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초격차'를 말할 일이 아니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30년 경영 노하우가 담긴 책, '초격차'가 출간된지도 수개월이 지났다. 출간 직후 경영경제 베스트셀러에 올라 적지 않은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이 책은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수장이 직접 그 이야기를 풀어내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내용의 대부분이 사람과 조직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필자 역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 많은 리더와 경영진들의 입에 '초격차'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최근 국내 한 통신사는 마케팅 슬로건에 '초(超) 5G'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도 유행을 타는가 보다.
초격차라는 단어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어떤 한계나 표준을 훨씬 뛰어넘는 차이를 만들어내 후순위의 플레이어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상태나 수준'이라 하겠다. 말 그대로라면 도대체 어떤 기업이 이렇게 치열하고도 알 수 없는 경영환경에서 초격차를 만들고 싶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압도적인 기술과 경쟁우위를 가지고 2위 사업자는 넘볼 수도 없는 수준에 도달한다면 기업의 수익은 물론이거니와 지속 성장에도 청신호가 켜지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맘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격(格)이 달라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직관적으로 비행기가 떠올랐다.
항공사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사 들여 항공 서비스를 제공하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몇몇 노선에 손님들이 들어차기 시작하고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던 시절, 이 항공사는 더 큰 사이즈의 항공기를 구매하려고 할 것이다. 한 번 비행기를 하늘에 띄울 때마다 더 많은 좌석을 가진 비행기를 띄우는 것이 유리할 뿐 아니라 수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양(Quantity)을 늘리는 것이다.
그 노선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고 후발 주자들이 속속 뛰어들기 시작한다. 저마다 차별화된 서비스라는 점을 내세우며 훌륭한 기내식과 상냥한 고객 응대를 날이 갈수록 업그레이드시키는 플레이어가 나타나면 고객은 이를 귀신같이 알아본다. 이때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질(Quality)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혁신을 고민한다.
하지만 가격은 얼마든지 더 지불할 용의가 있는 고객들은 웬만한 서비스 개선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한층 더 높은 서비스와 쾌적한 환경, 다른 사람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기내식을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이제 항공사는 격이 다른 좌석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모두 이미 경험한 그 격(Class), 바로 '클래스' 말이다. 이코노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는 클래스, 즉 격이 다른 좌석이라는 말이다. 12시간이 넘도록 비행을 하며 다리 한번 마음껏 못 피는 이코노미 클래스에 반해, 비즈니스 클래스나 퍼스트 클래스는 언제든 침대처럼 누워 잘 수 있는 좌석을 제공한다. 비즈니스 클래스와 퍼스트 클래스 역시 격이 다르다. 퍼스트 클래스는 고객이 각각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문(Door)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내부 구조, 편의 시설이 비즈니스 좌석과는 차이가 크다. 디스플레이 사이즈부터 게임기까지 갖춰진 좌석이니 말이다.
격(格)이 달라진다는 것에 대한 감이 오는가? 격이 다르다는 것은 아예 시작부터 다르게 한다는 뜻이다. 이코노미석을 아무리 가꾼다고 해도 절대 퍼스트 클래스 환경은 불가능하다. 모두 다 뜯어내고 설계부터 집기, 내장재, 전동식 의자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배치되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이는 다시 말하면 지금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을 때 그야말로 격(格)이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가 생겨날 전제조건이 갖추어진다 하겠다.
앞에서도 말했듯 '초격차'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매일 같이 쳇바퀴 속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한 클래스 높은 제품과 서비스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 단계 높은 클래스로 올라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정확하게 코끼리 뒷다리를 잡는 상황이 아닐까?
초격차란 그저 반복해 외친다고 달성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님은 분명하다. 특히 목표나 방향에 대한 비전을 수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를 잘못 인식하고 허상을 쫓는데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는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새롭게, 다른 수준에서 이해하고 실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하나하나 쪼개 보면 기본 중의 기본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람과 일하는 방식 말이다. 이 글에서 사람은 어때야 하고 마인드는 이런 게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다만, 전략의 산물로 얻어진 것처럼 보이는 격이 다른 제품과 서비스는 결국 사람과 문화(일하는 방식)가 없다면 절대로 탄생하지 않는다.
이에 권오현 회장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토록 많이 했던 것 같다. 결국 마음가짐, 일을 대하는 태도, 기본 중의 기본이 바뀌지 않으면 채 한 발을 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클래스가 다른 제품과 서비스는 감히 꿈도 못 꿀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크게 리더, 조직, 전략, 인재의 4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 중 3개(리더, 조직, 인재)는 모두 사람과 일하는 방식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힌트를 얻었기를 바란다. 초격차의 시작은 사람과 조직을 다시 들여다 보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작업이다. 멋진 슬로건, 혼자만의 꿈이 아닌 조직 전체가 오케스트라처럼 한 마음으로 움직여 차원이 다른 클래스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