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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언 Apr 29. 2023

2. 차라리 나도 때리지

픽션과 논픽션 사이

※이 글에는 폭력 장면 묘사가 있습니다. 




김지은의 집은 산 중턱에 있었다. 섬이 둥실 떠 있는 바다가 거실에서도 내려다보였다. 바로 인접한 이웃집은 없었다. 애초에 몇 가구 살지 않는 마을이었다. 주변에 불빛 하나 없었으므로, 별빛이 유난히 밝았다.


그날, 열여덟 김지은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늦게야 돌아왔다. 아침 일찍 나가 자정이 지나서야 돌아오는 피곤한 일과가 김지은에게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당장이라도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을 만큼 녹초가 되어 돌아왔지만, 대문 앞에만 서면 발걸음이 절로 멈췄다. 고개가 아프도록 하늘을 올려다본 후에야 김지은은 겨우 문을 밀어젖히곤 했다. 태풍이 몰고 온 폭풍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칼바람이 살을 에는 한겨울에도, 대문 앞에서 주저하지 않은 날은 드물었다.


문은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지고 주홍빛 녹이 슬어 구멍마저 나 있었다. 심지어 틀과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댔다. 무엇보다 작심하고 넘어가야 할 만큼 턱이 높았다.


그 문은 김지은이 가장 들어가고 싶지 않은 문이자, 어쩌면 가장 들어가고 싶은 문이었다.  




그날, 문 안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잔뜩 팽창된 공기와 새된 비명에 순간, 김지은의 몸이 굳었다. 그때 김지은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익숙하되 너무도 낯선 것이었다. 십 년이 넘게 보고 겪어도 매번 새로웠다.


김지은 모친의 몸은 마당 시멘트 바닥에 거의 눕듯이 내동댕이쳐져 있었고 그 위를 김지은 부친의 주먹이 반복적으로 오갔다. 그 주먹 끝으로 시선을 던졌을 때, 김지은은 흠칫 놀랐다. 자그마하고 검은 그림자가 붙박인 듯 서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외할머니가 오실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좀처럼 오시는 일이 없었기에, 오시더라도 일찍 가시리라 생각했기에, 외할머니가 아직 ‘이 집’에 있으리라는 생각을 못 한 탓이었다.


평소와 달리 김지은은 마당을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할머니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대문 밖으로 향했다. 외할머니는 빈 쌀가마니처럼 맥없이 딸려왔다. 외할머니의 손목을 꼭 붙들고 김지은은 어두컴컴한 산길을 내려갔다. 그때 김지은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저 사람의 딸이라 죄송합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으나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전해오는 떨림이, 할머니의 것이었는지 김지은의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집에서 멀어지자 비명인지 타격음인지 모를 잡음은 점점 잦아들었다. 집은 다시 고요한 암흑 속에 잠겼다.


그날에 대한 김지은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폭력은 일상이었지만, 유독 이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지은 부친이 또 하나의, 가장 큰 ‘설마’를 깨부쉈기 때문이다. 그야 언제든 아내를 개 패듯이 팰 수 있는 사람이기는 했다. 하지만 맞는 사람의 어머니, 그러니까 ‘설마’ 장모 앞에서조차 그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김지은에게서 부친은 ‘사람’의 지위를 잃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김지은의 부친은 무남독녀 외동딸을 무척 사랑했다. 모를 도리가 없었다. ‘돼지같이 처먹는다’며 아내가 먹던 반찬을 빼앗아 김지은의 밥그릇에 얹어 주며 ‘우리 딸은 날씬하니까 많이 먹어’라고 해 주었으므로. 음주 가무와 노름 같은 자기 취미에는 세상에 없는 호인처럼 돈을 쓰면서도 아내에게 주는 만 원이 아까워서 벌벌 떠는 사람이 김지은이 학업을 위해 필요하다는 돈은 즉각 내주었으므로. 자신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배우지 못했으면서도 김지은만큼은 학교에 보내 주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는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면서도 김지은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므로.


김지은은 부친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머리로는 너무도 잘 알았다. 하지만 그 ‘앎’이 가슴까지 내려와 주지 않았다. 그런 부친의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김지은 모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정은 깊은데 표현을 못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저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안타까운 인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쌀쌀맞게 구는 김지은은, 이 또한 모친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아빠 마음도 몰라주는 매정한 딸’이었다.


하지만 사실, 김지은이 부친에게 쌀쌀맞게 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지은은 부친과 단둘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멱살이라도 잡힌 듯 숨쉬기가 힘들었다.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향하며 내는 특유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 심장 박동이 거세졌다. 평소에는 또박또박 자기 의견을 잘 말하다가도 부친에게 말하려면 떨리고 혀가 꼬였다.


부친을 싫어한다는 사실에, 김지은은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이토록 거북해하다니. 그것도 자기를 낳아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고 공부시켜 주는 아버지를. 나는 정말 나쁜 년이다.’


그 ‘싫음’이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이십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리고 김지은의 원은 늘 하나였다.


‘차라리 나도 때리지.’ 


자기도 맞았다면, 엄마에게서 ‘너는 안 맞았잖아’라는 말은 안 들었을 테니, 적어도 부친을 원껏 미워할 수는 있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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