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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수 Nov 15. 2020

「규정」과 「부정」 사이

조직과 사람에 대한 '선의'란 어디까지를 말하나?

  '규칙 없음(No rules rules)'이라는 책이 화제다. 넷플릭스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는지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책일 뿐 아니라, 어떤 여정을 밟아가며 이런 이상적 이어 보이는 환경을 구축했는지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기에 인사담당자로서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떤 대목에서는 부러움이 느껴졌고, 또 어떤 부분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에 마음이 불편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거침없이 혁신과 성장을 만드는 조직을 만들어 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사소한 규정들과 그 해석으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성숙한 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넷플릭스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규정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 그런 규정들을 없애도 조직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럴해저드(Moral Hazard)나 기대하지 않는 집단행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탄탄한 조직 문화를 만들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적절치 않은 행동이 발견되었을 때에는 가차 없이 해고 통보를 했고,  이로 인해 넷플릭스는 규정은 없지만 그 어떤 회사보다 높은 수준의 청렴성, 도덕성이 필요한 조직이 되었다.


  김성준 박사(Executive Research Insititute 소속)의 분석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문화(culture)'라는 단어의 연관어로 '두려움(fear)'이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난다 했다. 일정 수준의 성숙함(maturity)과 정직성(integirty)을 갖추어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언제든 잘릴 수 있을 정도로 직원이 느끼기에 두려운 조직이라는 뜻이다.


  이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디까지가 규정을 준수하는 영역이고, 어디서 부터가 소위 말하는 부정이 되는 것일까? 


  현업 인사담당자로 수도 없이 인사제도를 기획해 보고 있지만, 인사제도와 기준이라는 것이 모든 구성원의 궁금증과 욕구를 해소하기에는 늘 부족함이 있다. 아무리 완성도 높게 기획되고 설계된 제도라도 이에 대한 해석과 오남용은 언제든 있게 마련이다. 더욱이 기본적인 규정에 수만 가지 예외 규정이나, 특정 상황에서의 판단 기준을 요구하는 구성원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상황과 돌발 변수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비효율적이다. 더 자극적으로 말하자면 바보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책에 나온 사례로 항공권 구매 기준이나, 호텔 숙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많은 회사들이 항공 시간과 직급을 기준으로 이코노미 클래스 또는 비즈니스 클래스를 구분하고 있다. '부장급 이상은 6시간이 넘는 항공시간이 소요되는 경우 비즈니스 클래스를 탈 수 있다'라는 식이다. 호텔도 마찬가지다. '1박 최대 20만 원, 스탠더드 룸타입, 한도 내 실비 정산' 같은 짧은 규정이 전부다.

  

  짧고도 명확해 보이는 이 규정을 해석하는 방식은 때때로 너무나 다양하다. 대부분은 최대 금액 20만 원 내에서 다양한 옵션(거리, 교통, 안전성 등)을 고려해 숙소를 예약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에게 부여받은 하루 20만 원의 금액은 온전히 내 권리이자 일종의 확보된 자원이라고 여긴다. 혼자 출장을 가지만 방 3개와 화장실이 4개 달린 에어비앤비(airbnb)가 20만 원이니 이를 예약한다. 너무 극단적인 예라 할 독자들도 있겠지만, 지금 이 이야기는 필자가 경험한 실화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수많은 논쟁의 거리가 여기서 시작된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 방 하나에 20만 원인 호텔을 예약하면 괜찮지 않나?

  - 왜 20만 원이라는 규정을 주어 놓고 방 개수는 안 적어 놓았지?

  - 코로나 시기에 호텔 가격 변동이 있으니 상한선을 조정해야 했나?

  - airbnb 말고 다른 방이 없었나?, 열심히 찾아보다 없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등등등


  앞에서 주장했듯이 필자는 상황마다, 시기마다 규정을 업데이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할 수도 없지만 해서도 안된다. 엄청난 비효율이기 때문이다. 또, 20만 원이라는 기준을 지켰다면, 쉽사리 그를 징계하거나 해고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한 간명한 답을 '규칙 없음'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회사에 이득이 되도록 행동하라(Always act in the best interests of the company)'라고 말이다. 그야말로 선의(善意)를 가지고 공익에 관점에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선의와 공익의 기준을 무 자르듯 정하기는 어렵다. 개인이 판단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의사결정의 맥락(context)도 선의와 공익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야말로 선의, 공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는 것이 규정 준수와 부정의 차이를 가르는 선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Ethical) 기업으로 정평이 난 로레알(L'Oreal) 역시 윤리적 판단의 기준으로 선의와 공익을 말한다. 개인의 사익이나 유리함을 위한 행동이 윤리적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존슨 앤드 존슨(Johnson&Johnson) 직원들은 무단횡단을 하는 동료에게 '이건 윤리규정(Code of Business Conduct)을 어기는 일이야'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정도로 윤리성이 직원들에 내재화돼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 역시 정직(Integrity-청렴성, 도덕성)을 중요한 가치로 지정하고, 비효율과 부정을 금하고 있다. 이 역시 조직 관점에 공익과 선의를 가지고 행동할 때 효율적이고 정직한 행동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넷플릭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들이 말하는 맥락(Context)과 '회사에 이득이 되게 행동하라'도 지금까지 이야기 한 많은 기업들의 사례와 다르지 않다.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되, 공익과 선의를 기반으로 판단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개인 판단의 영역으로 돌아온다.


  인사뿐 아니라, 조직에 몸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지향점은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구성원들이 가치에 부합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며 만들어 낸 성과와 그에 대한 인정과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 직원 대다수가 더 나은 행동을 지향하는 선순환을 만드는 아름다운(?) 모습 말이다. 하지만 이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악순환의 울 타래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규정의 끝에 서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최대 이익을 누리는 사람이 마치 더 나은 해택을 받는 사람처럼 비치는 일이 반복되면 선의와 공익을 가진 사람이 한순간에 바보가 되는 상황을 우리는 쉽게 경험한다. 규정이 20만 원이니, 20만 원을 전부 쓰는 사람이 똑똑하고 더 나은 해택을 받은 사람이지, 이를 아끼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규정과 부정을 이야기 하지만, 돌아서면 개개인이 놓인 다른 상황(맥락, context)과 그 의사결정이라는 너무도 다양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반대로 누구나 선의와 공익을 가지고 행동하면 되지 않느냐며 간단한 해답을 아무렇지 않게 제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조직을 만들기 위해선 구성원 대다수가 높은 수준의 성숙함, 청렴성을 갖기 위해 늘 긴장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가진 말하지 않아도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Basic assumption)이 바로 조직 문화가 아닌가. 이를 지키지 않을 때, 그 조직에서 서 있기 어려운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일은 내가 먼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최선의 도덕성을 지켜내는 일이다.


  넷플릭스의 직원들이 말한 두려움이란, 해고 통보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그 두려움의 근본은 내가 언제든 실수하거나 유혹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반드시 이를 잘 지켜내야 한다는 긴장감에서 시작된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자. 우리는 조직을 위해 어떤 기준과 가치를 가슴에 품고 일을 해 나갈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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