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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려고 한다

by SEAN


불꽃같았던 20대의 끝무렵 나는 큰 착각에 빠져있었다. 성장하는 동안 이런저런 사건들을 겪고 나자 나는 세상을 다 깨달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무서울 게 없다고, 세상이 어떤 건지 다 알겠다고, 세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건방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세상을 깨달은 나 자신이 뭔가 대단하게 느껴졌고, 다른 사람들 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었던 사건들이 청춘이라는 시간 속에서 누구나가 겪을 수 있고, 또 겪어내고 있는 일들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 거대해진 자아상에 취해 있었다.


그렇게 30대가 되고, 자신만만하게 뛰어든 새로운 사회 속에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모든 걸 깨달았는데, 저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도, 내가 왜 그러는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감정. 우습게도 이성이 이미 정답을 알고 있어도 감정은 이성을 따라와 주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하찮은 일로 상처받았고, 무의식 중에 상대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내가 다시 싫어졌다. 분명 다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꽤 괜찮은 인간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지식만 늘었을 뿐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대로라는 걸 깨닫게 되자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고, 그 실망은 혐오로 이어졌다. '넌 왜 아직도 그 모양인 거야?' 상처받아 힘들어하는 나 자신에게 내가 내뱉는 말들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러다 평소 고민상담을 자주 하던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건 너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야.' 그렇다. 상처받을 일 아니니까 상처받지 말라고 스스로 모진 말로 한번 더 상처 주는 일도, 다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나는 내 친구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 보다도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국어사전에 정의된 뜻처럼, 사랑의 본질은 나 자신을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아끼고 귀중히 여겨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내 마음의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주고, 내 마음을 위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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