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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Jul 18. 2022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여행의 의미

다들 그토록 좋아하는 여행. 그렇게 갈망하는 여행은 왜 떠나고 싶은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모든 것에는 고유의 색이 있고 유난히 기억에 남는, 애착이 가는 색이 있듯 여행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행들을 해보았지만, 생각해 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실에서 가장 두렵고 힘들었을 때 떠난 여행이었다. 삶에 물음표가 생기는 순간, 무작정 떠났다. 아니, 떠나지 않으면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와의 대화도 상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녀온 이후 여행만이 그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게나마 잠시나마 위안을 받았고 때로는 꽤 오랫동안, 아니 평생 가시 돋친 마음을 가지치기를 하고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마치 화분에 시들어가는 꽃이 주인이 물을 주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다시 살아나듯이.


미국 내에서 두 번째 회사로 이직을 하며 취업비자가 틀어졌다. 당시에는 남들은 그렇게도 얻고 싶어 하는, 쉽게 얻지 못할 좋은 기회를 내 손으로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인지라 낯선 땅에서 홀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가장 큰 멘붕을 겪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결정하고, 평생 꿈꾸던 삶을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대로 한국으로 그냥 돌아가버리면 끝내 후회하고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마치 물에서 막 건져 올려 살기 위에 미친 듯이 바닥에 파닥거리는 물고기 같았다. 잠시라도 숨을 골라야 할 만큼 마음은 벼랑 끝 낭떠러지 끝에 있었다. 그렇게 당장이라도 뒤로 물러나 잠시라도 숨을 쉬어야 할 곳이 필요했다. 한국으로 바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이 시간에 해볼 수 있는 것을 찾기 시작했고, 직진을 하는 대신 거꾸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미국 서부와 유럽여행을 했다.


어린 시절, 심지어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리 여행 경험이 많지 않았던 나에게는 (심지어는 국내 경험도 거의 전무했다.) 혼자 먼 길을 돌아 낯선 곳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큰 모험이었고,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무엇이든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초창기에 태블릿조차 없던 시대인 데다 미국에서만 사용 가능한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떠날 때는 미국에서 사용하던 것들을 버리고 스마트폰 없이 오로지 단출한 짐과 지도만 보며 길을 찾아 떠났다. 참으로 불편하게 혼자 고군분투하며 했던 아날로그 여행은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특히나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후에도 참으로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그 어떤 여행보다도 그 시절의 야행은 지금까지 가장 마음에 남는다.


처음으로 장거리, 장시간의 나 혼자 여행이라 지루할까 체력은 받쳐줄지 자신은 없었기에 젊었을 때 해볼 수 있는 투어나 방법은 모두 시도해 보았다. (우습게도 30대 초인 그때도 나는 너무 늙었다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도 참 젊었는데 말이지). 영국에서는 한인과 당일날 동행을 구했고, 파리에서는 카우치서핑으로 현지인을 만났다. 프랑스 남부와 스위스를 거쳐 로마까지는 짐 문제도 있어 세계 여러 국적의 여행자와 같이 이동하는 탑덱을  이용했다. 두바이에서는 되도록 더운 날씨에 고생할 자신이 없어 심플하게 빅버스와 현지 투어를 이용했다.

곳곳마다 여행하는 방법도 다르고, 동행한 사람의 국적, 성향도 너무 다르다 보니 살면서 그동안 겪어보지도 못한, 겪어볼 일도 없는 별의별 일들도 참 많았다. 그때의 경험들은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당시 힘들었던 마음을 추스르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참 많이 받았다.

다양한 곳을 가고,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한다는 것은 확실히 스스로의 틀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어쩌면 여행의 끈을 지금까지 놓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몽마르트르 언덕 근처, 카우치 서핑하던 파리 현지인집 창문에서.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휴가철이면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아무래도 주변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혼자 여행을 많이 하게 됐는데, 좋은 풍경들을 볼 때마다 가족과 친한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다. 확실히 한국에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한 뒤로는 휴가가 아니면 생각보다는 그렇게 어디론가 훌쩍 먼 거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아 시간이 되고 기회가 되면 떠날 수 있을 때 떠났다. 가끔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여행도 했는데, 나름대로 편하게 다니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외로 몰랐던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 여행을 잠시 멈췄어도 여행에 대한 갈증이 크게 없는 것을 보면 그동안의 이런 부지런함이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한때의 기억을 추억하며 얘기하고 것도 어쩔 때는 여행할 때 보다 더 설레기도 했으니까.


요즘 SNS를 보다 보면 부쩍 어디 여행을 갔는지,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아니면 예쁘거나 경치 좋은 곳, 놀거리 많은 곳은 어딘지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 바쁘다. 과연 그렇게 사진과 영상을 찍는 동안 진정 나를 위한 여행인지, 남을 위한 여행인지도 모른 채 마치 도장 깨기 하듯이.

물론 나 역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재밌는 곳을 가고, 맛있는 음식 먹는 곳을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여행의 의미를 분명히 인지하고 떠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단순히 즐기러 가는 여행보다는 무엇을 위한 여행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본다면 여행지에서 느끼는 경험과 기억,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꽤 오랫동안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그것이 비록 단순한 휴식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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