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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면 Aug 10. 2022

5. 비가 오는 날엔

야옹이는 여느 고양이들처럼 물을 싫어한다.

닿는 것도, 먹는 것도.

그런 아이가 비가 쏟아지는 날에 우리 집에 찾아왔다.




간식 캔을 따 줄 때면 물그릇도 옆에 놓아주었지만

야옹이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여느 보통 고양이들처럼 물을 거의 먹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창 더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집에 사는 할머니가 화분에 물을 주시느라 마당이 온통 물바다가 되면

대문 앞에서 들어올지 말지 한참 고민하다가 껑충 뛰어 그나마 마른 곳으로 발을 디뎠다.     


야옹이와 나, 아빠가 제법 친해졌던 무렵이었다.

야옹이는 하루에 많으면 다섯 번씩도 집에 찾아와 잠시 방 곳곳을 둘러보며 놀다가 가곤 했다.

열한 시 즈음이었나, 열두 시 즈음이었나.

꽤 밤이 깊었을 때 비가 쏟아졌다.

아빠는 야식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방에 누워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매번 새벽 다 될 때까지 안 자고 맘껏 뒹굴거렸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던 때,

밖에서 빗소리를 뚫고 우렁차게 야옹, 우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에 있던 아빠도 들었는지 쏜살같이 현관 쪽으로 나왔다.

다시 한번 야오오옹, 울음소리가 들렸다.

설마설마 하며 문을 열고 나가 봤다.

대문 밖에 야옹이가 있었다!

문을 열어 주니 허겁지겁 집 안으로 달려 들어오더니 푸드득, 한바탕 몸을 털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왔어?”

아빠도 나도 놀라고 당황스러워 그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수건을 가져와 젖은 몸을 닦아 주려는데 자꾸만 피했다.

싫어하는 것 같아 캔을 따 주고 먹을 때 머리와 등만 겨우 살짝 털어 주었다.

물을 싫어하는 마음보다 우리 집에 오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는 의미 같아

너무 뭉클했다.

밥을 먹고 거실에서 조금 쉬나 싶던 녀석은 금방 가겠다고 현관문 앞에 앉아 나와 아빠를 쳐다봤다.

“지금 가려고? 밖에 비 많이 와. 조금 더 있다가 가.”

조금 더 기다린다고 그칠 비가 아니었지만 일단은 그렇게 말했다.

괜찮다면 하룻밤 자고 가도 좋았다. 어차피 집이 아주 가까우니까.

몇 번이나 설득했지만 야옹이는 현관에 붙박인 듯 앉아 있었다.

여기가 진짜 집이 아니란 걸, 그래서 가야 한단 걸 아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빠는 내가 안아서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했지만 함부로 껴안을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쓰다듬는 것 외에 다른 접촉을 시도해 본 적도 없었고.

혹시나 맘대로 들어 올렸다가 다른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망설이다 결국 우산을 들고 같이 나가기로 했다.

문을 열자마자 야옹이는 다시 빗속을 뚫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집까지 우산을 씌워 주고 싶었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몇 걸음 같이 가지도 못하고 야옹이는 저 멀리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 깜깜한 어둠 사이에서

야옹이의 뒷모습을 제대로 지켜보지도 못했다.


야옹이는 여전히 비가 오는 날에도 가끔 찾아온다.

막 쏟아지는 날에나, 부슬부슬 분무기로 흩뿌리는 듯한 비가 올 때나 상관없이.

그저 배가 고파서, 아니면 잠깐 쉬러 올 뿐인지 몰라도

그때마다 나와 아빠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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