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계절을 찾아간다
“승주야, 많이 춥지? 핫팩이랑 두꺼운 옷 보내줄게.”
1월, 한국에선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걱정 가득한 엄마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나는 기겁하며 손사래 쳤다. 당시 나는 적도 부근을 통과하고 있었고, 그곳의 햇빛은 사람을 몽롱하게 만들 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배 위에는 계절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순환하는 계절이 없다고 해야 옳다. 사계절의 순환은 고정된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배는 끊임없이 움직이니까, 사계절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의 이치대로 라면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 이때 ‘간다’ ‘온다’는 일정하게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다.
대신 배는 계절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찾아간다.
배 위에 있으면 세상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힌트가 별로 없다.
얼음이 얼지도 않고, 초록의 새싹을 마주할 수도 없다. 얼어 부풀었던 흙이 녹고 꽃이 피어나는 광경을 볼 수 없다. 배의 계절은 온도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계절의 냄새보다 바람에 실린 바다의 온도로 계절을 짐작할 수 있다.
기항지*에 정박하면 비로소 한 나라의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북반구에 위치한 우리나라의 사계절 날씨에 적응된 나로서는 같은 시기에 다른 날씨를 한 나라들의 계절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고는 한다. 12월~2월의 이곳은 무더우니 말이다. 3년간 한 번도 겨울을 겪지 못한 항해사도 있었다. 7월에 배를 탄 후 한국에 한 번도 귀항하지 않고 중동과 적도 지역만 항해했기 때문이었다.
(* 선박이 항해하면서 머무르게 되는 항구.)
사계절이 절로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 환경을 경험하고서야 우리나라의 사계절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깨닫는다. 그리고 옷을 보내주겠다는 엄마의 말은 나와 엄마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더 깊이 실감하도록 만들었다. 계절이 계절다울 수 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덕에 제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