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소설에서 두 남자가 담배 피우며 키스하는 장면을 그려달라 했더니 절대 그릴 수 없다며 다른 제안을 해주었습니다. ㅎㅎ
표지 그림은 율리와 제가 타협해서 나온 이미지입니다.
율리의 그림 실력은 꽝입니다. ㅋ 그도 인정했습니다. 우물 그림은 서른 번 정도 수정한 것인데 그래도 소설 속 우물과는 동떨어집니다.짜깁기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ㅠㅠ
브런치의 오문원 작가님이 이글 보시면 저에게 비결을 좀 전수해 주시죠?
제 작품 중 "씨앗의 꿈 -천 년의 꿈으로 바꿈-"을 아마존에서 동시 출간을 하려고 번역을 하는데 실력이부족해 머리를 쥐어뜯다가 율리와 손잡았습니다. 큰 도움이 됩니다.
문장이 주는 뉘앙스라든지 단어 선택에 결정적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어제 새벽까지 절반 넘게 했는데 별일 없으면 이번 주말이면 마칠 것 같습니다. ㅎ
아래 시는 율리의 도움을 받아 지금 막 번역한 것입니다. 좀 어려워서 율리한테 계속 물어보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써 놓은지 한 달 정도 된 것인데....... 영문본과 함께 올려봅니다. 작가님들도 한 번 해보시라고요.
율리의 그림
태양의 뒤통수
이세벽
성가시게 울어대던 귀뚜라미들은일찌감치 곳곳에서 사체로발견되고 있었다
그것이 이별의 시작임을 깨닫지 못한 자들은 축제를 바다 끝까지 펼쳐 놓고 잉걸불로 잦아든태양의 이름을 헛되이 외쳐 불렀다
오오 다가오고 있는 어둠의 가면을 벗기려고 나서는미치광이가 어디에도 없었다
태양을 온몸으로 삼키며 비바람조차 기꺼이 벗 삼은 이른바 태양의 후예들은 때가 왔음을 알고 자진해서어둠 속으로뛰어내리고있었다
오오 어둠은 가면이 아니라 태양의 뒤통수 아니 어쩌면 태양의 서늘한 머리 속지도 오오 어둠이야 말로 태양의 마음을 기록한 하나뿐인 책
거짓된 빛을 단숨에 제거하고 별에 대해 쓰기 시작한 이래 여태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분이 바로 어둠이다
별이 어떻게 웃고, 별이 어떻게 말하고, 별이 어떻게 시가 되고, 별이 어떻게 신화가 되고, 별이 어떻게 꿈을 잉태하고, 별이 어떻게 영혼을 출산하게 되는지, 어둠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여왔고 지금도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으나어둠의 책을 읽을 자 누구인가
읽고 있으면서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영문본은 다시 수정했습니다. 가능한 한글본에 맞춰서...... 다시 수정할지도 모릅니다.
The back of the sun's head
Lee seabyuck
The crickets, which had been chirping annoyingly, were already being found dead here and there.
Those who didn’t realize this was the start of a farewell spread their festival out to the edge of the sea, calling out the name of the dying sun in vain.
Oh, there was no madman anywhere who would strip away the mask of the looming darkness.
The so-called inheritors of the sun, who swallowed the sun with their whole bodies and gladly befriended even the storm, knew their time had come and willingly hurled themselves into the darkness.
Oh, darkness is the one book in which the sun’s mind is recorded.
It is darkness that, since the moment it instantly removed the false light and began writing about the stars, has never once stopped.
How stars laugh, how stars speak, how stars become poetry, how stars turn into myth, how stars conceive dreams, and how stars give birth to souls—darkness has recorded every detail without missing a single thing, and even now, it continues to write. But who will read the book of darkness?
Even while reading it, no one realizes its meaning.
이 글을 쓰는데 한강이 노벨문학상 받았다고 아내가 알려줍니다. 상금이 13억 4 천만이라네요.
축하드리고 한국문학 파이팅입니다.
작가님들께도 영광과 기쁨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여기서부터 소설 '궁자가 살고 있는 우물'입니다.
은기 와 내가 졸업파티에서(율리가 그려준 상상도)
“니 새아제. 새아 맞지. 그쟈.”
새벽에 난데없이 걸려온 전화를 받자, 굵고 과장된 사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일순간 사방 일곱 자 정도 되는 정사각형의 우물이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떠올랐다.
뒤이어 떠오른 것도 눈이 크고 허풍이 센 두인의 얼굴이 아니라 열아홉 언저리에서 수면제를 과하게 삼키고 영면한 은기의 모습이었다.
“내사 니 숨소리만 들어도 알겠는데, 니는 내 모리겠나.”
얼굴을 굳이 떠올려보지 않아도 그가 누구라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마흔이 다 된 나이인데도 그려지는 얼굴은 내가 마지막 본 열아홉 살 청년 두인이었다.
“일마가 니 정말 서운하데이. 내 두인이 아이가. 내가 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동 아나.”
나 역시도 그가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뜻 반색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심해성층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놓아 안개 낀 듯 혼란스러웠던 탓이었다.
두인은 울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내 동생을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는 바람에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이라고 전화 건 경위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강정동 강정새미 알제. 마 거서 다들 만나기로 했는기라.’ 이렇게 시작해 놓고 우리가 만나지 못한 세월을 염두에 두고 있기는 한지 길게 설명을 덧붙였다.
다들 먼 타지에서 오기 때문에 시간까지는 정할 수 없어서 먼저 온 사람은 강정새미 앞에 있는 강정다방에서 기다리기로 했고, 또 마침 미국에서 나오는 민석의 얼굴도 보려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아닌 화요일로 정한 것이니 불편해도 감수해야 한다며, 감상에 빠진 목소리로 이미 나에겐 사어가 된 우정을 만남의 주된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나는 민석을 잘 몰랐다. 어렴풋한 기억이 있기는 한데 민석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 이웃 동네 아이였다. 이웃 동네 아이들과도 곧장 어울렸던 두인은 나도 민석을 저만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두인은 다시 그 특유의 허풍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되돌아와서는 ‘회사 댕기는 놈들은 연, 월차를 써가라도 마캉 온다카이 니도 우얀 일이 있다케도 빠지믄 안 된다. 알것나. 만일에 안 왔다카므 칵 직이뿔기다’ 말하고 역시 과장스럽게 허허허 너털웃음을 달았다.
예전에는 그가 그렇게 웃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철이 들면서 자신의 과장된 말투를 의식하고 그러는 것 같았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자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울산은 이제 내 기억 속의 도시가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살아온 곳이지만 건물과 도로, 도로변의 가로수들,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이방인이 된 심정으로 행인에게 길을 묻고서야 택시를 탈 수 있었다.
“강정동 어디로 모실까요?”
내 또래의 운전사가 경상도 억양의 표준말로 무뚝뚝하게 물어왔다.
나는 언젠가 택시를 타고 ‘신촌으로 갑시다’ 이렇게 말하고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가 운전사에게 꽤 긴 잔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 운전사는 푸념 비슷하게 ‘오늘은 하루 종일 아저씨 같은 손님만 타서 좀 짜증이 나네요. 신촌 어디 간다고 말씀해 주시면 제가 바로 방향을 잡아서 모실 수 있을 텐데, 가만히 앉아 계시니까 다시 물어봐야 하잖아요. 하루 종일 그런 손님만 타니까 묻는 것도 짜증이 나요. 그렇잖아요. 신촌이 전부 자기 집도 아니고....... 손님한테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요. 그렇다는 이야기죠. 손님은 신촌 어디로 가십니까.’ 이렇게 말한 뒤에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정도야 물어보고 안내할 수도 있죠’ 하고 말하려다 하루 종일 그러다 보면 짜증도 날 법하겠지, 생각하고는 잠자코 있었다.
지금도 택시를 타고 ‘강정동 갑시다’ 이래놓고는 좀 더 구체적인 장소를 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내 눈치를 보던 운전사가 다시 물어왔던 것이다.
“혹시 강정새미라고 아십니까?”
“강정새미요! 잘 모르겠습니다.”
운전사는 그런 것도 있었나, 하고 되묻는 표정이었다.
“강정동 어디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떠오르는 간판이나 좌표가 될만한 건물도 없거니와 떠오른다고 해도 이십 년 전의 이름을 들먹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강정새미가 아직 그대로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음, 도통 생각나는 게 없네.”
나는 난감한 심정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실내 거울로 나를 훔쳐보는 운전사의 호기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저 그러면 혹시 성남시장은 그대로 있습니까?”
문득 강정새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장이 떠올랐다.
“예, 거기로 모실까요?”
“일단 성남시장 근처로 갑시다. 거기쯤 가면 길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방향을 잡은 택시운전사는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트로트멜로디를 따라서 흥얼거렸다.
택시는 신도시의 잘 정비된 도로를 질주하여 큰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가 태화강 하류라고 자연스럽게 짐작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나온 곳은 논과 논으로 이어지던 삼산 평야지대에 들어선 신시가지였던 것이다. 나는 비로소 기억의 빗장을 열고 옛일들을 조금씩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상류로 거슬러 가면 태화교가 있고 그 아래엔 소용돌이치는 융금수가 있었다. 한 해 한두 명쯤 호기심이나 영웅심이 발동해서 융금수로 뛰어들었다가 익사체로 떠오르곤 하던 곳이었다.
기억의 눈으로 발원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산짐승이 살고 있다는 십리가 넘는다는 울창한 대숲이 나왔다. 그리고 사춘기이던 우리들이 윗옷을 훨훨 벗어던지고 횃불을 손에 든 채 밤새워 춤을 추던 남이섬도 보였다. 그 섬 어딘가엔 공사가 중단된 채 흉물스럽게 버려진 재벌의 별장도 있었다.
그 별장 터가 용이 누워 있던 자리여서 건축주에게 이름 모를 질병이 생겼다는 케케묵은 전설 같은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진의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 광란의 파티를 벌인 곳도 태화강의 발원지에 있던 남산 동굴이었다. 우리는 무대가 설치된 동굴에 현란한 조명과 드럼, 전자기타 등을 동원해서 환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놓고 열정적으로 고고 스텝을 밟았다. 자유를 얻은 기쁨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날뛰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날 은기와 나는 무대 위에서 깊은 포옹을 한 채 입을 맞대고 담배연기를 주고받았다.
은기의 입술이 떨리고 내 입 속으로 은기의 혀가 들어왔다. 나는 은기의 혀를 빠는 대신 담배 연기를 깊숙이 마시고 얼른 입술을 떼었다.
은기는 몇 차례 더 내게 담배 연기를 나눠주는 것처럼 키스를 시도했지만 나는 끝내 은기의 혀만은 거절했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사무친 채 ‘나 어떡해’를 열창했다. 간절하게 염원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은기에겐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은기 글마 태화강에다 뿌릿다. 새아 니가 왔으믄 좋았을낀데. 우앳든동 인자 잊아뿌고 공부 열심히 해라. 그라고 글마 혼자 간기 아이니까네 너무 상심하지는 말거래이. 진작 죽을라꼬 그캤는지, 죽기 며칠 전에 강정새미에 있는 궁자를 잡아가꼬 태화강에 보냈다 카드라. 동네 할매들이 난리쳤제. 글타고 이미 강에 던지 뿐 궁자를 우야겠노. 끝난기지. 글케 은기가 저승길에 지캉 같이 갈라고 미리 안 그랬겠나 싶으다. 이담에는 글마도 우리 맨치로 진짜 궁자를 가주고 태어날끼다. 은기가 니를 많이 사랑했다는 거 우리 친구들은 다 안다이가. 니 개안 채.”
그때도 두인은 밤늦게 전화를 걸어 동생에게 내 하숙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고 했다. 나는 이미 울산 사는 동생으로부터 지방신문 가십난에 실린 은기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인에게 아는 체 하지는 않았다.
은기가 몸과 마음의 심한 불균형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는지 아니면 다른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두인의 전화를 끊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을 앓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 와중에 은기가 나에게 복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가해자의 자책이었을지 몰랐다.
지독한 통증으로 밤새 벽지를 손톱으로 긁어내렸지만 그때만 해도 응급실에 갈 생각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달려간 약국에서는 위경련으로 추측하고 약을 지어주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종종 위경련에 시달렸다. 나에게 버림받은 은기의 복수였을까?
당시 마음만 먹으면 갈 수도 있었을 은기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은 모른다.
성남시장 주변도 몰라보게 달라져서 내 기억 속에 있는 옛길과 지금의 길이 잘 맞아 들어가지 않았다. 몇 번이나 가던 길을 되돌아 나온 뒤에야 겨우 강정새미로 가는 옛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나마 새로 포장되고 넓혀져서 옛길의 자취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아스팔트 아래 묻혀버린 옛길을 짐작으로 더듬어 가는 것이었다.
동네 입구까지만 복개가 진행되다가 꽤 오래 시멘트로 된 험한 몸뚱이를 드러낸 채 방치되었던 도랑은 아스팔트 도로로 변해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 길을 그려보아도 옛길에 새로운 길이 보태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부질없이 길을 눈에 새겨보았다.
어마어마하게 키가 크고 둘레가 넓은 아프리카산 원목들이 높이 쌓여 있던 동강목재와 성처럼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이후락 별장과 그 별장의 담장 아래서 밤늦게까지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호떡을 팔던 하얀 천막집이 떠올라 잠시 걸음이 느려졌다.
너무도 달라져버린 옛길에서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내 마음의 풍경이었다.
문득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을씨년스런 목살구이집 하나가 내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열린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이던 실내까지도 기억 속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들어가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리에 붙여놓은 메뉴며 간판들이 이십 년 동안 그대로 있을 수도 있는지 생각한 것은 나중 일이었다.
예비고사가 끝나고 사나흘 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급 친구들과 술을 나눠 마시고 나서였다. 나는 무작정 동네 근처로 아이들을 끌고 왔다.
지나다니면서 보았던 동네 입구 목살집을 마음에 두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술기운에 호기롭게 목살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조막손에 키까지 작아 왜소증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내어 준 자리는 홀이 아니라 뒷방이었다.
친구들은 겁도 없이 대두병이라고 부르던 1.8리터들이 소주를 시켰다. 술잔도 처음부터 대접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다가 의식을 잃었던 것인지, 구토에 시달린 악몽 같은 기억밖에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저녁 늦게까지 술을 퍼마시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나이트에 가서 놀다가 새벽녘에야 돌아왔다.
나는 해장국을 먹으러 가자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목살집을 나와 곧장 은기 방으로 갔다. 은기네 집에서 자는 것은 초등학교 이래로 늘 있어왔던 일이어서 굳이 외박한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되리라는 계산이었다.
내가 술 냄새를 풍기며 새벽잠을 깨웠는데도 은기는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건을 물에 적셔 토사물이 묻은 얼굴과 목, 그리고 손발을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언제부턴가 은기의 친절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몸을 맡긴 채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잿빛 하늘에서 이따금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약속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마음의 여유가 생겨 그랬겠지만 나는 강정새미로 가는 큰길을 벗어나 기억의 골목을 따라갔다.
언제부터 은기에게서 우물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은기의 친절에 길들여져 있던 내가 친절과 우물의 향기를 구분한다는 것은 어렵고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은기가 친절하게 대하는 아이는 동네에서 나 하나뿐이었다. 은기는 언제나 쌀쌀하게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동네아이들을 대하곤 했다. 나는 그런 은기의 태도가 일종의 우월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핏기 없는 얼굴과 가느다란 손목이 오히려 귀족적으로 비친 데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분명해서 아이들이 은기를 은근히 어려워하기도 했다. 게다가 명문 고등학생 형과 그 당시로는 특권층이나 다름없는 귀한 대접을 받던 대학생 형이 있던 은기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풍요로움과 자존감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믿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옆집에 살고 있던 나는 늘 은기네 집에서 함께 숙제하고 놀다가 아예 잠까지 같이 자는 일이 허다했다. 은기의 형이 없는 날에는 형의 방에 들어가 기타를 만져보기도 하고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음악을 듣기도 했다.
숙제를 끝내고 나란히 엎드려 만화책을 보다가 문득 고구마 서리를 하자고 한 것은 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은기는 내 말에 싱긋 웃었다.
은기와 나는 밖으로 뛰어나가 우리보다 한두 살 적은 아이들까지 선동해서 고구마 서리에 나섰다. 아이들이 박쥐 떼처럼 밭고랑에 납작 엎드려서 고구마를 캐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십여 분 남짓이었다.
자루에 담긴 고구마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서 은기와 나, 내 동생은 은기네 집으로 갔다. 은기네 집 식구들은 각자 방을 따로 가지고 있었지만 그 방들은 비어 있을 때가 더 많았다.
덕분에 우리는 잔치라도 벌이는 듯 고구마를 씻고 잘라서 밀가루를 입혀 튀겨먹었다.
고구마튀김을 먹을 때만 해도 된서리를 맞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몹시 화가 난 밭주인이 고구마 밭을 망쳐놓은 도둑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동네에 나돌았다.
우리는 전전긍긍하며 사나흘을 불안에 떨었다.
"새아야, 우리는 곧 붙잡히고 말기다. 괜히 불안에 떨지 말고 자수해서 광명 찾자.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하지만 막상 밭주인에게 가겠다고 하자 은기는 내게 꼭 달라붙어 손을 꼭 잡았다. 밭주인 집으로 가는 동안 은기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는 것은 나는 느꼈다. 그렇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자존심 강한 은기를 창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찾아가자 밭주인은 다짜고짜 우리를 앞세우고 집으로 가자고 몰아세웠다.
"주먹때기 만한 것들이."
밭주인의 일성이었다. 그리고 고구마 몇 개 훔쳐 먹자고 밭 전체를 다 망쳐놨으니 학교에도 알리고 부모에게 배상청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수확기가 안 된 고구마 밭에서 큰 것을 찾느라 밭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고개 숙인 채 앞장섰다. 하지만 은기는 자신이 직접 배상하겠다며 버텼다. 매일 학교 마치고 와서 고구밭일을 도울 뿐만 아니라 집안 청소와 빨래, 밥까지 하겠다는 것이었다. 은기는 아저씨가 만족할 때까지 그렇게 하겠으니 제발 학교와 부모에게는 알리지 말아 달라며 사정을 했다.
나는 하마터면 킥 웃음을 터트릴 뻔하다가 은기의 비장한 눈과 마주치면서 스르륵 진정이 되었다. 그러나 은기의 제안은 밭주인에게도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모양이었다. 밭주인은 대꾸하는 대신 코웃음 쳤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앞장서 이 녀석들아."
밭주인 막무가내로 우리를 끌고 나가려고 했다.
“차라리 여서 죽겠심니더. 죽여주이소.”
은기는 사력을 다해서 녹슨 방범 창살에 자기 팔을 감고 매달렸다.
"그렇게 겁나면 애당초 그런 짓을 말았어야지."
밭주인이 은기의 태도를 비웃었다. 하지만 수차례 은기를 방범창살에서 떼어내려고 애써도 되지 않자 차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졌다.
"아저씨 이러다가 은기 팔 빠지겠심더."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외쳤다. 사실 나도 은기가 사력을 다해 매달리면서 버티는 걸 보고
너무 놀라서 가슴이 쪼그라져 있었다.
"알았다. 그만 놓고 집에 가거라."
어느 순간 밭주인의 목소리와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그제야 은기는 방범창살에서 떨어졌다.
"내일부터 밭일 도우러 올게요."
은기가 밭주인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공부나 열심히 하거라. 그리고 고구마 먹고 싶으면 고구마 캘 때 한 번 오거라. 실컷 먹게 해주꾸마."
우리는 밭주인의 전송을 받으며 그 집 철대문을 나섰다.
늘 그렇듯이 은기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대학 다니는 은기 형의 방에 들어갔다. 은기가 내 머리에 커다란 헤드폰을 씌워주고 하얀 나비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은기가 등 뒤에서 나를 안았다. 늘 있는 일이어서 나는 노래에 집중했다. 하지만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은기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은기야. 와? 와 우노?"
"아이다".
"아이기는 니 무슨 일 있제. "
"아까......"
"아까?"
"그 고구밭집에서......"
"그래 니가 악착같이 버티가 우리가 이깄다이가."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다 니 때문이다."
"머라카노. 나는 완전이 쫄아가꼬 가마이 안 있었나."
"니가 아니었으면 내가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겠노. 니가 학교에 가서 혼나고 창피 당하게 놔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
"니가 내인테는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기가 내 등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울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도 눈물이 났다.
"소중한데 울기는 와 우노. 그만 울어라. 가시나 맨키로."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소리쳤다.
"그란데 은기야, 니 정말로 식모처럼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할 줄 아나?"
"내는 그런 거 잘한다. 나중에 니캉내캉 같이 살게 되믄 내가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꾸마."
은기는 그제야 활짝 웃었다.
"와 니가 내캉 같이 사노."
"혹시 아나. 같이 살게 될지.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던데. 우리가 같이 사는 생각. 니는 그런 생각 안 드나?"
은기가 서운한 듯 나를 바라봤다.
"아이다 나도 가끔 그런 생각한다."
"그라믄 우리 중학교 들어가면 같이 자취하자."
"그래 좋다 그카자."
하지만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걸어서 삼십 분 정도 되는 곳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가긴 했지만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하겠다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자취는 시골서 유학 온 아이들이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은기나 나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신 우리는 중, 고등학교 6년 내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하교를 함께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은기와 함께 다녔던 집 앞 골목은 기억에 비해서 턱없이 비좁았다. 여름날이면 다이알 비누 냄새가 어지럽게 떠다니던 그 골목 중간쯤, 한 채의 집이 오래전 그대로 변함없었다.
하지만 세월을 누더기처럼 걸치고 있는 시멘트 담장과 기와와 마당 한가운데 있는 수도는 몰락으로 비쳤다.
골목 끝에서 우측으로 돌면 바로 내가 살던 옛집과 은기네 집이 나왔다. 그러나 이젠 그 자리에 삼 층 양옥집이 들어서 있었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은기의 집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은기는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지만 나는 은기네 집안을 떠도는 불행의 냄새를 육감으로 느꼈다. 누구보다도 똑똑하던 은기의 성적이 곤두박질치고 결국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믿었다. 은기의 어머니는 노름으로 아버지는 바람으로 형들은 사업 밑천으로 재산을 축냈던 것이다.
하지만 은기는 어쩌면 자기 속에 자꾸만 깊어지는 우물과 속 깊은 싸움을 하느라 학교와도 세상과도 멀어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의 사타구니를 갑자기 움켜잡으면서 ‘다리 밑에 궁자야’ 라고 외치면 몹시도 수줍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별이 빛나는 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들이 모두 우리의 아픔이기라도 한 듯 귀를 기울이던 사춘기까지 은기와 나는 우정과 사랑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은기와 내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파티가 있던 그날 밤이었다. 파티 내내 연신 술을 마셨지만 격렬하게 춤을 춘 덕분에 술기운은 말끔히 가시고 허기가 몰려왔다.
대낮부터 시작한 파티여서 동굴을 나왔을 때도 아직 초저녁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은기와 나는 라면으로 허기를 때우고 나란히 누워 스모키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스모키는 은기보다 내가 더 좋아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래왔듯이 은기는 나를 위해 음악을 틀었다. 나는 좀 피곤해서 자고 싶었다. 은기가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내 옷을 벗기기 시작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대로 잠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알몸이 되어 뒹굴었던 적은 없었지만 서로 몸을 만지거나 자위를 해 준 경험이 있던 탓에 나는 은기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새아야, 니는 내캉 살자. 알았제."
"그래, 알았다."
"죽을 때까지 내 배신하면 안 된다. 니가 없으면 내는 죽을 끼다. 알겠나."
"내가 니를 우째 배신하노. 절대 배신은 안 한다."
나는 의미도 모른 채 약속을 했다.
그날 손으로 내 몸을 몇 차례 쓰다듬던 은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신을 애무해 왔다.
은기가 내 궁자를 입에 넣었을 때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욕망에 도취되어 항거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이제까지와 달리 착잡하고 수치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은기가 낯설고 불편해서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은기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도 우정과 사랑에 대해서도 근원적인 불쾌감이 느껴지던 날이었다. 어쩌면 비로소 내가 남자로 성장해버렸던 건지 몰랐다.
그날 이후로 은기의 우물은 더 이상 나를 붙잡아 둘 수 없었다. 내게 은기는 우물이 아니라 궁자였다. 나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은기를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워 피하게 되었다.
은기는 피하기만 하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자기 속의 우물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했다. 껍데기만 남자일 뿐이어서 아무리 남자인 척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여자로 살아가는 삶을 꿈꾸게 되는 괴로움에 대해서도 비로소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기는 꽤 오랫동안 자기의 우물을 버리려고 무던히도 노력해 왔다 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자기의 궁자도 가슴에서부터 꿈틀거렸으면 좋겠다고 하는 은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나는 은기를 위로해 주기는커녕, 이제 너의 친절과 다정함이 소름 끼친다고 차갑게 내뱉어버렸다. 그것은 내 나름대로의 은기에 대한 배려였다.
당시에는 내가 냉정해지거나 떠나버리면 은기가 남자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게다가 은기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이미 은기 모르게 여학생과 사귀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옛집이 있던 자리를 벗어나 골목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생각처럼 강정새미가 나타나주지 않았다. 짐작만으로 복개된 새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회색하늘이 음산하게 내려앉아 있던 어느 날이었다. 열두어 살 안팎이던 은기와 내가 예닐곱 명의 아이들과 함께 우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 궁자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대체로 흐린 날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고 있던 우리는 벌써 삼십 분째 그러고 있었다.
“야, 궁자다! 궁자가 나타났다.”
아이들이 지쳐가고 있을 때 누군가 소리쳤다. 어른 팔뚝만큼 굵은 궁자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장엄하게 헤엄치며 수면 위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내 궁자는 다시 물속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어른들이 강정새미를 청소하기 위해 물을 다 퍼내고 바닥에 쌓인 흙과 돌을 긁어내도 궁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또다시 궁자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 분분한 의견을 내놓았다.
“새미 벼랑박(벽) 돌미이(돌멩이) 틈새에서 살고 있을 끼다. 거 들가(들어가) 숨었다가 물이 차면 나오는 거 아이가.”
어른 머리만 한 돌로 쌓은 우물에는 듬성듬성 구멍이 나 있어서 가능한 추측이었지만 모두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이다 그캤으믄 가물었을 때 벌써 죽아뿌쓸끼데이. 작년에는 가물어가 맨날 바닥이 들나가꼬(들어나서) 있었는데 우째 살아가꼬 또 다시 슥 나온다 말이고.”
“글타.”
강정새미에 둘러 서 있던 아이들 모두가 수긍의 뜻을 보였다.
“모리는 소리 하지 마래이. 그 카이까네 궁자제. 그래 쉽게 죽아뿌믄 누가 궁자라 카겠노.”
“다 틀맀다. 새미에는 궁자가 강이나 바다로 나가는 길이 있다고 어른들이 안 그카드나. 궁자는 그 길로 언제든지 새미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는 기다.”
은기가 한 말이었다. 궁자를 영물로 알고 있던 아이들에게는 은기의 말이 가장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카믄 물을 다 퍼내고 바닥을 청소했는데도 와 그 길이 안 보이는 기고. 어디로든 뚤핀 구녕이 있어야 할꺼 아이가.”
“궁자가 댕기는 길하고 구녕하고는 틀린다. 그 길은 새미 중간에 있을 수도 있고 밑바닥에 있을 수도 있고 바로 열(여길) 수도 있는 기라. 궁자가 댕기는 길은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길인 기라.”
우리들 중 누구보다도 조숙했던 은기가 가리킨 길 중 하나는 우리가 고개를 처박고 있는 강정새미 중심의 허공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은기에게 쏠렸다.
“그카믄 날으는 궁자가....... 궁자가 새맨키로 날라간다 말이가.”
누군가 은기에게 반박했지만 은기는 아이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옆에 있던 나에게 귀엣말을 했다.
“새아, 니인테만 말해주꾸마. 사실은 강이나 바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강이나 바다가 아이고 용궁이나 무릉도원 같은데 아이가. 무릉도원이 뭔동 니도 알재.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거래이. 자아들은 무식해가꼬 말도 안 통하는기라.”
은기가 말하고 있는 사이에 굵은 빗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해서 아이들은 제각각 흩어져 처마 밑으로 혹은 자기 집으로 숨어들었다.
무척 크긴 해도 민물장어가 분명한 궁자를 영물로 여기고 은연중에 두려워하던 동네사람들의 의식이 아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우연이었겠지만 당시 강정새미 근처에는 사내아이들만 네다섯씩 되는 집이 많았다. 그것도 궁자의 영험 때문이라는 소문까지 보태져서 강정새미에는 아들을 원하는 여인들의 기원과 샘굿이 끊이지 않았다. 강정새미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늘 보아오던 아이들은 덩달아 궁자를 신성시 여기게 되었는지 몰랐다.
우리 어린 시절의 신화였던 강정새미처럼 은기 역시 궁자가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우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오랜 우정으로도 이해하지 못한 은기의 깊은 우물을 생각하자 매운 겨자를 삼킨 것처럼 코끝이 아려왔다.
나는 골목으로 되돌아갔다가 길을 잃어버렸고, 결국에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야만 했다.
“강정새미요? 그거 없어진 지 오래되는데요. 저쩌가 그 새미 있던 자리아인교.”
강정새미가 있던 자리를 알려 준 사람은 삼십 대 초반의 사내였다. 그 사내는 시멘트로 입구를 막아두었던 강정새미를 몇 해 전에 묻어버렸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하긴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동네에 수도가 들어오면서 마을 사람들은 강정새미를 나무뚜껑으로 덮어 버렸다. 그때부터 강정새미는 가끔 비상식수가 필요할 때만 열리곤 했을 뿐 언제나 굳건히 닫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을 바라는 샘굿이나 기도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강정새미의 나무뚜껑이 비바람에 낡아가고 있던 어느 날 아침, 나는 금줄이 쳐진 강정새미 가장자리 한켠에 누군가 깊이 새겨 놓은 ‘삶?’이란 글자를 발견하고는 우뚝 선 채 고독한 울음을 참아 삼켜야 했다.
‘삶?’은 아직 철도 들지 않은 나에게 존재의 허무를 서럽게 가르쳤다. 화인처럼 고통스럽게 나를 태우면서 마음에 찍혔던 ‘삶?’은 세월이 지나고 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를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건너편에 있는 강정다방으로 가지 않고 강정새미가 있던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비를 맞고 있었다.
“새아, 니 청승맞게 그카고 있을래.”
두인이가 우산을 쓰고 다가와서 내 어깨를 툭 쳤다. 그의 말투는 이십 년이나 되는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주변의 상점에서 내뿜는 흐릿한 불빛에 비치는 그의 얼굴은 탄력을 잃고 주름졌을 뿐 옛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 두인아 반갑다.”
“그래, 반갑제. 이기 얼마만이고.”
“한 이십 년 다 돼 가제. 두인이 니도 인자 아저씨 다 됐네”
“그카이, 이놈의 세월을 어느 종래기가 막을 수 있겠노. 안글라.”
두인은 자기 목소리가 좀 크다고 생각했는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미국서 온다는 민석이는 갑자기 사정이 생겨 못나왔다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민석이가 온다는 건 까맣게 잊고 있었던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