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사에게 육지란
배를 타는 사람들에게 상륙은 어떤 의미일까.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한 번 승선하면 최소 6개월 동안 배에서 생활하니, 넓은 바다에서 우리가 발 디딜 수 있는 곳은 오직 철로 이루어진 배 위 공간이다. 배에서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은 운동장 두 개를 합친 넓이보다 조금 넓겠지만 실제 하루 일과를 생각해보면 100 제곱미터는 돌아다닐까 싶다.
특별한 일 없는 평범한 하루를 생각해보자. 아침에 눈을 뜨면 E-DECK에 있는 방에서 나와 A-DECK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층에 있는 SHIP’S OFFICE에서 배로 들어온 이메일을 확인하고 F-DECK에 있는 브릿지에서 당직을 서고 당직을 마치면 A-DECK에 있는 BCR(Ballast Control Room)에서 업무를 본다.
따져보면 하루에 200걸음도 안 되는 셈이다. 사람의 생각은 행동반경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맞다면, 내 생각의 크기는 200걸음에 불과한 것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가끔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화를 내거나, 배꼽을 잡고 웃거나, 슬퍼서 울거나 하는 감정들이 희미해진다. 윤활유가 없어 느려지다 굳어버리는 기계처럼 말이다. 어떤 예기치 못한 자극을 만나기 전까진 생각이 정지된 채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이런 일상에서 한 번씩의 상륙은, 갈 곳을 잃고 바다를 표류하다 육지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하염없이 사면의 바다만 바라보다 저 멀리 수평선 끝에 육지의 실루엣을 발견하는 찰나의 순간. 그 황홀함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굳었던 감정이 풀리고 몸속 미세한 세포들이 전부 신경을 곤두세우고 깨어나는 느낌이다.
박웅현 작가가 «책은 도끼다»에서 “파리(paris)가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가 그곳에 있을 시간이 삼일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항해사에겐 육지가 곧 파리 같은 곳이다. 보통 사람들에겐 육지가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공간일 테지만, 잠깐의 정박 후 다시 먼 바다로 나가야 하는 내게 육지는 그 자체로 어떤 여행지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슬픔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일상이 아닐까. 일상에 늘 행복이 깃든 것이 아니라, 행복은 찰나의 순간 배어 나 오는 일상의 선물 같은 것이다. 행복과 일상의 비중을 따지자면 1:99쯤 되지 않을까.
육지다. 여덟 시간쯤 머무르려나. 짧지만 짜릿한 행복이 날 기다린다.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덕에 제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나는 스물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