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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에 진입한 80년대생의 고뇌

냉소 보다는 다정한 시선으로

by 조직실험실


경계 위에 선 세대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는 경계에 서 있습니다. MZ에 소속되기에는 조금 늙었고, X세대로 묶이기에는 또 조금 영합니다. K-POP의 시초가 잉태되기 시작하던 10대 시절, 서태지와 HOT 신드롬을 함께했고, 20대에는 싸이와 빅뱅의 무대를 즐겼으며, 지금은 많은 이가 부모로서 어린 자녀들을 챙기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회적 규정의 경계에 선 80년대생이 이제는 영포티에 진입했습니다. 매일 감정적 무게와 물리적 책임이 동시에 짓누르고 있습니다. 업무에서는 zen Z 후배의 ‘워라밸’을 공감해야 하고, X세대 상사의 꼰대를 중간에서 너스레로 유화시켜야 합니다. 집에서는 어린 자녀의 양육과 사교육을 감당하며, 노년기로 진입한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모의 노후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어깨에 세 세대의 짐이 동시에 얹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영포티’라는 단어가 소비되는 쓰임새와 그 안에 담겨있는 냉소적 정서와는 무관하게, 시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버텨내기 시작한 80년대생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의 시선을 갖게 됩니다.



버텨온 세월, 고정비가 된 존재

이들은 기업의 대규모 공채 마지막 세대입니다.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해 15년 넘게 조직에서 성실히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역설적으로 그 버팀이 ‘비용’으로 계산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연차도 높고 연봉도 비싼 이들은 조직 내에서 생산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도표 위에 오르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고용 노동부에 따르면 40대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0대보다 30% 이상 높습니다. 조직의 안정된 허리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조조정의 후보에 산입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직은 점점 더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역피라미드 구조의 부담을 껴안고 있어, 해당 연차에 대한 고용 수요는 사실상 씨가 말랐습니다. “연차 대비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압박이 커졌고, 육아 휴직 역시 제도는 완화되고 있지만 대출과 양육비 탓에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40대 가구의 평균 부채는 1억 2천만 원 수준으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습니다. 잠시 멈춤과 휴식은 사치가 되고, ‘조금 더 버티자’는 말이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이자 명령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버텨내는 사이, 회사는 더 이상 ‘평생의 울타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눈 앞에 끝이 보이는 길 위에서, 이들은 지속과 전환 사이의 어딘가에 서 있습니다.


정체성의 진자운동

이 세대의 조직 몰입 양상도 달라졌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대기업의 몰입도 데이터에 따르면 40대 직장인의 몰입도는 금전적 보상 만족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β = 0.14, p < .001) 일의 의미나 경력개발, 성장 기회가 주요한 몰입 요인가 되는 2030과 확연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이는 삶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시기이기에, ‘의미 있는 일’보다 ‘안정된 수입’이 몰입을 이끌어가는 핵심 요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80년대생의 몰입은 사명감이 아니라 생존감에서 비롯됩니다.


문제는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000년대의 조직은 여전히 충성·근속·위계가 미덕이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디지털 전환, 수평 문화, 자기 주도형 커리어가 절대 상식이 되었습니다. 불과 20년 만에 세상의 작동 원리가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그 변화 속도는, 과거의 성실과 버팀만으로는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즘 80년대생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일까?” 이 물음 속에는 적응이 아닌 생존의 불안이 깃들어 있습니다.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다음 30년을 설계해야 할 때

조직이 이 세대를 구원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효율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모든 영포티를 따뜻하게 포용할 이유는 냉정하게 말해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세대에게는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바로 다음 30년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일입니다. 이제 커리어의 중심축은 조직이 아니라 개인입니다. 회사가 커리어를 책임지는 시대는 끝났고, 개인이 자신을 설계해야 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첫걸음은 기술과 재무 전략을 새로 세우는 일입니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내가 없어도 되는 일’을 버리고, ‘나로 인해 가능한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관계 자본을 다지고, 자신이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지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조직은 일시적 거점이 될 수 있지만, 커리어의 주인은 언제나 개인 자신입니다.





80년대생은 낀 세대가 아닙니다. 윗세대의 근면함과 아랫세대의 자율성을 모두 경험한, 전환기의 유일한 통역자입니다. 그 무게는 약점이 아니라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연민의 시선에서 출발하되, 결국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 — 이것이 영포티가 다음 세대로 건넬 수 있는 의미있는 가치이지 메시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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