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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빈 Jun 13. 2024

나에게 보내는 유서

사실 진짜 하고 싶은 말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 원망하고 사과하고 용서받는 것보단, 이미 지난 시간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 상처 주지 않게 노력하는 거겠지. 그렇게 믿고 행동하고 살고 싶어. 그게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렇지만 나를 용서하고 나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방법을 찾기엔 너무 지치네 미안해.


 나와 타인을 구분하기 시작할 때부터 진정한 내 편은 없다는 외롭고 불안한 마음에 시달렸던 것 같아. 형제는 없고 잦은 이사로 오랜 친구도 없고, 내가 기억도 안 나는 어릴 때부터 어리다고 봐주는 건 없었지. 딱히 내 앞이라 못할 짓도 없었잖아. 모두를 사랑했지만 그게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니라는 걸 너무 일찍 알았어. 사람들은 내가 잘할 때만 나를 사랑했으니까. 다 내가 잘못했어 지금도 주변 사람 원망 안 해. 단지 상처받지 않은 척하려고 더 엇나갔던 나를 원망하지 그게 나를 다시 상처받게 만드는 건데. 그걸 내가 사랑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나 봐. 무서웠어, 외로웠고. 평범하게 지내는 게 그냥 내 소원이라 했잖아. 뭐 그런 걸 바라냐 하겠지만 사실 나는 평범하게 지낸 적 별로 없거든,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거기서부터가 진짜 문제였던 것 같아. 내 문제는 내가 아니라 병에게 있었는데 사람들은 조절하지 않는 내 의지를 욕하고 혼냈으니까.


 나한테 친절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어. 나는 뭐가 문젠지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도 내가 뭐가 문젠지는 몰랐지, 아니 딱히 관심이 없었겠지. 그때 그냥 포기했으면, 나를 내가 원하는 만큼 아껴 줄 사람은 없다는 걸 인정하고 그냥 살았더라면 지금보단 편했을까? 사람들도 사는 것도 학교도 다 싫었을 때도 외롭기 싫고 관심받고 싶어서 자해도 하고 자살쇼도 하고 별 난리를 다 치다가 결국 누구에게도 관심은커녕 괜찮냐는 말 한마디 못 들었어. 자해한다고 반성문 썼잖아. 학교 다니는 내내 선생한테 맞았는데, 근데 그래도 학교가 싫진 않았어. 나는 그것도 관심이라고 집착했으니까.


 이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드디어 미움받진 않을 사람이 되는 법을 찾았는데, 그럼 뭐 할까. 결국 나는 그대로인 걸. 세상에 맞서느라 나를 챙길 시간이 없었어. 단 한 명이라도 그냥 온전한 내 편 하나를 위해 노력했는데, 안타깝지만 지금도 확신할 수 없어. 전에 내가 엄마가 모임 나가고 늦게 오는 거 그냥 싫다 했잖아. 그거 나 때문에 엄마가 집에 묶여서 사람들도 못 만나고 답답하게 산 거 인정하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긴 한데, 더 인정하기 싫은 건 그거 알아? 결국은 다들 나를 버릴까 봐 더 무섭다는 거야. 힘든 건 또 나 혼자만의 일이겠지 분명히 나는 귀찮아지겠지 결국 다들 지치겠지. 정신병 걸린 다 큰 딸 봐주는 것도 언젠간 한계가 오겠지. 더 이상 애착을 따질 나이도 아닌데 이제 내가 뭐가 부족한지도, 뭘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에 집을 나서며 혼자서도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되어야지, 다신 누구에게 의지하려 발버둥 치지 말아야지 그렇게 몇 년 다짐을 했어. 근데 결국 도와달라고 전화해서 정신병자냐고 욕먹었지. 그때 그리고 바로 죽었으면 내 마지막이 좀 더 애틋하고 안타까웠을까? 내가 중환자실에 끌려가서 천장 보고 대화하고 정신 못 차릴 때 다들 밖에서 무슨 생각했어? 미안했어 원망스러웠어 아니면 슬펐어? 아님 내가 불쌍했어 꼴좋았어? 왜 병원에서 퇴원 동의서 쓰고 나오라 했어? 나는 정말 무서웠는데 다들 왜 하나도 안 무서웠어? 어떻게 나에게 아무 말 없이 그냥 다음날 카페나 가자고 할 수 있어?


 괜찮다고 합리화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몇 년을 생각도 없이 지냈어. 그래도 고마워. 뭐라 말로 표현할 순 없지만 그래도 행복할 때도 있었어 진짜로. 죽을 용기가 없으면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면 되는데, 그 잠시간의 사랑이나 결핍에 목말라서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 것 같아. 내 근본적 문제의 원인은 아무리 비싼 약을 쓰고 치료를 받아도 고칠 수가 없어. 병신 같은 조울증은 나를 슬프게만 하는 게 아니라 원치도 않는, 눈앞을 가리는 기쁨을 주다가 옥상까지 간 줄도 모르고 신난 나를 그냥 밀어버리잖아. 치료를 하면 좋아지긴 하지. 수면제를 먹으면 잘 자고, 조울증 약을 먹으면 덜 우울하고 덜 예민한 내가 되니까.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진짜 내가 아닌데.


 그냥 나는 나 하나만 믿었으면, 내 생각만 하고 나만 돌볼 수 있다면, 내게도 남들에게도 훨씬 좋은 일이었겠지. 근데 이젠 더 이상 되돌리기도, 이런 나를 인정하고 위로하고 살펴주기도. 그럴 이유도 없고 여유도 없고 방법도 모르겠다. 나 자신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동정하는 내가 그냥 싫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생각을 해봤는데, 모두에게 미안해. 사랑한다는 말만 가득 담긴 예쁜 글들은 다 지워버렸어. 그게 모두를 더 힘들 게 할 것 같아서. 잘 지내라는 말을 한다고 잘 지낼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어쩌겠어.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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