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브로커의 치열한 세계를 경험하다.

선박 브로커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직업이다.


브로커라고 하면 중개인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데, 선박 브로커에도 여러 전문 분야가 있다.

선주와 화주의 화물 계약을 중개하는 선박 브로커, 선박을 사고 파는 선박 매매를 중개하는 선박 매매 전문 브로커로 크게 나뉜다.

화물 계약을 중개하는 선박 브로커도 어떤 화물을 전문적으로 취급 하느냐에 따라서 드라이 벌크 화물 전문, 석유 화학제품 전문, 컨테이너 화물 전문 등으로 나누어진다.


내가 다니던 선박 브로커 회사는 원유 및 석유 화학제품 화물계약 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었다.

나는 석유 화학제품 화물 계약 중개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직무를 맡게 되었다.

선박 브로커의 생활은 항해사의 생활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배에서는 선장님의 지시 사항에 맞춰 주어진 일과 대로 성실하게 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대부분의 일과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이었고, 성실하게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 되었다.

하지만 선박 브로커로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숫자로 내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사무실에서 일해도 실적이 좋지 못하면, 사무실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실적이 좋은 사람보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세계가 선박 브로커의 세계이다.


내가 생각했던 선박 브로커는 멋지게 양복을 차려 입고 화주와 선주들을 만나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억대 커미션을 받는 잘 나가는 해운맨의 모습이었다.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다르듯이, 선박 브로커의 세계는 숫자로 내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글과도 같은 곳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하룻밤 사이에 해운 시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새롭게 체결된 계약은 얼마나 있는지 체크한다.

주요 고객인 선주와 화주들의 동향 체크도 매우 중요한데, 선주들의 배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짐을 싣고 싶어하고, 어느 정도의 운임을 원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화주들의 화물 계약 스케줄과, 어떠한 선박을 원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선주와 화주들이 자신들의 동향을 일일이 알려 주지 않기 때문에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을 하면 주요 선주와 화주들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물어보고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선주, 화주 담당자들은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이고 업무 관계상 ‘갑’님들이었다.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상으로 갑님들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한 정보를 묻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전화를 걸어 횡설수설한 적도 있었고, 긴장을 한 상태로 전화를 해서 물어봐야 할 사항은 묻지도 못한 채 전화를 끊은 적도 있었다.

감사하게도 사장님과 당시 내 사수였던 차장님께서는 서투른 초보 선박 브로커였던 나에게 전화 통화 매너, 시황 정보 수집 방법, 화물 계약서 작성 방법 등을 자세히 알려주셨고, 실적으로 압박을 주지 않고 내가 선박 브로커의 일에 익숙해질 때까지 믿고 기다려 주셨다.

내가 참 인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게, 삶에서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항상 나를 도와주는 감사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선박 브로커로서 첫 3개월은 힘들면서도 재밌는 시간이었다. 모든 업무가 새로웠고, 책으로만 공부 했던 용선 계약서를 실무에 적용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색했던 전화통화도 어느 순간부터 자연 스러워졌고, 나는 좋은 실적으로 내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다.


선박 브로커로는 일도 일이지만, 화주 선주와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선박의 화물 계약은 수십억이 넘어가는 큰 금액이 오가는 계약이기 때문에 화물 계약의 당사자인 선주와화주는 각자에게 가장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선박 브로커와 계약을 체결하고 싶어한다.


화주는 최대한 싼 운임으로 화물을 운송하고 싶어하고, 선주는 최대한 비싼 운임을 받고 싶어한다.

화물 계약의 운임도 억 단위가 넘어가는 큰 금액이기 때문에 화주와 선주 사이에는 각자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된다.

선박 브로커는 화주와 선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수 있도록 계약을 성사시켜야 한다.

만약에 나와 동일한 조건의 선박 브로커가 있다고 하면 화주와 선주는 인간적으로 친밀한 브로커와 계약을 채결할 것이기 때문에, 일을 떠나서 인간적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일주일에 최소 2번에서 3번은 주요 선주와 화주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인간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전화상으로는 주고받지 않은 중요한 정보도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유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친밀감이 생겨 계약상 어려움이 생겨도 보다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나지만, 업무적인 관계로 나보다 나이도 많은 고객들을 만나는 일은 물론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해보고 싶었던 선박 브로커 일이었고, 후회없이 해보자는 마음에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전화 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고객이, 어느 순간부터는 많은 선박 브로커 중에서 나부터 찾는 일이 생겼을 때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다.


선박브로커는 자신이 일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고 금전적인 보상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업무강도는 센 편이다.

배는 24시간 쉬지 않고 항해를 계속하고, 선박과 관련된 업무가 주말에도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선박 브로커는 24시간 핸드폰을 주시하며 고객들로부터 오는 전화와 이메일에 응대를 해줘야 한다.

한 번은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그 짧은 2시간 내에 담당하던 선박에 문제가 생겼다.

영화를 보느라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 놨는데 화주 담당자로부터 온 전화를 받지 못해 컴플레인을 받은 적도 있다.


2년간의 선박 브로커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인간적으로도 성장하였다.

내 이름으로 작성한 해운시황 레포트를 고객들에게 송부했을 때는 '아 나도 이제 프로페셔널한 선박 브로커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나를 신뢰하고 일감을 주는 고객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젊은 친구가 적극적으로 열심히 한다'는 평을 받기 시작했다.


초대형 유조선에서 1등 항해사까지 승선을 한 것도 선박 브로커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화주와 선주측에 배에 관하여 궁금한 점이 있으면 나를 찾았고, 나는 승선 경험을 토대로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었다.

선박 브로커로 일하면서 책으로만 공부했던 용선 계약을 실무에서 적용하며 내 지식으로 만들고, 해운 영업의 현장이 얼마나 치열한 곳인지 몸으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상대하고 협상을 이끌어나가는 과정은 책으로는 배울 수 없던 값비싼 수업이었다.

많은 선주, 화주들을 만나고 부딪치며 계약을 채결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상대하고 협상을 이끌어 나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사람때분에 부대끼기도 하고, 사람 때문에 웃기도 하며 프로페셔널한 선박 브로커로 성장하는 나날들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