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별로 내 취향이 아닌 이 곡에 대한 글을 쓰게 만들다니. 하루를 무탈히 마치는 게 목표였던 사람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잠 못 이루게 만들다니. 당신 참 대단한 사람이야.
한 시대의 막을 내린 이는 얼마나 뛰어난 사람일까. 음악 전문가들은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라져도 딱 한 권만 남아 있다면 사라진 음악을 모두 복원할 수 있다’ 말하는데, 그 한 권을 만든 이는 얼마나 위대한 사람일까. 1750년, 죽음과 동시에 바로크 시대의 막을 내린 독일 작곡가 바흐의 이야기다. 그는 뼈대 있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두 명의 부인, 20명의 자식을 책임지느라 부, 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에게 위대한 작곡가로 알려진 음악의 아버지 바흐, 당시에는 그의 음악이 얼마나 소모품처럼 여겨졌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바흐의 사망 약 100년 뒤 태어난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신부신랑 퇴장할 때 쓰이는 곡 작곡가)은 생계를 유지하기만도 벅찼던 당시 음악가들과 달리 풍족한 생활을 했다. 하루는 멘델스존의 하인이 푸줏간에서 고기를 사 왔는데, 고기를 싸고 있던 포장지는 바흐의 악보였다. 악보 일부만 보고도 심상치 않음을 느낀 멘델스존은 약 2년에 걸쳐 그 악보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바흐를 세상에 알린다.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하던 바흐는 멘델스존에 의해 재조명받아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다.(바흐와 멘델스존의 연결 고리를 설명하는 두 개의 썰 중 하나지만 신뢰도가 낮은 이야기이긴 하다.)
시대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와 나를 동일시하는 게 아니다. 난 우리 동네도, 우리 가족도 대표하지 못하는 걸. 다만 멘델스존이 바흐를 세상에 알려, 사라질 뻔한 바흐의 음악을 찬란히 남긴 것처럼 ‘나’라는 세계에서 사라질 뻔한 나를 꺼내준, 멘델스존과 같은 사람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다. 또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벌써 우리가 만난 지 5년이 되어 간다. 일터에서 만난 사람이 이렇게 귀한 존재가 될 줄 그땐 몰랐다. 내가 가진 능력은 남들에게도 있는 거라며 스스로를 한없이 작게 만들 때 나의 가능성을 믿어 준 사람. 생각보다 괜찮은 어른이 아닌 것 같아 자괴감이 들 때 그래도 기특한 어른 정도는 된다고 느끼게 해 준 사람. 당신 덕분에 요즘 난 과거에 대한 후회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산다.
언젠간 바흐에 관한 글을 쓰려고 했지만 첫 곡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될 줄은 몰랐다. 바흐만의 유기적이고 논리적인 음악, 어렵지 않은 화성만으로도 비통함의 극한을 보여주는 음악 등 내가 더 아끼는 음악이 있음에도 이 곡을 먼저 소개하는 건 그만큼 당신이 나에게 소중하다는 뜻이다. 내 음악적 취향을 잠시 내려놓고 당신이 좋아하는, 당신에게 전달하고 싶은 글을 썼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