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만한 사람이었다.
사람에겐 각자 다른 예민한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 예민함은 자신만의 강점이 되어주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괴롭히는 부분이 되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감정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감정을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 그래서 어렸을 적엔 감정에 압도될 때가 많았다. 그러한 고통은 나이를 먹고 그 증폭된 감정을 세밀하게 느끼는 버릇을 들이니 조금 나아졌다. 감정의 정체를 알고, 그 감정을 이해하니 점점 견딜 만 해졌다. 예전처럼 감정에 사로잡혀서 괴로워하는 수준까지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조금씩 견딜만해지자 곧 오만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가치관에 따라 바람직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많이 느끼고, 못나게 느껴지는 감정은 느끼지 않도록 통제함으로써 좀 더 이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감정이 바람직한지 생각하며 불편하거나 서운해도 참고,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 대한 불만만 늘어갔고, 나 자신에 대한 만족감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감정은 조절하는 것이지 통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라고 나를 다그치고 있었으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감정은 마치 배고픔 같이, 필요에 의해서 내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신체 반응일 뿐이었는데, 그걸 느끼지 말라고 한들 어떻게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고픔이 싫으면 밥을 먹으면 되듯, 그 감정이 싫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를 다그치는 일이 아니라 그 감정에 힘들어하는 나를 공감해 주고 다독여주는 일이었던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건 훈육이 아니라 이해와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