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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 더 무비를 통해 본 팀워크의 조건

소소한 스포 주의

by 조직실험실


지난 주말 짝궁과 함께 쿠팡플레이로〈F1: 더 무비>를 보았습니다.
극장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재운 뒤 어렵게 확보한 짧은 자유 시간에,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참 설레고 즐거웠습니다.


시원시원한 레이싱 연출과 속도감 있는 전개, 영화 음악 거장 한스 짐머의 강렬한 음악 등 이 영화를 봐야만 하는 이유는 차고 넘쳤습니다. 심지어 레이싱이란 하드코어 취미를 가진 짝궁과 함께 말이죠.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옆에서 끊임없는 훈수가 쏟아졌습니다.
“저건 F1에서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이야.”
“실제로는 피트인 전략이 저렇게 돌아가지 않아.”
“차라리 최근 실버스톤에서 훌켄버그가 19위에서 시작해 3위 포디움에 오른 이야기가 훨씬 감동적이지. 훗”


아이들이 잠든 조용한 밤, 스크린도, 사운드도 없는 거실에서, 심지어 방해꾼의 훈수까지 더해진 악조건이었지만, 저는 덕분에 화면의 미감에 현혹되지 않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오히려 좋아). 특히 팀 조직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요즘, 이 영화는 화려한 레이싱 영화를 넘어 팀워크의 드라마로 다가왔습니다.



소니, 팀 리더가 아닌 팀 체인저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주인공 소니 헤이스는 솔직히 팀의 리더는 아니었습니다. 은퇴 후 소위 '바닥'에서 굴러먹다 등장한 노장이었기에, 모두가 그의 실력과 운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팀의 분위기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팀 체인저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항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젊은 드라이버 조슈아 피어스는 소니를 경쟁자로 여기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이기적인 모습을 굴기도 합니다. 이런 조슈아의 포지션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때 소니가 보여준 건 꼬마를 누르고 1등을 차지하고 말겠다는 집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트랙에서 ‘문제아’처럼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세이프티카를 수시로 불러내고, 레드 플래그를 만들어내며 경기 흐름을 흔들었죠. 그러나 그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팀 순위를 앞으로 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피트인 타임과 방식을 교란시키고, 우승 후보들을 더티 에어에 가두며 조슈아에게 기회를 열어줍니다.


조슈아 역시 점차 소니의 진정성을 느끼며 변화했습니다. 마지막 아부다비 경기에서는 조슈아가 1위 자리에서 불운하게 리타이어 지만, 3위의 자리에서 뒤를 지키던 소니가 1등으로 골인하자 조슈아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해냈어!”


소니는 포디엄에 올랐을 때도 트로피를 루베에게 선사합니다(실제로는 컨스트럭터 시상이 따로 있어서 이 장면도 작위적이라는 짝궁의 팩폭이 감동을 후려칩니다). 소니는 시즌 중 갑자기 합류한 팀원이었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팀을 위해 달렸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솔직히 팀을 위하는 숭고함까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1등만을 위해서 달리지 않았습니다.


It’s not about the money

소니는 에이펙 팀의 제안을 받기 전, 바에서 종업원과 나눈 대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부다비 트랙에서 우승을 거머쥔 후, 홀연히 바하로 떠나 새로운 도전을 앞둔 순간에도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What’s it about?” 그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목숨을 걸고 달렸을까요?


소니가 인생의 깊은 굴곡 끝에 도달한 답은 단순하고 명징했습니다. 드라이빙 그 자체.

레이싱을 하고 있을 때 존재하는 것만으로 행복했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오직 자신의 진정성이었습니다. 우승까지 마지막 한 바퀴를 앞두고 고요한 진공에 갇힌 순간, 트랙에서 '날아오르던' 그의 모습은 강렬한 울림을 남겼습니다.


팀워크와 몰입에 대한 시사점

이 영화가 뜨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소니는 스타 플레이어도, 팀의 공식 리더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순수함과 몰입, 진정성이 결국 팀을 움직였고, 게임의 판도를 흔들었습니다. 팀의 리더가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때로는 팀원 한 명의 에너지가 팀 전체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팀원이 브레드 피트가 아니어도 말이죠.)

며칠 전 현업 팀과 조직개발을 위한 인터뷰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와의 짧은 대화에서 그 팀의 온도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는데, 팀 모두가 자신의 일에 뜨겁고 진심이었습니다. 이런 팀은 성과를 쫓지 않아도 성과가 따라옵니다. 오히려 결과를 집착하지 않을 때, 더 큰 성과가 창출되곤 합니다.


현장에서 흔히 들려오는 핑계 섞인 말들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고 싶어도 팀장이 별로라 집중이 어렵습니다.”
“요즘 실적이 안 좋아서 보상이 따라오지 않으니 의욕이 안 납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은 조직개발자로서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내 일에 얼마나 뜨겁게 임하고 있는가?”

만약 죽었다 깨어나도 지금 내가 뜨거울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하면, 다음 질문에라도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뜨거워질 수 있는 그 일과 환경은 무엇인가?"


'주인공이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어 결국 승리를 거머쥔다.' 는 진부한 서사와 클리셰에도 우리가 소니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가 환경을 탓하지 않고, 결과를 계산하지도 않은 채, 그저 일에 몰입한 주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자기만의 필드에서 소니가 이윽고 다다른 그러한 공명감을 얻고자 치열하게 '존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 필드가 직장이 되었든, 육아의 현장이 되었든, 바로 이 브런치 페이지가 되었든 말이지요.




저 역시 요즘 HRD, 조직개발, 조직문화라는 제가 오래 몸담아온 분야에서 많은 도전과 의심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너의 일을 비즈니스 생산성으로 증명하라.”
“인사는 고귀한 일인데, 너희 하는 일은 부차적이지 않나?”
악플에 가깝다 싶을 정도의 비난에 자존이 흔들리고, 구역질이 나고, 눈물이 차오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 스스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외부의 인정도, 숫자로 환산된 성과도 아닌, 오직 스스로의 이 일에 대한 진심과 진정성 뿐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지키는 것, 그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소니의 모습이 저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헬멧에 눌린 브래드 피트의 주름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는, 그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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