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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언 Apr 29. 2023

1. 생존자의 첫 기억

픽션과 논픽션 사이

※이 글에는 폭력 장면 묘사가 있습니다. 




김지은의 최초 기억은 다섯 살이다. 살면서 줄곧 김지은은 그날, 그 시각, 그곳으로 ‘소환’당하곤 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훅. 기억은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집에서 나와 어설프게 포장된 산길을 지나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면 나타나는 교차로에, 그 당구장 건물이 있었다. 한창 재미나던 판을 깨뜨린 데 울화가 치밀었을까? 건물 입구까지 불려 나온 부친은 씩씩거렸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김지은이 기억하는 부친의 첫 얼굴이다. 그 얼굴은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달라졌으나 끝까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지은이 아빠, 이제 가요.”


모친의 입에서 이 말이 열 번쯤 나왔을 때일까. 순간 부친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김지은은 보았다.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달렸다. 거의 동시에, 부친의 발이 모친을 향해 활처럼 날았다. 숙련된 날라차기였다. 모친은 단숨에 건물과 건물 사이 하수구 고랑에 처박혔다. 처박힌 후에도 부친의 발길질은 멈출 줄 몰랐다. 우습게도 선명히 각인된 장면은, 고랑 시멘트 바닥에 낀 거의 검은 색으로 보이는 이끼를 짓뭉개며 처박히던 모친의 모습이다. 울음인지 고함인지 알 수 없이 광광 울려대는 소리도 덧입혀졌다. 약 오 초 정도 길이의 짧은 영상. 그것에는 정지 버튼이 없었다. 

김지은은 그날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부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말렸는지, 아니면 울고만 있었는지. 그러고 나서 결국 부친은 집에 돌아오기는 한 것인지. 하지만 그 후로도 모친은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어린 김지은을 대동했다. 김지은은 그런 모친이 원망스러웠다. 무섭다고도, 싫다고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지은은 모친에게 맥없이 손목을 붙들려 부친을 찾으러 다녔다. 부친이 순순히 따라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김지은은 모친의 심정을 헤아리려 애썼다. 하지만 정작 어른이 되어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자식을 보호해야만 하는 어미가, 왜 굳이 폭력의 현장으로 딸을 데리고 들어갔을까? 그 심정을 이해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자식을 앞세우면 남편 마음을 움직이는 데 더 도움이 되리라는 이성적 ‘판단’에서 기인한 행동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두려움’에서 나온 일종의 보호본능이 아닐까? 당연히 예정된 무자비한 폭력의 강도를 낮춰 보려는, 나름의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그 편이 더 설득력 있었다. 또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니 당연히 맞을 테지만 그 폭력이 그래도 자식 앞에서는 정도를 덜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 과연 그런 의미에서 김지은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 김지은은 우연히 TV를 보다가 불꽃을 후 불어 끄면 도깨비가 소환되는 드라마 장면에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무척이나 로맨틱한 장면이겠지만, 김지은에게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쿵 떨어졌다.


‘저거다, 소환.’


설거지를 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술을 마시다가도, 김지은은 속절없이 이 장면으로 소환당했다. 집행에는 일말의 자비도 없었다. 김지은은 모친을 구해줄 수 없었던 다섯 살 김지은이 싫었다. 고작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어린 김지은을 미워했다. 경멸했다.


‘나는 왜 이리도 작은 아이인 거지? 왜 구해줄 수 없는 거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김지은은 자신이 폭력의 방관자이자 가담자가 된 것만 같아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돌이켜보면, 그때 모친은 겨우 이십 대 후반, 부친은 갓 서른 정도였다. 왕성한 혈기를 아내 폭력에 십분 활용하는 부친의 모습이, 그 광기가 잊히지 않았다. 아니, 잊히지 않기만 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문제는 ‘소환’이었다. 그때 맡았던 비릿한 하수구 냄새와, 분노로 팽창하던 공기와, 흑녹색 이끼가 마치 모친을 흡수해 버릴 것만 같은 공포와, 귀가 멀 듯 쿵쾅대던 심장 소리와, 그칠 줄 모르던 발길질과 구겨지고 또 구겨지던 모친의 모습.


아마도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생애 첫 기억치고는 너무도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지은은 감히 망각을 바라지 않았다. 망각이라는 선물을 받기에는 자신의 죄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저 달게 받아야 할 벌이었으며, 마땅히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결국, 김지은은 몸이 다 자라도록 단 한 번도 부친의 폭력을 막아 주지 못했다. 물론 뚜렷한 완력 차이도 있었겠지만, 그 희번득거리는 광기에 맞설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부친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김지은은 방관자이자 가담자 역할을 자처했고, 유지했다. 그러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었다. 벗어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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