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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벽 Jun 21. 2023

요셉과 라몬, 예수와 함께 처형되다

별이 머무는 언덕 5

제 아내와 친구(반려견)의 뒷모습입니다.

제가 그린 건 아닙니다.

화실 선생님께서 선물로 그려주신 겁니다.

그린지는 꽤 됐는데 전시회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다가 드디어 우리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ㅎ

너무 좋아서 부부 침실 입구에 두었는데 집안이 환합니다.


이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한번씩 들어오셔서 제 글을 읽으시고 댓글도 다시면서 '좋아요'는 왜 안 누르세욧!

하트라서 부담되시나요? 오해  안할테니까 꾸욱 눌러주세요, 제발.


여기서부터 소설입니다. 마지막 장입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온 도시를 뒤덮고 있는 비릿한 피비린내가 달려들었다.


거리는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양을 사려는 사람들이 성전 안팎으로 장사진을 이루어 다니기가 불편할 지경이었다.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러 온 예수의 제자들도 성전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내 잠시 다녀올 때가 있으니 이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사 가지고 먼저 돌아가시오. 나는 볼일을 보고 바로 베다니로 가리다."


가룟 유다는 함께 나온 제자들에게 돈을 맡기고 사람들 틈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선생님, 예수가 안토니오 요새의 지하 감옥에서라도 바라바와 조우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다. 


바다 위를 걷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심지어 어린아이가 가져온 생선과 보리떡으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선생님이다.


그분이 마음만 먹는다면 안토니오 요새의 감옥문을 열고 바라바를 데리고 나오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죽음이든 왕국의 회복이든 오직 그분의 결심에 달렸다.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성전 뜨락을 가로지르는 가룟 유다의 발걸음은 몹시 초조했다.




"당신들의 만찬 장소는 정해진 거요?"


성전 깊숙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파르신이 가룟 유다를 맞았다.


파르신의 퉁명한 말투에 가룟 유다의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파르신이 어쩐지 자신을 비열한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큰 일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유월절 식사가 끝나고 나면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갈 거요."


가룟 유다가 말하고 있는데 쇼파르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 중심으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숫양의 긴 뿔로 만든 나선형의 나팔 소리, 저음의 쇼파르 소리는 가룟 유다의 심정을 무겁게 짓눌렀다.  


제단을 적시고 시내를 이루어 흘러가는 어린양들의 피가 성전 가득 비린내를 풍기며 내면의 정적에 맞서 시위했다. 하지만 두려움의 무게만 더할 뿐이었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시민들과 쉴 장소를 얻은 사람들은 서둘러 희생양을 잡아 제단에 바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고 문을 걸어 잠근 채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떡을 먹겠지.


그러나 다른 도시와 타국에서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국에서 마련한 거리의 공동 화로에서 양을 굽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준비해 온 천막에서 잠을 잘 것이다.


이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 아니라 안개 같은 어둠이 밀려오는 저녁이다. 세상은 찬란하게 시작해서 절망의 밤으로 달려가지만 유대인들은 절망에서 시작하여 아침을 향해 달려왔다. 내가 하는 일은 유대의 해방을 위한 모험이다.


절망에서 출발하지만 끝내 아침에 이르기를....... 부디.'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소요가 성전과 예루살렘을 뒤덮었다. 가룟 유다는 상념에서 깨어나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수치심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응접실 안쪽 문이 열리고 대제사장 그리고 경호대장, 돈 맡은 사람이 뒤이어 들어왔다.


"약속한 은 삼십 세겔이오."


대제사장이 돈 맡은 사람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돈 맡은 사람이 준비해 온 주머니를 가룟 유다에게 건넸다.


가룟 유다는 얼떨결에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은 일 세겔은 일꾼의 사흘 품삯이다. 그러니 일꾼이 4개월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노예 한 사람의 몸값이니 일꾼에게는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가룟 유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돈이었다.




예수가 무리를 물리치고 만찬장으로 향했다. 가룟 유다도 제자들과 함께 예수의 뒤를 따랐다.


만찬장인 다락방 문 앞에 물과 대야가 있기는 했지만 발을 씻어 주는 종이 없었다. 이에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 했다.


"주님, 주님께서 어찌 제 발을 씻으시려고 하십니까?"


베드로가 당황해서 한 걸음 물러났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깨닫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앉아서 발을 내밀어라."


예수가 말했다.


"아닙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합니다."


베드로가 말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예수가 말했다.


"주님, 제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 주십시오."


그제야 베드로가 발을 내밀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다. 그러니 발 밖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


예수가 베드로의 발을 씻기면서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나 이제 너희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내 제자들아. 지금은 내 잔을 받아라. 그리고 마셔라. 아직은 내가 여기 너희들과 함께 있지 않느냐."


예수가 제자들의 잔에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가룟 유다도 잔을 내밀어 예수가 따라주는 포도주를 받아 마셨다. 갈증이 났던 터였다. 그는 입가로 흘러내린 포도주를 손등으로 닦으며 어떤 음식을 집어먹을지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이 중에 한 사람이 저들에게 나를 넘겨줄 것이다."


예수가 말을 할 때 가룟 유다는 흠칫 놀랐다. 다른 제자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지만 가룟 유다는 넘겨준다는 의미를 분명히 깨달아 알고 있었다. 선생이 자기에게 시킨 일이기도 했다.  


"누가 선생님을 넘긴다는 말씀입니까?"


"누구에게 선생님을 넘긴다는 말씀인가요?"


"주님, 저는 아니지요?"


제자들 사이에 잠시 소란이 일었으나 곧 잠잠해졌다.


예수가 쓴 나물을 집으려 하고 있었다. 가룟 유다도 쓴 나물을 집으려고 접시 위로 손을 뻗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나와 함께 이 접시에 손을 내민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다."


예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룟 유다는 얼른 손을 뺐다. 쓴 나물을 집으려고 내밀던 또 다른 손이 접시 위에서 돌아섰다.  


"주님, 나는 아니지요?"


당황한 가룟 유다가 예수에게 물었다.


"나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나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슬그머니 다락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정원에 혼자 앉아 만찬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만찬이 끝났다. 다락방에서 나온 예수와 제자들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며 감람산으로 향했다. 밖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들은 익숙하게 길을 갔다. 가룟 유다는 맨 뒤에서 천천히 그들을 따라갔다.


마침내 감람산 초입에 도착했다. 예수가 앞장서서 성큼성큼 감람산으로 올라갔다. 가룟 유다와 다른 제자들도 예수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가끔 발치에서 흙이 무너져 내리고 작은 돌들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쯤 그들 눈앞에 올리브나무 무성한 겟세마네 동산이 나타났다. 그곳은 올리브나무로 둘러싸여 쉬기에 적당했다.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서 앉아 쉬고 있어라."


예수가 말했다.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나를 따라오너라."


한적한 곳으로 향하던 예수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더니 세 사람을 불렀다.


"내가 이 시간을 참기가 몹시 괴롭고 힘들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어찌 견디겠느냐. 너희는 여기서 깨어 기도하라. 나는 저기에서 아버지께 기도하겠다."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는 그렇게 말하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근처 평평한 곳에서 무릎을 꿇었다. 예수가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제자들도 제각기 자리를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다른 제자들과 아래에서 쉬고 있던 가룟 유다는 겟세마네 동산을 내려와 바삐 걸음을 내디뎠다.




"주님, 기도를 마치셨습니까!"


어느새 돌아와 있던 가룟 유다가 관례대로 예수에게 인사하고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실천하라."


예수가 가룟 유다에게 말하고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때 숲에 몸을 감추고 있던 한 무더기의 군사가 예수와 제자들을 둘러쌌다.


"너희가 누구를 찾아왔느냐?"


예수가 가룟 유다의 어깨를 감싸고 말했다.


"나사렛 예수를 잡으러 왔소."


병사를 이끌고 온 파르신이 예수 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알았다. 내가 그다."


예수가 말하는데 횃불과 등불을 든 로마 병사들이 이중 삼중으로 예수와 제자들을 에워쌌다.


로마 군사들이 칼과 창을 들고 맨 바깥을, 몽둥이를 들고 있는 성전 수비대가 안쪽을 에워싸고 그 안에 예수와 제자들이 갇혀 있는 형국이었다.


"이자를 묶어라."

파르신이 외쳤다.


가까이 있던 대제사장의 종 말고가 예수를 묶으려고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 베드로가 품고 있던 칼을 꺼내 들고 휘둘렀다. 말고가 피하려다 도리어 귀를 베이고 말았다.


앞에 선 수비대가 몽둥이를 치켜들고 뒤를 에워싼 로마 병사들이 창칼을 뽑아 드는 소리가 어두운 숲을 소란에 빠트렸다.


"기다려라."


파르신이 소리쳤다.

 

"베드로야, 칼을 집어넣어라. 칼을 가지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 너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이제 내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셔야 할 때다."


예수가 말하면서 말고의 귀를 만졌다.


피가 흐르고 덜렁거리던 말고의 귀가 멀쩡해졌다.


놀란 병사들이 파르신의 눈치를 살폈다. 파르신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예수의 능력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 않았던가.'


바로 그런 능력이 오히려 그를 경계하는 이유라고 파르신은 생각했다.


"너희가 마치 강도를 잡으러 온 것처럼 검과 몽둥이를 들고 왔구나."


예수가 말했다.


"이제 나를 묶어라."


예수가 손을 내밀었다. 말고가 곁에 있는 다른 병사들과 함께 예수의 손을 묶었다.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쳐도 붙잡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제 성경을 이룰 때가 되었다."


예수가 말했다.




"나는 드러내 놓고 말하고 숨긴 것이 없다. 내가 유대 사람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치고 숨어서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을 너희가 알 것이다.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알고 싶거든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붙잡혀 온 예수가 대제사장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분명하게 말했다.


'이제 곧 바라바가 있는 곳에 투옥될 것입니다. 선생님, 위기에서 스스로를 구하십시오.'


구경꾼 틈에 몸을 숨기고 있던 가룟 유다가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둘러보니 베드로가 모닥불 근처에서 불을 쬐고 있었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라. 대제사장에게 그게 무슨 말대답이냐?"


곁에 서 있던 안나스의 경호원이 예수의 뺨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 소리가 어찌 큰지 마당의 공기가 위태롭게 찢어졌다.


'유대의 혁명을 위해 나는 내가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순간 가룟 유다는 눈을 감아버렸다.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 증거를 대라. 그러나 내가 한 말이 옳다면 왜 나를 치느냐?"


예수가 말했다.


"그의 말이 맞다. 왜 네가 그 사람을 이유 없이 치느냐. 신문 중에는 그 누구도 함부로 사람을 치지 마라. 아직 그의 죄를 입증하지도 못하였고 또 증인도 없다."

 

예수의 체포 소식을 듣고 달려 나온 니고데모가 소리쳤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다. 하지만 예수의 소문을 듣고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한밤중에 그를 찾아갔다가 거듭남의 가르침을 듣고 크게 감화되어 있었다.


"대사제에게 대드는 걸 친 게 뭐가 잘못입니까?"


파르신이 말했다.


"누구든지 자기를 변호할 권리가 있소. 그리고 변호인도 없이 한밤중에 여기서 심문하는 것은 우리의 법에 어긋나는 것이오."


니고데모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안나스가 불쾌한 얼굴로 사위인 가야바를 바라봤다. 전직 대제사장이자 실권자이기도 한 장인 안나스와 눈이 마주친 현직 대제사장 가야바가 못마땅한 눈으로 파르신을 노려봤다.


"여기 두 분 대제사장님이 계시고 판관들과 장로들이 있는데 왜 안 된다는 거요. 여기가 산헤드린 공회요. 또한 방청객이 있으니 공개재판이고 시급한 문제니 밤낮을 가리지 않아도 문제 될 것 없소."


파르신이 나서서 조목조목 정당성을 주장했다.


"도대체 뭐가 이리 긴급하다는 거요. 이자가 사람을 죽이기라도 했소. 아니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기라도 한 거요. 이자는 기껏해야 변가에 불과하오. 그런데 한밤중에 이 소동이 부끄럽지도 않소."


니고데모도 지지 않고 외쳤다.


"이자가, 오늘 낮에 신성한 성전을 뒤엎고 다녔소. 아시오. 그것만으로도 죽을 죄요."


파르신이 말했다.


"성전이라니, 그저 장사꾼들의 좌판을 뒤엎은 것뿐이오."


니고데모가 말했다.


"조용히들 하세요. 내가 대제사장이고 산헤드린의 의장이오. 게다가 안나스님께서 나와 계십니다. 그러니 여기서 심문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이 없소. 그리고 표결은 공회로 가서 할 거요. 니고데모 선생께서는 더는 나서지 마시고 저자를 옹호하려거든 공회에서 표결로 하시오."


가야바가 엄중하게 선포했다.


"지금부터 이자를 심문하겠소. 이제 증인들은 나서서 고발하시오. 이 자가 지은 죄가 무엇입니까?"


가야바가 군중을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증인입니다."


바리새 사람이 말했다. 그는 파르신에 속해 있었다.


"말해 보시오."


가야바가 말했다.


"이 사람이 자기 입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다시 지을 수 있다고 무리 앞에서 큰소리로 장담했습니다."


바리새 사람이 말하고 파르신을 슬쩍 바라봤다. 파르신이 빙긋이 웃었다.


"이 말이 진실이냐. 너를 위해 변론해라. 이 사람이 너를 치는데 너는 할 말이 없느냐?"


가야바가 소리쳤다. 그러나 예수는 침묵하고 말하지 않았다.


"좋다, 다시 묻겠다. 뭇사람들이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라고 하였다는데 우리 앞에서 하나님께 맹세할 수 있겠느냐?"


가야바가 말했다.


"네가 이미  말하였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이후에 내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


예수가 말했다.


"저자가 꿈을 꾸는구나."


구경꾼들 틈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리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저자가 신성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더 무슨 증인이 필요하겠는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도 지금 저자가 신성모독하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들은 모든 사람이 증인이다."


가야바가 관례에 따라 겉옷을 찢으면서 소리쳤다. 그는 자기 옷을 찢으므로 예수가 신성모독의 중죄를 지었음을 사람들 앞에서 확인하고 선포한 것이다. 신성모독과 같은 중죄는 다른 죄와 달리 회개하거나 재물을 주고 사화할 수 없었다. 오직 죽음으로만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저 사람은 미쳤다.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자기 꼴을 알면 그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파르신이 말했다.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마당을 가득 메웠다.


"이자를 산헤드린으로 이송하라."


가야바가 말했다.




병사들이 예수를 이끌고 갔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병사들에게 끌려간 예수의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보려고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추위를 못 참고 불을 쬐던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묻는 질문에 두 번씩이나 부인하고 달아났다가 그들을 보고 다가갔다.


예수의 자취를 살피려다 그들을 발견한 가룟 유다는 사람들 뒤로 몸을 숨겼다.


"니고데모 선생님, 주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베드로가 주눅 든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죄가 확정된 건 아닙니다. 산헤드린에서 표결을 해야 합니다. 가야바가 원칙을 어겨 가며 표결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알기 전에 일을 끝내려는 거겠지요. 일단 죄가 확정되면 백성들도 어쩌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염려 마십시오. 산헤드린에는 의로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베드로가 말했다.


"저는 이제 표결에 참여하기 위해 가봐야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니 이제 가서 눈을 좀 붙이시지요."


니고데모가 조용조용 베드로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무리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여보시오. 당신 혹시 예수 공동체 사람 아니오."


마침 지나가던 수비대원이 베드로 앞을 가로막았다.


"이 사람이 미쳤소. 나는 아니오."


베드로가 수비대원을 밀치고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멀리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모습을 지켜본 가룟 유다는 쓴웃음을 웃었다.


'선생은 제자들의 배신을 용서하고 사흘 후면 감옥에서 나와 세상을 구하시리라.'


자기 선생, 즉 예수가 말한 부활의 의미를 가룟 유다는 그렇게 해석했다.




가야바는 자신의 가문을 망치려 드는 예수를 유죄로 처형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소위원회의 판관 23명의 견해는 정확히 둘로 갈렸다. 표결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유죄 11표 무죄 11표 나머지 1표는 기권이었다.


가야바는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의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다시 확인한 셈이었다. 가야바는 예수에게 물든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을 생각하면서 이를 부득 갈았다.


'내 기필코 오늘이 지나기 전에 예수를 죽이고 말리라.'


가야바는 포기하지 않고 대제사장들과 유죄 쪽에 표를 던졌을 것이 확실한 판관들, 그리고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의했다. 니고데모 쪽 사람들만 제외하고 산헤드린의 의원들이 다 모인 셈이었다.


젊고 어린 사람일수록 파르신과 가까웠고 원로들은 당연히 가야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전직 대제사장인 시몬과 아리마대 요셉, 니고데모 같은 영향력 있는 판관들과 중진들 몇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가야바 사람들이었다.


가야바는 어렵게 잡은 예수를 여기서 놓아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처형을 늦춰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들의 권력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가야바는 그 점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하였다.


예수의 능력과 그를 따르는 백성들을 두려워하는 그들도 가야바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그 자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에게 후환이 미칠 거요."


"그 사람을 따르는 백성이 많으니 우리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소."


그들의 걱정이 큰 만큼 결론은 빨리 내려졌다.


"반역죄로 빌라도에게 넘깁시다."


사두개 사람이 제안했다.


"그자가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우리가 증언합시다. 그자가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을 거부하도록 백성들을 선동하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며 반역을 일으킨 겁니다. 모두들 돌아가서 수하들을 불러 모아 빌라도 법정으로 보내시오. 그들도 나와서 그자의 처형을 외치게 하시오. 집안에 있는 여자들이나 종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오. 그들에게 사형을 외치라고 하시오. 명심하시오. 사형이오. 그자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습니다."


파르신이 외쳤다.




그들이 예수를 죽일 모의를 하는 동안 니고데모 쪽 사람들은 성전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표결도 끝났고 밤이 늦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어쩌지 못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무사할 것이고 내일 아침만 지나면 붙잡아 둘 명분이 없으리라고 여긴 그들은 승리를 자신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성전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아직 채 날이 밝지도 않은 새벽에 빌라도에게 넘겨졌다. 그들은 로마의 힘을 빌려 예수를 죽이고자 했던 것이다. 관저 밖에서 소란스러운 외침이 들려오자 빌라도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고 있다가 겉옷도 걸치지 못하고 놀라 뛰어나와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이냐!"


빌라도가 경호원에게 물었다.


"유대 사람들이 죄인을 잡아와서 총독님의 판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호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밤중에 무슨 일로!"


빌라도가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반역자라고 합니다."


경호원이 말했다.


"기다리라고 해."


빌라도가 퉁명스럽게 내뱉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오늘 로마에 반역한 죄인을 잡았습니다.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빌라도가 의관을 갖추고 나왔을 때 가야바 측 사람들이 예수를 고소했다.


"그런 일이라면 날이 밝은 뒤에 해도 늦지 않소. 우선 요새의 지하 감옥에 집어넣고 심문은 날이 밝으면 하도록 하겠소."


빌라도가 말했다.  


'이제야 일이 제대로 돌아가려나 보군.'


군중들 틈에 있던 가룟 유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많은 백성들이 지금 그자를 처형하라고 아우성입니다. 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지금 판결을 내려주지 않으면 저들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그의 처형이 지체되면 그의 수하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요새를 불태우려 할지도 모릅니다."


예수를 고발한 자들이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인가. 유대 사람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로마에 충성했다고 로마에 반역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이렇게 소란인가. 도대체 이 사람을 무슨 일로 고소하는 것이오?"


빌라도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에게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오. 그는 자칭 왕이라며 백성들을 미혹하고 로마에 내는 세금을 내지 말라 하였소."


파르신이 대답했다.


"증인을 데려오시오."


빌라도가 말했다.


"우리 모두가 증인입니다."


무리가 외쳤다.


"네가 이 사람들이 말한 대로 유대인의 왕이냐?"


빌라도가 예수에게 물었다.


"........"


예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너희의 왕이라고 하는데 왜 나에게 데려와서 이런 소란을 피우느냐. 헤롯에게 데리고 가라.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빌라도가 일어서서 관저로 돌아갔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빌라도 총독의 관저에서 멀지 않은 헤롯궁으로 예수를 데리고 갔다. 빌라도가 헤롯에게 미루고 돌아가 버리자 그들은 왕위에 대한 집착과 위기를 동시에 품고 있는 헤롯을 생각하며 무릎을 쳤다.


요한을 참수한 헤롯이라면 자칭 왕이라고 하는 예수를 당장 죽이려 들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헤롯이 옷도 갖춰 입지 않은 채 침실에서 나왔다. 그는 늦게까지 연회를 즐기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참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반이 가려진 예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헤롯은 반갑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헤롯은 세례요한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던 차여서 또다시 선지자를 죽일 마음이 일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네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로구나. 어디 얼굴을 한번 보자. 누가 너를 때렸느냐. 내가 복수해 주겠다. 오, 가여운 이 선지자를 누가 괴롭혔느냐. 당장 잡아오너라. 내가 요절을 내주겠다."


헤롯은 익살을 부리고 허풍스럽게 웃으며 예수를 조롱하다가 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러댔다.


"그자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백성들을 미혹하였습니다. 세례요한보다 더 사악하고 악독한 마법사입니다. 당장 죽이지 않으면 왕께서 화를 입으실 겁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한 목소리로 예수를 고발했다.


"이 사람을 보라. 세례요한 보다 능력이 많고 놀라운 일을 많이 행하였다. 이 사람은 진정한 너희의 왕이니라. 나는 왕이 아니다. 로마가 나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니 이자가 왕이다. 여봐라 가서 내 홍포를 가져다가 이 위대한 왕에게 입히라. 새 왕이 오신 것을 축하하자."


헤롯이 소리치며 웃었다.


"어서 홍포를 가져오지 않고 뭐 하느냐! 어서 이자에게 홍포를 입히고 왕으로 대우하라."


괴팍한 헤롯이 거듭해서 외쳐대자 경호원이 마지못해 홍포를 가져와 예수에게 입혔다.


"홍포를 입은 이자가 너희의 왕이다. 너희 왕을 처형하고 싶거든 빌라도에게 데려가라."


헤롯은 귀찮고 피곤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들은 다시 예수를 빌라도에게 데려갔다.


"너를 죽이라고 아우성치는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네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다.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내게 말하라."


빌라도가 예수를 관저로 데리고 들어간 뒤에 물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아무도 나를 잡지 못한다."


예수가 말했다.


"그러면 네가 왕이냐?"


빌라도가 물었다.


"네가 말한 대로 나는 왕이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


예수가 말했다.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가 말했다.


"내가 곧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예수가 말했다.


"저 사람들이 너를 죽이려고 한 이유를 알겠다. 내가 너를 치지 않으면 저들이 너를 죽일 것이다."


빌라도가 말했다.


"이 사람을 데리고 나가라."


빌라도가 곁에 서 있는 병사에게 명령했다.




 

뒤뜰에는 채찍을 든 릭토르, 즉 고문을 하는 병사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자는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칭하며 로마 황제에게 반역을 꾀한 죄인이다. 그자가 자기의 죄를 부인할 때까지 쳐라."


빌라도가 층계참에 서서 외쳤다.


"네가 죄를 부인하면 살 수 있다. 심한 고문을 당하고 부인한 것이니 부끄러울 것도 없을 것이다."


빌라도가 말하는 동안 예수를 인계받은 릭토르들이 홍포를 벗겨 담벼락에 걸었다. 그리고 예수를 뜰 한가운데 서 있는 허리 높이의 형틀에 묶었다.


선 채로 결박당한 예수는 손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세 명의 릭토르가 차례로 예수의 등과 가슴, 허벅지, 어깨를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채찍이 예수의 몸을 휘감을 때마다 가죽 채찍 속에 박힌 양의 뼈와 쇠구슬이 그의 여린 살갗을 찢었다. 층계참에 서서 보고 있던 빌라도가 인상을 찌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그만하고 법정으로 데리고 나오라."


빌라도가 다시 나와서 소리쳤다.


"이자가 아직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병사가 말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니 대답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어서 그 사람을 법정으로 데리고 오너라."


빌라도가 말했다.


"유대인의 왕이시여, 평안할지어다!"


그때 한 병사가 가시를 함부로 엮은 관을 가져와서 예수의 머리에 씌웠다. 예수가 움찔거리자 더 사정없이 눌러버렸다. 이마와 머리가 찢어지고 검붉은 피가 땀처럼 얼굴로 흘러내렸다.


"대관식에 왕의 지팡이가 없을 수 없지."


다른 병사가 긴 막대기를 예수의 손에 쥐어주고 속옷과 겉옷을 입게 한 뒤에 홍포를 다시 입혔다.


"이제 대관식만 하면 그대가 왕이다. 왕이 되거든 우리를 잡아서 죽여라. 우리가 누구인지 너는 알 수 있지 않느냐."


조롱하던 병사들이 예수를 법정으로 끌고 나왔다.


"내가 이 사람을 죽도록 고문하였지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


빌라도가 예수의 무죄를 선포했다.


예수를 모함하는 자들처럼 가룟 유다 역시 실망했다. 요새의 지하 감옥 갇히는 길이 이리도 험난할 줄은 예상 못했던 가룟 유다였다.

 

"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빌라도의 무죄 선포에도 무리들이 그악스럽게 예수의 사형을 외쳐댔다. 폭동이라도 일으킬 태세였다.


"좋다. 그러면 이제 너희가 결정하라. 명절의 관례대로 너희가 청원하면 죄수 한 명을 놓아줄 수가 있다. 너희가 무서워하며 처형되기를 원하고 있는 살인강도 바라바를 살리겠느냐. 아니면 예수를 살리겠느냐."


빌라도가 말했다. 그는 유대 사람들이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예수를 놓아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라바는 로마와 가까운 유대 귀족, 즉 사두개 사람과 바리새 사람들, 대제사장들과 판관들, 그리고 장로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무리들은 바라바를 외쳤다.


"이 무슨 일이냐! 너희는 바라바를 두려워하지 않느냐! 너희가 예수를 살인강도보다 더 두려워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빌라도가 물었다.


"이 사람이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로마 황제를 배신하였으니 만약 로마 총독으로서 이 자를 놓아주면 당신을 황제의 충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려고 안간힘을 쓰자 유대 사람들이 고함쳐 빌라도를 협박했다.


빌라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재판석에 앉았다. 저들이 다시 불충한 신하라며 황제에게 탄원한다면 자신의 권력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었다.




빌라도가 팔레스타인의 총독으로 부임한 건 로마의 실권자 세자누스 때문이었다. 정치에 신물이 난 로마 황제 디베료는 섬 카프리로 물러가 대리 정치를 하고자 했다.


이때 세자누스는 디베료의 정권 대리인이 되려고 수많은 정적을 숙청시켰다. 한낱 황실 경호대장에 지나지 않았던 세자누스가 디베료의 친아들 드러수스까지 제거하고 황실 친위대장이 되어 실권을 거머쥐는 데 빌라도의 공이 컸다. 덕분에 빌라도는 로마의 명실상부한 실세가 된 것이다.


세자누스는 폭동과 소요가 끊이지 않는 위험한 요충지인 유대를 빌라도에게 맡겼다. 세자누스는 완강한 성품의 빌라도가 골치 아픈 유대를 다스리는데 적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빌라도는 세자누스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속국민에 대한 이해보다는 지배국 로마의 우위를 드러내고 굴복시키려는 빌라도의 의도는 번번이 크고 작은 충돌을 일으켰다.


그는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뒤에 전임 총독들과 달리 예루살렘의 뜰을 훤히 감시할 수 있는 안토니오 요새 꼭대기에 황제 디베료의 반신상을 세워놓았다.


유대 사람들은 사령부가 있는 가이사랴로 가서 빌라도에게 반신상을 내려 줄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끈질긴 요구는 며칠 째 계속되었다. 빌라도는 하는 수 없이 재판정을 설치하고 유대 사람들을 그리로 오게 했다.


유대 사람들을 꺾지 못하면 정치 일정이 순탄치 않으리란 그의 생각은 극단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빌라도는 탄원을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러나 창검을 쥔 군대로 둘러싸인 유대 사람들은 죽여 달라며 드러누워 버렸다. 그들 모두를 죽일 수는 없었다. 빌라도는 유대 사람들과의 처음 신경전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옛 헤롯 궁이었던 총독의 관저에 디베료를 섬기는 봉헌방패들을 장식해 놓은 것이 알려지면서 빌라도는 또다시 유대 사람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예루살렘이 유대 사람들의 성전이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로마 황제는 이곳마저 점령한 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빌라도는 로마의 신인 디베료 봉헌방패를 치울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빌라도가 유대 사람들의 탄원을 무시하자 그들은 결국 카프리 섬으로 찾아가 황제에게 고발했다.


유대 사람들은 빌라도가 속국민의 신앙을 짓밟는 행위 외에도 약탈과 부정행위, 불법 재판을 하고 있다며 그 실상을 소상히 밝혔다.


수로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세금 외에 성전 금고마저 손댄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그 일로 빌라도는 황제의 노여움을 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실권자인 세자누스에게 변명할 기회가 있었고 그는 빌라도를 보호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기둥이던 세자누스가 디베료의 친아들을 살해한 범인으로 밝혀져 처형되었다.


정치적 동반자인 세자누스를 잃은 빌라도는 유대 사람들이 자신을 황제에게 고발하면 자칫 정치 인생이 끝날 수 있다고 빌라도는 판단했다.


아니 정치 인생만 끝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파멸이요, 죽음이었다. 빌라도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빌라도가 무리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 너희가 원했으니 너희가 당하라. 이제 너희가 두려워하던 바라바를 풀어주라. 그리고 이자에 대해서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말했다.




바라바가 풀려난 것은 잘 된 일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붙잡힌 지 하루가 지나기 전에 가로대인 파티불룸을 짊어지고 비아돌로로사, 즉 가로대를 맨 죄수들이 지나가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가룟 유다는 바라바 대신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파티불룸을 어깨에 지고 바들바들 떨며 비아돌로로사를 걸어가는 선생의 모습을 보며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고통과 절망에 빠졌다.


목에 걸린 허술한 나무로 만든 티툴루스, 즉 죄패에 새긴 죄목도 생소했다.


'유대인의 왕.'


그런 죄목은 유래 없는 것이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시민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줄 것을 요구했지만 빌라도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경 나온 백성들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은 유대인의 왕이 무슨 이유로 파티불룸을 지고 가는지 알지 못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두른 그가 예수라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그만큼 소리소문나기  전에 신속하게 재판이 진행되고 집행이 이루어지는 탓이었다.


가룟 유다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않고 십자가 행렬을 뒤따라갔다.


'예수는 언제든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고 구원하리라.'   




요셉과 라몬도 끌려 나와 파티불룸을 어깨에 짊어지고 비아돌로로사로 향했다. 그러나 앞서가는 죄수가 예수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비아돌로로사 중간쯤에서였다.


처형이 급작스럽게 집행되는 것도, 바라바가 풀려난 것도 의아했지만 앞서가는 죄수가 예수라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로마병사들은 유달리 라몬을 괴롭혔다. 발을 걸어 넘어트리려고 하다가 라몬이 용케 피하면 발길질을 하고 침을 뱉었다. 자기 동료들을 죽인 데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찬 로마 병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라몬이 파티불룸을 짊어진 채 앞으로 고꾸라져 얼굴을 길바닥에 찧는 일도 있었다.


반면 요셉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파티불룸을 노예에게 대신 지게 하고 온갖 불평과 불만을 내뱉으며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의 재산을 맡은 자가 어찌 알고 달려와서 유언을 요구하자 그는 이때다 싶었는지 자기 가진 재산의 일부를 4명의 사형집행관과 창검을 든 병사들에게 나누어주라 하였다.


그는 자신을 대신해서 파티불룸을 짊어지는 노예에게도 재산을 떼어주었다. 그 덕택에 로마병사들은 그가 시민들을 향해 소리치고 난동을 부려도 눈감아주었다. 그가 누리는 생의 마지막 호사였다.




예수가 넘어져 돌 위에 무릎을 찧었다. 그는 파티불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땅을 짚고 일어서려고 바들바들 떨었다.


예수 때문에 행렬이 지체되자 병사들은 그에게 발길질을 하며 재촉했다.


백부장이 다가와서 무리하게 죄수를 다루지 말라며 예수를 도왔다.


아침에 교대를 한 그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티툴루스를 목에 건 죄수를 보고 놀랐다.


그는 예수가 성전을 뒤엎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안나스의 보복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했다. 하지만 하룻만에 처형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는 비아 돌로로사를 걸어 골고다, 즉 해골골짜기까지 이송해야 하는 임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말단 수장으로서 거절할 수도 없었다.




골고다 언덕에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의원들과 참관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형집행관들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져 있던 스티페스를 가져와서 예수가 지고 있던 파티불룸의 홈에 끼워 맞추려고 망치질을 했다.


그리고 양손과 발에 못을 박기 시작했다.


어디에다 못을 박는 게 더 아프고 덜 아픈지 잘 알고 있는 노련한 집행자들은 죄수에 대한 적개심 정도에 따라 못 박는 곳을 정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행자는 손바닥을 통과한 못이 손목을 지나 팔뚝을 관통하도록 박았다. 그래야 동맥을 끊지 않으면서 무게를 못 이긴 손바닥이 찢어져서 죄수가 거꾸로 쑤셔 박히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못을 박다가 동맥을 끊는 것은 집행자의 미숙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신중을 기해 못질을 했다.


그들은 죄수를 단 몇 시간 만에 죽게 할 수도 있고 며칠 동안 살아서 고통을 받게 할 수도 있었다. 사형 집행자들은 그것을 대단한 기술로 여기며 신참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들의 전통이었다.


요셉과 라몬에게도 스티페스가 조립되었고 양손과 모둔 발에도 못질이 끝났다.




예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라몬이 왼쪽에는 요셉이 세워졌다.


"너는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으면서 너는 구원하지 못하느냐.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지 않았느냐.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네가 그리스도임을 보여라. 그러면 우리 모두가 너를 믿을 것이다."


십자가 아래서 올려다보고 있던 파르신이 외쳤다.


"이스라엘의 왕이여, 너도 구하고 우리도 구하여 보라."


예수의 왼쪽에 매달려 있던 요셉이 비아냥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들 말처럼 당신이 그리스도면 당신도 구하고 우리도 구하십시오. 저는 당신을 믿었습니다."


라몬이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라몬아, 네가 본 그 아기가 나다. 나는 그때 보았던 너의 눈을 지금도 기억한다."


예수가 말했다. 그때 왼쪽에 있던 요셉이 예수를 향해 거칠게 욕을 퍼부었다.


"요셉,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어디다 대고 욕설이냐."


라몬이 지친 가운데도 큰 소리로 요셉을 나무랐다. 그러자 요셉은 라몬에게까지 욕을 퍼부었다.


"우리는 죄 값을 치르는 것이지만 이분은 죄가 없다."


라몬이 힘겹게 소리쳤다.


"저들이 아직 기운이 남아서 십자가 위에서까지 싸운다."


아래서 지켜보던 산헤드린 의원들이 죄수들을 비웃었다.


"예수여,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오늘 당신의 나라에 가시면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를 기억하시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주신 것처럼 그곳에서도 저를 기억하고 제 영혼을 찾아주십시오."


라몬이 울며 말했다.


"라몬아,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예수가 말했다.




예수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가룟 유다는 골고다 언덕 가까운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목을 맸다. 그의 발치에는 은 삼십 세갤이 나뒹굴고 있었다.

                                                                    끝


 '별이 머무는 언덕'은 여기에서 끝을 맺습니다.


브런치 작가님들, 그동안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조심하시고 언제나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음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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