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 사이
김지은은 팔삭둥이였다. 김지은 모친 나이 스물셋이었다. 반도에서도 땅끝, 바닷가가 고향인 그들이 왜 그때 경기도 외곽에 있었는지 이유는 듣지 못했다. 김지은은 무슨 탄생 설화라도 되는 양, 수십 년 동안 거듭 들었을 뿐이다. 그날의 불행을.
그날, 예정일이 두 달이나 남았는데도 진통이 찾아왔다. 김지은 모친은 곧장 서울 ‘큰 병원’으로 실려 갔다. 난산이었다. 아이는 뱃속에서 마치 ‘폴더’처럼 접혀 있었다. 억지로 빼낸 아이는 1.9킬로그램이었고, 목과 다리가 묘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아이는 곧바로 인큐베이터에 들여보내졌다. 돈 벌러 갔다는 아이 아빠와 연락이 닿지 않아 어린 산모는 병실을 배정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보다 못해 미역국을 챙겨 주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고향에서 산모의 모친이 병원비를 들고 부랴부랴 달려왔다. 결국 보름 만에, 아이와 엄마는 병원에서 쫓겨났다. 아이는 사십오 일을 인큐베이터에서 더 자라야 했지만 그건 그들의 사정이 아니었다. 당신들은 돈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 부모 ‘둘이서’ 아이에게 해 주라며, 의사는 김지은 모친에게 마사지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모친은 ‘혼자서’ 한 줌도 안 되는 갓난아기를 주무르고 또 주물렀다.
김지은 모친은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이 아빠와 어떻게 다시 살게 되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다만, ‘그때 내가 왜 느그 아빠하고 다시…’라는 원망인지 자책인지 모를 푸념은 자주 들었다. 그 원망의 대상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김지은은 잘 알았다. 자신의 태어남이 누군가에겐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도. 자신의 존재가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불행의 씨앗이었다는 사실도. 잊을 만하면 각인시켜 주니 잊을 도리도 없었다. 김지은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불행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로 향하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 곧잘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서 김지은은 결심했다. 모친에게 티끌만큼이라도 짐을 얹지 않기로. 모친이 자신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죄책감 앞에서 자유로운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실제로 모친은 ‘니만 아니면 느그 아빠랑 안 살았을 것인디…’라는 말로 정확히 상황을 짚어 주었다. 김지은은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정말 나만 아니면 되었는데…. 나만 없었으면….’
김지은은 날숨이 흰 입김으로 나던 청명한 그 겨울밤을 올려다보던 어린아이를 기억한다.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가 아주 작았던 것만큼은 또렷하다. 그때, 아이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내가 없었으면 좋겠어.”
작은 입에서 겨우 새어 나온 목소리는 흰 입김이 되어 검은 밤 속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