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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빈 Jul 08. 2024

상처와 사랑 그 사이

내 마음속 방어기제

 자취 생활을 반강제로 청산당하고 그 후 3년의 시간을 가족들과 본가에서 보냈다. 학교에 다시 다니기로 결정하고, 기숙사로 도망쳤다. 학교보다는 혼자만의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던 것도 분명했다.


 그토록 원했던 집을 나왔는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문득 집이 그리웠다. 나쁜 기억들은 모두 미화되고, ‘화목한 본가 생활’의 이미지가 자꾸 그려졌다. 죽어라 원망하던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받은 적도 없다 생각한 조건 없는 사랑이 그리웠다. 감옥같이 느껴졌던 본가에 가고 싶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12살 우리 강아지를 생각할 때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묘한 분노와 죄책감이 들었다. 왜 이렇게 쓸모없는 나에게 잘해줘서 나를 더 힘들게 하나. 왜 뒤늦은 사랑을 줘서 내가 그 사랑에 목매게 만드나. 첫 유서에 가족들에게 남기는 말을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던 내가, 사실은 그들의 사랑에 누구보다 목말라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현실과의 타협을 위해 마음을 바꿔먹으려 노력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모두를 용서하고, 나도 용서를 구해보자. 하지만 쉽지 않았다. 떼어낼 수 없는 불안이 끊임없이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혼자 기대했다 실망하지 마. 사랑은 준만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미운 마음과 불안들이 진심의 눈을 가렸다. 아니, 헷갈렸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내 상처를 애써 포장하고 있는 건지, 내 마음속 상처가 아물지 않고 진짜 사랑을 덧나게 하는 건지.


 본능적 사랑의 욕구가 비집고 나올 때마다 다친 마음이 소리쳤다. 아빠는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내가 힘들어. 엄마는 나보다 엄마를 먼저 생각해서 내가 힘들어. 이기적인 내 마음을 인정하지 못해서 힘들어. 당신들만은 내가 일 순위였으면 하는 아이 같은 마음을 아직 못 버린 내가 싫어서 힘들어.  사랑한다 말하는 아빠의 카톡을 볼 때면 어린 나의 눈물 앞에서도 모진 말을 쏟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를 생각하면 정신과 문장완성지의 ‘우리 엄마는___ ’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답하던 참담한 심정이 떠오른다. 이제는 다른 답을 쓸 수 있을까? 역시 여전히 모르겠다. 두렵다. 엄마를 생각할 때면 발로 차이고, 커튼봉으로 맞고, 내가 공부를 못한다고 책을 던져 병원에 가게 된 날들의 기억만이 가득하다. 우리에게도 분명 행복하고 모녀의 사랑이 넘치는 순간이 있었을 텐데. 아니, 분명 있었는데. 섬세하고 예민한 방어기제가 틈을 주지 않고 새로운 상처로부터 나를 지킨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편을 택할 수밖에 없는 내가 안타깝고 혐오스럽다.


 차라리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차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내 속에 사랑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니 너무도 괴롭다. 어느 편이 진짜 난지 모르겠다. 누구에게 속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상처와 사랑 그 사이에서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다. 누구의 손을 들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고들 쉽게 말한다. 하지만 사랑과 상처는 얼음과 물과 같아, 잡으려 하면 녹아버리고 막으려 할 수록 터져 나온다. 그저 공허하고 무력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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