 뭔지 한참을 생각했다. 꼬리를 물고 생각이 쉴 틈이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나의 무의식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작은 점처럼 보였던 생각이 끌고 나오면 기다란 선이 되는 것이 낡은 옷에 삐져나온 봉제실 같았다. 우주는 끈으로 이루어졌다는 초끈 이론처럼, 내 생각도 무의식 저편 어딘가에서 이어져 나오고 있는 끈 같은 것이 아닐까. 잡다한 생각을 하며 걷고 있으니 꼭 탑돌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탑돌이는 탑을 돌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의 의식이다. 예전에 관련 행사에 참여했던 기억이 있다. 탑을 돈 것은 아니었고 공원 어귀를 돌았던 것 같다. 반드시 탑이 아니어도 되는 모양이다. 걷는 행위 자체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걷고 있으면 몰입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전에 고민하다 남겨두었던 생각들,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 글과 시에 대한 생각, 오늘 때울 끼니, 등등. 기억하고 싶은 생각들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옮겨 적고, 그 나머지 것들은 그냥 걸으며 흘려보낸다. 그렇게 한참 흘려보내고 나면 머리가 맑고 개운해진다.
침대를 두고 ㄱ자로 몇 번을 오갔는지 모르겠다. 108번은 넘은 것 같다. 침대를 방 한가운데에 놓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ㄱ자가 아니라 원형으로 뱅글뱅글 돌 수도 있었으리라. 침대돌이라고 이름 붙이자. 아기가 조용히 잠들 수만 있다면 통잠을 기원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100바퀴도 돌 수 있다.
어느 순간 잠든 아이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방에서 나온다. 거실에서는 아내가 자고 있다. 잘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맑아진다. 생각을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통째로 흐르는 무의식에 씻겨지는 것이리라. 아내를 깨워 방으로 돌려보내고 나도 다시 첫째가 자는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많은 것들을 흘려보냈고 또 많은 것들이 뒤통수 뒤로 흘러 지나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