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리
4. 모리
놈이 모리였다. 그러나 아직은 ‘모리’라고 불릴 수 없었다. 마치 태어나지 않은 이름이 몸 안쪽에 숨을 쉬며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 이름은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따라다닐 뿐이었다.
놈의 옆얼굴에는 푸르스름한 빛이 감돌았다. 그 빛은 인위적인 조명에서 나온 것도, 대기 속 습기 때문도 아니었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마치 오래전부터 피부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색채가 서서히 표면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금세 잊힐 법한 빛, 그러나 다시 떠올리면 등줄기부터 식어 내려오는 기묘한 잔상 같은 것.
얌전하게 고개를 숙인 채, 놈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 자세에는 공격성도, 분노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마주하는 순간,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연민과 차갑게 식어버린 공포가 동시에 배어 있었다. 그 두 감정은 그의 눈꺼풀 가장자리에서 엉켜 있었고, 살갗 위로 스며든 냄새가 그 감정을 증명하듯 퍼져 나갔다.
놈에게서는 죽음의 냄새가 났다. 썩은 것도 아니고, 피비린 것도 아니며, 매캐한 화장 냄새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의 열기가 완전하게 빠져나간 후 남는미묘하게 텅 빈 냄새였다.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체취. 아주 오랜 시간 햇빛을 받지 못한 흙을 뒤집어 올렸을 때 한순간 피어오르는 비릿하고 서늘한 향기와 비슷했다.
놈의 피부는 숨을 쉬지 않는 듯 보였고, 손끝의 혈관조차 얼어붙은 유리관처럼 투명했다. 그 주변의 공기마저 소음을 잃은 채 조금씩 기울어진 정적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와 가까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온기와 활력이 조금씩 빨려 나가는 기묘한 착각을 경험할 수 있었다.
놈을 감싸고 있는 것은 생기가 아니라, 죽음 그 자체였다. 그 죽음은 흉포하지 않았고, 누군가를 조여오는 악의도 없었다. 그저 오래된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숨결 사이사이에 고요하게 베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섬뜩했다. 눈을 돌려도, 귀를 닫아도, 그 존재는 어둠 끝에서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모리는 아직 자신이 모리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나 이름보다 먼저 걸어오는 죽음의 냄새가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그를 불러내고 있었다.
이놈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지금 보니 도저히 나이를 분간하기 어렵군. 아이 같기도 하고 중늙은이 같기도 하니. 고대인의 미라가 무덤에서 나와 돌아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린 나이에 죽어 수백 년간 무덤 속에 묻혀 있다가 깨어난……. 놈 곁의 공기가 기묘하게 비어 있는 것 같다. 숨을 들이켜 보면, 폐 깊숙이 축축한 흙 냄새가 조금 배어난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겁을 집어먹고 있는 거지! 씨발...... 예순이 코앞인데도 두려움은 여전하군. 어린아이처럼 귀신한테 잡아먹힐까 봐 떨고 있어. 어쩌면....... 아니 죽은 놈이 이렇게 돌아다닐 리는 없겠지. 유령처럼 보인다고 해도 분명 사람이겠지.
- 그 돈은 그냥 가져도 됩니다.
성 감독은 돈과 명함을 내미는 놈의 푸르딩딩한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놈의 손가락은 뼈마디가 드러나 보일 만큼 앙상하고 길었다. 긴 손톱 밑에는 검은 때가 잔뜩 절어 있었다.
- 저저전, 피필요 없...... 어...... 요.
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놈이 성 감독에게 어떤 두려움을 느꼈던 건 아니었다. 사람에게 처음 받는 호감과 관심에 조금 당황한 것뿐이었다.
- 혹시 나이가…….
성 감독이 물었다. 잔뜩 긴장한 놈의 꼴을 보니 섬뜩한 죽음의 냄새에도 불구하고 용기가 났다.
성 감독의 말이 끝나지 않은 채 허공에 걸려 있을 때, 놈의 눈동자는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마치 오래된 기억의 조각이 갑자기 표면 위로 밀려오듯, 눈 밑의 피부가 살짝 떨렸다. 놈은 입을 열기 전에 잠시 숨을 들이켰다. 그 찰나에는 입속에서 차갑고 비릿한 금속 냄새가 스치듯 퍼졌다. 말을 내뱉을 때, 언어는 놈의 혀끝에서 미끄러졌고, 혀의 움직임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서 오는 것처럼 늦게 따라왔다.
- 여여열 이이이일곱 사사사살입니......어......다.
놈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지하실 문을 억지로 밀어 열 때 나오는 삐걱거림과 비슷했다.
놈이 말하는 순간 그의 턱 아래 작은 힘줄이 드러나며 팽팽하게 버티고 있었고, 손등 위의 힘줄은 죽은 사람의 손처럼 텅 빈 색으로 부풀어 올랐다. 놈은 자신의 나이를 스스로 믿지 못하는 듯했다. 놈은 열일곱이라는 숫자 뒤에 달라붙어 있는 기나긴 어둠의 시간을 한꺼번에 마주한 사람처럼 보였다.
놈은 마치 무언가를 토해내고 숨을 잃은 사람처럼 가벼운 어지럼증에 휘청였다. 목젖 근처에서 가느다란 떨림이 올라왔고, 입술은 열일곱이라는 숫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채 미세하게 경련했다.
성 감독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던진 평범한 질문 하나가 놈에게는 어둠 속 묵혀 있던 매듭을 억지로 끊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스치듯 떠올렸다.
- 어, 그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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