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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빈 Jun 23. 2024

조증, 불청객의 등장

환자와 간호사 그 사이에서

 늦깎이 간호대 학생이 되어 첫 학기를 예상외로 잘 견디는 내가 내심 자랑스러웠다. 물론 자해나 과음 등 에피소드는 많이 있었지만, 몇 년간 집에 박혀서 누워만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사는 중이라 행복회로를 돌렸다.

 

 나는 급속순환형 조울증으로 1년간 기분변화가 4번 이상 나타난다. 조증이 자주 나타나 위험성이 크며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이다. 2021년부터 3,4개월을 기점으로 3주가량의 경조증과 3달 정도의 심한 우울증을 반복했다. 지난 12월 말, 우울증으로 인한 마지막 입원을 마치고 지금까지 경조증 없이 쭉 우울한 상태만 유지되었다. 우울증은 2월 말 최고를 찍었고, 내 고집으로 3월 학교를 입학한 후 점점 나아지는 것만 같았다.


 아 물론, 나는 정신의학에 대해 눈곱만큼의 지식도 견해도 없다. 간호학생이지만, 아직 '안다.'의 'ㅇ'도 입에 올릴 수 없는 정도이다. 이 이야기는 느닷없는 질병으로 당황스러울 환우와 그 외 몇몇을 위하며 작성한 나의 수기와 대리적 고통 체험기일 뿐이다.


 중간고사를 끝내고,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받은 성취감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살충동이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고, 그 때문에 조증이 나에게 찾아오고 있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증상은 나도 모르는 사이 스며들었다. 조울증의 무서운 점은, 조증을 겪는 동안에는 조증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나 또한 항상 우울증에서 조금 벗어났다, 우울증이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만 했지 나 스스로가 고양되어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약속으로 만난 친구에게까지 내가 이상하다는 말을 들은 날, 집에 와서 요즘 내가 겪을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1. 완전히 끊은 타투를 또 했다.

2. 학교를 못 갈 정도로 과음을 하고 매일 술 마시는 걸 멈출 수 없다.

3. 오랫동안 연락 안 하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대부분 씹혔다.

4. 흥분을 주체 못 해 산만하게 굴다가 계단에서 넘어질 정도였다.

5. 성적인 충동이 심해졌다.

6. 대학 교수님에게 까지 과한 발언과 과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7. 불필요한 소비가 증가했다.

8. 에너지의 폭발적 증가로 새벽 4시에나 잠이 들 때가 많았다.


 친구의 말이 완전히 납득은 되지 않았지만, 메모지에 내 증상 중 조증과 결이 비슷한 경험들을 적으며 느꼈다. 큰일 났다. 그저 기분이 좋은 것만 같아 가볍게 넘긴 내 일상이 병원에서 조울증 교육을 받으며 알게 된 조증의 증상과 완전히 일치했다. 큰 충격이 들었다. 이 많은 증상들을 가지고도 나는 스스로 문제를 느낄 수 없었다. 3년 넘게 10000알 가량의 약을 먹고도, 이 많은 증상이 지나갈 때까지 내가 떴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자괴감과 함께 여러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평소 잘 듣던 음악의 치지직 기계소리와 비트가 너무 크게 느껴져 듣지 못했던 것, 사람들을 붙잡고 뜬금없이 내 정신병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 등. 한번 자각하고 나자 초조함과 불안감, 흥분됨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고,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는 각성상태가 너무도 어색했다. 병원에서는 2주마다 외래를 올 것을 권했으나 나는 서울의 빅 5 대학병원을 다니고, 학교 일정에 서울까지 가는 게 어려워 3주로 외래를 미뤘었다. 3주 뒤에 오겠다고 한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고, 빨리 병원에 가서 내 상태를 안정시켜 주기만을 기다렸다.


 병원에 가기 전날까지도 내 각성됨과 예민함, 과잉된 행동은 멈출 수 없었다. 기숙사 방 안에서 이단 뛰기를 보여준다며 줄넘기를 하기도 하고, 하루에 4-5시간씩만 자면서도 낮에 피곤한 줄 몰랐다. A4용지 3장짜리 독후감을 한시도 쉬지 않고 쓰기도 하고, 새벽에 기숙사를 탈출해 나가기도 했다. 도파민의 노예가 된 것 같았다. 도파민은 만족을 모르고 더 강한 자극, 더 과잉된 행동을 불러왔다. 주치의 선생님과 교수님이 조증이 오는 것 같으면 최대한 활동을 줄이라고 하셨으나, 나는 사실 내 상태를 내심 즐기고 내가 더 더 흥분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외래날이 되고,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 전 흡연실에서 담배를 태우며 내 증상은 극에 달했다. 진료를 본다는 긴장감과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심지어 나는 그날도 수시고사를 4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친구들과 축제를 가기 위해 한껏 꾸미고 짐을 챙긴 상태였다. 항상 교수님과 진료를 보기 전,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을 한다. 주치의 선생님과 진료실로 들어가고,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할 것 같았다.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을 시작했다. 30초 정도 횡설수설 말을 뱉은 뒤, 아무래도 말로는 다 전달하기 힘들 것 같아 선생님께 증상이 쓰인 메모를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컴퓨터를 보고 쉴 새 없이 타자를 치신 후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질문에 답을 하려고 할 때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 내가 해야 할 말을 고르기 어려웠다. 힘들게 대답을 할 때 주치의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혹시 마약에 손을 댄 적이 있나요?'. 너무 놀랐다. 선생님을 뵌 지 2년이 넘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그런 표정으로 한 적은 없으셨기 때문이다. 황급히 절대 아니라고 한 후, 내 상태가 남들이 보기에 그 정돈가 회의감이 들었다.


 선생님과의 상담(사실 그날은 상담보다는 질의응답이나 취조에 가까웠다.)을 마치고 교수님이 약을 조정해 주실 거라는 말과 함께 상담실을 나왔다. 나는 상담 중에도 들고 온 가방을 바닥에 내던지고, 다리를 심하게 떨었으며, 진료실을 나서는 선생님께 실없는 농담을 했다. 선생님은 그저 웃으시며 술 마실 때마다 자기를 떠올리며 자제하라는 말을 하셨다. 그날은 마침 교수님의 진료에 대기가 없었다. 교수님이 주치의 선생님과의 진료기록을 보고 갑자기 주사를 권해주셨다. 부모님과 떨어진 후 내 복약순응도가 좋지 않은데, 나는 자살시도를 위해 약을 모으는 경향이 있기에 증상을 잡기 위해 과하게 약을 늘릴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당시 교수님과 많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저 알겠다 말한 후 진료실을 나왔다. 이번달은 2번, 다음 달부터는 1번의 주사를 맞는데 1회 주사료가 16만 원이라는 말만을 들은 채.


 주사실에 가서 아까 물어보지 않은 주사명을 보았다. '아빌리파이 메인테나'. 아빌리파이를 이미 경구약으로 일일 30mg까지 먹다 끊은 상태여서 조금 의아했다. 주사를 놓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주사가 아플 수 있다 말씀하신 뒤 주사 포장을 뜯으셨는데, 한 뼘은 넘어 보이는 주사 크기에 공황이 올 것 같았다. 어찌어찌 주사를 맞고 축제에 갔다. 주사를 맞은 뒤 가장 크게 체감된 것은, 에너지 레벨을 주사가 강제로 끌어내리는 것 같은 피로함이었다. 몸은 피로하고 주사부위의 통증이 계속되었지만, 그게 내 정신의 각성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소리를 지르고 축제를 즐겼고,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집으로 오면서도 본가에 도착해 아는 언니와 술을 먹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내가 반강제적으로 맞게 된 아빌리파이 메인테나의 효능은 이렇다.


1. 조현병의 치료

2. 양극성장애 1형 유지치료를 위한 단독요법


 3년간 양극성장애 2형을 진단받은 내가 왜 이 주사를 투약받게 된 건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기숙사로 돌아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정신적 번잡함은 흘러넘치고 몸은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부조화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이 사건이 어쩌면 지난 3년간 내 치료의 방향과 심각성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지는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양극성 장애의 가장 큰 특징은 조증 삽화가 끝나면 반드시 우울증 삽화가 온다는 것이다. 두렵다. 또 얼마나 크고 깊은 우울에 시달릴까. 이제껏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단계의 조증을 겪는 나에게 더 새로운 우울증이 닥치게 될까. 그럼 나는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할까.


 마지막 입원 때 장애등급을 받아보자던 담당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결국 장애등급을 받고 국가에 얹혀사는 불쌍한 환자가 되는 걸까? 나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가 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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