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알몸

by 이세벽


독수리는 공중에서 나를 놓아버리고 멀리 날아가 버렸다.


독수리가 나를 너무 꽉 움켜쥐어서 간신히 붙어 있던 살들이 으스러진 데다 그나마 땅에 부딪히면서 내 예쁜 살들이, 아니 상처투성이던 살들이 산산조각 흩어졌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내어줄 것 없는 초라한 알몸이 되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풀숲에서 나는 며칠 동안 나뒹굴었다.


내 꿈은 사라지고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는 날이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내 안에 있는 갈망이 내가 가야 할 그곳으로 데려가고 있다고 믿으며 매일 매일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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