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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Sep 19. 2020

여름, 그 뜨거움

글쓰는 소방관
김반장 김강윤입니다
퍼붓던 비와 세찬 바람이 지나자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이 오는 듯합니다.
더위가 가고 난 자리가 선선하여
기분이 괜찮습니다

지나간 여름을 생각해보니 작년 여름
어느 출동이 생각납니다

제가 근무하던 부산 기장의
어느 한약재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새벽녘에 발화된 화재는
빠짝 마른 한약재를 빠르게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5층짜리 조립식 건물이었는데
신고 후 5분도 안되어 도착한 현장은
이 세상이 아닌 붉은 지옥 같았습니다

샌드위치 패널의 외벽은
화세를 이기지 못하고 찌그러져
튀어나왔고
그 사이로 시뻘건 불이 미친 듯이
용솟음치며 솟구쳐 오르고 있었습니다

진압과 수색을 하기 위해
센터 화재진압팀과 내가 속한 구조대가
내부를 진입하려 했지만
불이라는 놈은 우리를 보자
죽일 듯이 덤벼들었습니다

2층 계단에서 결국 더 올라가지
못하고 우린 철수해야 했습니다
불의 위력은 엄청났고
전 저와 후배들의 안전을 위해
물러서자고 지시했습니다

내부에 사람은 없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불이 옆 동의 화학 도료 제조공장으로
번지는 것만큼은 목숨 걸고 막아야 했습니다

저희는 사투를 벌였습니다
화점과 떨진 곳의 건물 외벽을
도끼로 파괴하여 약재를 밖으로 들어내고
옆 공장 문을 뜯어 신나 등
가연성 물질을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진압팀은 무려 수십 대의 소방차를 동원해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부어댔습니다

그러기를 4시간여.
괴성을 지르며 타던 불길은 잡혔고
아침해가 떠오르더군요

눈부시게 비치던 햇빛을 보자
온몸의 힘이 풀리고
눈꺼풀이 내려앉았습니다

20kg 넘는 장비를 벗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쓰러져 있는 저를 보고
놀란 후배가 다가왔지만
괜한 부끄러움에 괜찮다고
손을 휘저었습니다

그러다가 혼자서 기다시피 구급차 쪽으로
다가가 구급 대원 동료에게
상태를 물었습니다

산소 포화 농도를 측정하고
열을 재고
심박을 보더니

탈수, 탈진 같다고 합니다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내 체력이 이거밖에 안 되나..

잠시 누워 휴식을 취했고
구급 대원이 가져다준 이온 음료를
마셨습니다

십여 분쯤 지나자 기력이 조금 회복되었는데
화세가 잡히긴 했지만
여전히 타고 있는 건물로 다시 내달렸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더 진화를 한끝에
불은 '완진'되었습니다

이튿날
병원에 갔더니
열사병이라고 합니다

열대야의 여름밤에
수천도 가 넘나드는
화재현장을 기를 쓰고
들락거렸더니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혼자 비실된 거 같아 부끄러움이
밀려왔죠

굳이 이유를 찾자면
팀장님이 파견 가셔서 팀장 대행이라는
직을 수행할 때였는데

그런 큰불이 난 현장에서
후배들을 이끌어본 것이 처음이라
그 무게감을 몸이 이기지 못한 듯도 합니다

신고식 제대로 한 거죠

지금도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하고
그래도 불은 잘 막아냈다는
생각에 대견하기도 합니다

사고는 계절 봐가며 나지 않고
불은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타오릅니다

흔치 않았던 여름의 화재,
그 뜨겁던 계절에 더 뜨거운 불속을
뛰어다녔던 작년의 기억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어느 계절이든 모두 안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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