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 사이
김지은은 서른 무렵까지도 자신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그때까지 평생을, 제대로 거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리나 거울에 자신이 비칠라치면 김지은은 재빨리 눈의 초점을 흐리게 했다. 수동 카메라의 초점 렌즈를 급하게 돌리듯, 거의 습관적으로.
사실, 김지은이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 외에도, 모친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김지은이 ‘예쁜’ 여자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남편의 쌍둥이 형의 아들은 ‘심지어’ 외모도 준수했다. 아니 ‘하필’이라는 부사를 써야 할지도 몰랐다. 김지은의 큰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다니기만 해도 ‘어머나, 아기가 정말 예쁘네요!’라는 찬사를 들었다. 김지은 모친은 ‘어머나, 아기…네요’라는 서로 민망해지는 상황만 연출했을 뿐인데 말이다.
어린 김지은의 눈에도 여섯 살이나 어린 그 남자아이는 예뻤다. 눈썹은 마치 갈매기를 그려놓은 듯했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아이일 때는 귀여웠고 자라면서는 점점 미남이 되어갔다.
이모는 김지은을 ‘감자’라고 불렀고 외삼촌은 ‘쪼시개’라고 불렀다. ‘쪼시개’는 굴을 따는 도구인데 감자만 한 대가리에 새 부리를 닮은 긴 쇠갈고리가 달렸다. 어쨌든 ‘예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직접적으로 ‘못난이’나 ‘몬순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성별이 그렇듯 생김새도 본인이 선택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것이라 김지은은 억울했다. 그러나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 눈에도 본인 얼굴은 못생겨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지은은 허전한 아랫도리로 모친을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생김새로도 쌍둥이 동서에게 ‘상대적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었다. 모친의 불행은, 그 시작도 김지은이었고 끝도 김지은이었다. 아니 차라리 끝이 있었다면 다행이었겠지만, 모든 것은 김지은이 존재하는 한 현재 진행형이었다.
김지은은 서른이 되어 결혼식을 앞두고서야 처음 화장이라는 것을 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신부’의 역할은 그야말로 자신의 ‘얼굴’을 비롯한 외모를 직면해야 하는 일임을 그때까지는 몰랐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쳐다봐`야 하는 것만으로도 낯선 일인데, 눈, 코, 입을 하나하나 뜯어 보아야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현실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사진으로 인화된, 한껏 치장된 평소답지도 않은 자신의 외모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다.
여기서 문제는 일단 김지은 자신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김지은은 그저 자신이 ‘못생겼다’고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머릿속에서 부옇게 대충 떠오른 이미지와 실제 자신의 얼굴을 합치시키는 데는 늘 시간이 걸렸다. 사진 속에는 실루엣만이 낯익은, 낯설고 못난 얼굴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안면 인식 장애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김지은은 자신을 인식한 시간 이후로, 삶을 살아온 시간만큼 분명히 그 장애를 앓았다.
어릴 때부터 모친과 친척은 만날 때마다 김지은의 외모를 지적했다. 앞뒤통수가 튀어나와서 보기 싫네, 주근깨가 많네, 눈을 해야 하네, 코를 해야 하네 말들이 많았다. 조금만 살이 쪄도 살을 빼라고 했고, 여성스러운 옷차림과 머리모양을 원했다.
어릴 때는 ‘공부 잘하는 딸’을 원하던 부모는 김지은이 성인이 되자 ‘여성스럽고 예쁜 딸’이 되기를 원했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과제 앞에서, 김지은은 혼란스러웠다. 공부야 열심히 한다손 치더라도, 후자는 타고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였을까? 김지은은 자신의 외모를 아예 신경 쓰지 않는 쪽을 택했다. 자신의 얼굴을 모르는 쪽을 택했다. 김지은 속 김지은의 얼굴은 흐릿했고 볼품없었으며 늘 가슴이 뛰고 불안했지만, 김지은은 그것은 ‘밝은 척하는 성격’으로 포장했다. 두 사람은 화해하는 일 없었고, 그래서 분열된 둘 사이에서 김지은은 서성거리며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김지은은 여러 해 애쓴 끝에 비로소 거울 속 자신의 눈빛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말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저 평범한 삼십 대 여자가 있었다. 순간, 거울 속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김지은은 손을 뻗었다. 여자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김지은의 손은 여자의 얼굴에 가 닿지 않았다. 심지어 눈물 줄기를, 그 액체를 만질 수조차 없었다. 김지은이 손끝에서 느끼는 감각은, 차갑고 맨질맨질한 고체의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