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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면 Aug 05. 2022

1. 기'묘'한 인연

21년 5월.

두 번째 회사 생활에 실패하기 얼마 전이었다.

금요일이면 퇴근 후 서울의 자취방을 떠나 본가로 가곤 하던 때.

나는 야옹이를 만났다.




느지막이 일어난 토요일 날, 

우연히 부엌 한편에 놓여 있던 고양이 간식 캔 박스를 아빠가 발견했다.

편의점 알바생이었을 때 자주 마주치곤 했던 회색 고양이에게 먹이려고 샀던 거였다.

24개들이 박스 안엔 캔 대여섯 개 정도가 남아 있었다.

아빠가 버리라고 했지만 버리기 싫었다.

혹시나 길고양이를 만나면 주고 싶으니 그냥 놔두라고 하고 자리를 차지하는 박스만 버렸다.

그런데 그날, 정말 우연히도 슈퍼에 다녀오는 길에 길고양이를 만났다.

길목에 주차되어 있는 차 아래에 삼색 고양이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귀여워……!’

홀린 듯 차 가까이 다가가 쪼그려 앉으니 다행히 도망가진 않고 

너는 누구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만 봤다.

몸집이 작았다.

‘귀여워……!’

그때 아빠한테서 지켜 낸 간식 캔이 떠올랐다.

버리지 않길 백번 잘했다 싶었다.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잠깐만 기다리라 말하고 재빨리 집으로 들어왔다.

고양이가 있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간식 캔을 뜯어 일회용 접시에 담고 다시 재빨리 나왔다.

보통 길고양이는 먹을 것을 준비하는 사이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이 너무너무 급했다.

다행히 녀석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차 밑에 앉아서.

접시를 슬그머니 밀어주고 몇 걸음 떨어져 쪼그려 앉았다.

“괜찮아, 먹어.”

좀 경계하던 녀석이 살금살금 차 밑에서 나와 냄새를 맡더니 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더 가까이 가면 도망갈 것 같아 대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한참 지켜보다 다 먹은 걸 보고 접시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빠한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귀엽지 않냐 잔뜩 호들갑을 떨었다.

다음에 또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말이 가고 출근해 거지 같은 월요일을 보낸 뒤 자취방에서 저녁을 먹을 때였다.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어쩐지 상기되어 있었다.

-야, 고양이가 왔다.

“응? 무슨 고양이?”

-네가 밥 줬다는 걔. 현관문 앞에 앉아 있다. 사진에서 본 거랑 똑같은데…….

“뭐?”

너무 놀랐다. 왜냐면 그럴 수가 없으니까.

일단 내가 밥을 주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녀석은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본가는 단독주택이긴 하지만 그 안에 네 가구나 산다.

현관문이 네 개란 소리.

우리 집은 대문을 들어섰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두 번째 방이다.

만에 하나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해도 도대체 어떻게 족집게같이 우리 집 앞에 앉아 있다는 말인가.

녀석이 있던 곳과 우리 집의 거리가 가깝긴 했다. 내 보폭으로 고작해야 20초 정도 걸릴 거리.

그래도. 그래도! 나를 따라오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접시에 간식 캔 남은 걸 따서 줬더니 먹고 갔다고 했다.

나는 당장에라도 본가로 날아가 녀석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너 대체 어떻게 알고 왔어?”

그렇게, 우리의 기‘묘’한 인연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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