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더위가 찌는 듯 휘감을라치면, 몽땅 벗어 버리고 나돌아 다니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지만 그리하지 못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세상에 서로 간에 지켜야 할 도리가 있기 때문인지라. 보는 이 없이 혼자 산다면서야 발가를 벗든지 물구나무를 서든지, 제 시원한 대로 살아도 탓할 이가 있겠느냐만, 함께 사는 세상에는 둘러보아야 할 주변이 넓다. 그런데, 이 “솔직” 과 “도리”라는 것이 무슨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처한 환경이나 경우에 따라 좌표가 좌로 우로 움직이는 것이기에, 이것이 때로는 편리하기도 하고 때로는 혼동되기도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몸담아온 사회에 그냥 주욱 살아가게 되면, 솔직히 표현해야 할 때와 지켜야 할 도리 때문에 적당히 움츠려야 할 때를 커 가면서 저절로 체득해서 순리에 맞게 알게 되지만, 산천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이국에 와서 살게 될라치면, 이것 때문에 작은 듯 큰 듯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때가 많이 있다. 서구사회에 살다 보면, 길거리에서든 엘리베이터 안에서든 서로 얼굴이 마주치면 살짝 미소로써 대하고 간단한 인사말을 하게 되는 것이 상례인데, 이런 것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게 느낀다. 빌려 입은 옷같이 거북하다. 이것도 사람끼리 하는 일이라 세월이 지나면 몸에 익어 별반 어색치 않게 되고 오히려 좋게 느껴져, 웃으며 사는 세상에 동화되게 마련이다. 어쩌다 한국에 다니러 가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될 때, 같이 탄 옆 사람에게 그동안 몇 년간 애써 몸에 익힌 그 미소라도 지을라치면, 문화가 다른 땅에서 별종으로 취급받는 낭패를 당할 때도 있다.
일가 권솔 대동하여 처음 외국 땅에 이사를 오게 되면, 동서남북 구별이 안 되고, 보이는 것이 다 생경한데 말조차 시원치 못하니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가 따로 없다. 딸린 식구가 기둥처럼 믿는 터인데, 남편으로서, 애비로서 체면과 위엄도 지켜야 하겠는데, 시골 면장도 알아야 한다는데, 무얼 제대로 아는 게 있어야 체면이고 도리고를 지키지. 정말이지 그 체면이 말이 아닐 경우를 당할 때가 많다. 이럴 때, 미리 와서 살고 있는 우리 동족의 교포라도 만나면, 그리고 친절하게 도와준다면, 세상에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우선 시장 보는 요령부터 시작하여 먼저 오신 “선배님”께 하나둘 배우게 될 때 같은 민족이기에 느끼는 동족애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격도 하게 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다른 교포 가정도 차츰 알게 되고 서로 왕래가 잦아지면서 친하여지게 된다. 오늘은 김 사장님네 집에서, 다음 주말에는 박 회장님네 식구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서로서로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우리가 남이냐?” 어깨동무하는 사이가 되어, 이제 “이웃사촌”이라는 우리의 옛말이 객지에 와서 모름지기 번쩍이는 빛을 발하게 된다. 이민사회에서는, 고국에 금송아지 한 마리쯤은 저마다 묶어 두고 왔다 보니, 각자 호칭이 좀 과하기도 하다. 그래도 한국에서 무얼 하며 살았던가는 서로에게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에게 외로운 마음이 있는 한, 새로운 사회에 섞여 들어가기에는 아직 절벽 같은 장벽이 느껴지는 한에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엎어지며 자빠지며 친하게 지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느 집의 수저가 몇 벌인지도 저절로 알게 되고, 현이네 집 거실 구석에 있던 난초가 지난주에 드디어 꽃이 핀 것도 안다. 우리가 한국에 살 때는, 남편은 직장 따라 사업 따라 남자들끼리 친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따로 친한 친구들이 있어 좋은지라, 서로의 가족이 다 함께 친하게 되기란 그리 흔치 못한 것이 사실이고, 출가한 형제들끼리라도 온 식구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얼마만 에라도 한 번 있기가 힘든 그런 환경과 관습 속에 살다가 이렇게 외국에 와서야 옛날일 향수처럼 그리던 대가족제도의 그 정 많고 따뜻한 것을 이제 한껏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서로가 허물없이 지내고, 내가 좋으면 너도 좋겠지 하는 마음에, 갖추어야 할 체면이나, 지켜야 할 도리가 점점 거추장스러워지고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제 기준에 맞추어 솔직하여지게 된다. 얼마나 좋은가. 믿음을 함께하는 이들끼리 마음속에 그리는 그 이상향 같은 “공동체 생활”에 가까워지는가. 그런데, 아뿔싸, 어느 날 순이네 집과 현이네 집 사이에 사발 깨어지는 소리가 나고 갈라서 버렸다. 자기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처음 와서 동서남북 못 가릴 때 시간 쓰고 돈 써서 도와준 공도 모르고 우리가 어디 시간이 남아서 그랬나 돈이 넘쳐서 그랬나. 이제 와서 사람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이것이 한쪽의 변이고, 또 다른 한쪽은, 지네들이 해 준 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툭 하면 사람 얕잡아 보기를 제 회사 졸병 대하듯 하니, 누군 사장 안 해 본 사람 있나.
애초에 인연을 맺게 해 준 것이 “외로움”이었기에 그동안 서로가 기대기하며 살다가, 돌아가는 물정 알만 하고 외로움을 이길 만하면 이제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서로의 사이에 감추어져 있던 융합하기 힘든 이질적인 요소가 드러나게 되고 제 잘난 맛에 사는 것 같은 서양의 겉보기 관습이 벌써 몸에 묻어 있는지라, 용서와 화합이 잘되지 않는다. 차라리 덜 친했더라면, 그냥 그저 착한 이웃으로만 알고 지냈더라면, 뜨겁지 말고 그냥 따뜻하게 지냈더라면, 이렇게 상종 못 할 원수같이 되지는 않았을 것을. 크지도 않은 그릇에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 담다가 그릇조차 깨어져 버렸으니 이제 피차간에 지우기 힘든 상처만 남게 되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들어온 “중용의 미덕”이 이처럼 절실히 필요할 때가 없으리라.
여보게들, 우리 각각 한 가정에 가장이 아닌가. 냄비에 물 끓듯 하니 낭패 아닌가. 가마솥처럼 깊게 은근히 데워지는 서로가 되시게. 나더러 하는 소리이기도 하니 오해는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