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애완동, 식물이 많다. 척추동물아문에 속하는 열대어에서 시작해서 연체동물인 달팽이, 절지동물문에 속하는 곤충, 그리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오는 모기나 쌀벌레 같은 곤충을 처리해 주는 파리지옥 같은 벌레잡이 식물까지. 고양이와 강아지 같이 사람을 키우는 것만큼 정성을 쏟아야 하는 반려묘, 반려견 외에 웬만하면 키우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생물과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들에게 보다 다양한 체험을 시켜주기 위해 근교에 위치한 곤충박물관, 식물관, 그리고 아쿠아리움의 연간이용권을 구매하여 자주 가곤 했다. 한 달에 한두 번을 가도 질리지 않는지 새로운 동식물의 정보도 필기하고 먹이도 주며 즐거워했다.
문제는 방문 후에 아이들에게 찾아오는 새로운 동물을 키우고 싶은 욕구였다. 장수풍뎅이가 시작이었다.
"엄마, 장수풍뎅이 한 쌍만 사주세요."
"우리 작년에도 사슴벌레랑 애벌레도 키웠었는데 수컷이 암컷을 삼등분해 살충했던 것 기억 안 나? 엄마는 너무 충격이었어."
햄스터나 새 같이 비교적 큰 생물을 키우다가 죽었을 때 아이들에게 상처가 클 것을 우려하여 곤충이나 물고기를 위주로 키우고 있다. 곤충박물관에서 사슴벌레와 애벌레를 체험을 하고 아이들이 키우고 싶어 하여 한 쌍을 구매하여 키웠었는데 이미 산란을 경험했었는지 어떤 이유에서 암컷이 짝짓기를 거부하였고 이 사실에 크게 상실감을 느낀 수컷 사슴벌레가 암컷을 토막살충으로서 응징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번식을 위한 수컷 사슴벌레의 잔인한 행동으로 그다음부턴 사슴벌레를 키우지 않았었다. 그리고 오늘, 아이들은 장수풍뎅이를 키우기 원한다.
짝짓기를 하려는 충 vs. 거부하는 충
"우리 일단 집에서 키우고 있는 식물과 동물들을 먼저 신경 써보자. 열대어 먹이도 엄마가 주고 있고, 식물들 물도 요즘 엄마가 주고 있잖아. 크던 작던 살아있는 생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만큼의 responsibility(책임)가 필요한 거야. "
책임의식을 느꼈는지 둘째 딸아이가 열심히 아침마다 식물과 열대어들에게 물과 먹이를 주고 대화도 가끔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우리 집 애완동물 수는 더 이상 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여달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엄마, 저 꼭 구매해야 할 것이 있는데 저금통 좀 열어주세요."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3천 원씩 용돈을 준다. 어차피 스스로 사야 할 것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저금하는 습관을 심어주려고 주고 있다. 최근에는 추석에 받은 용돈과 같이 저금통에 있는 돈을 통장에 저금하였는데 살아온 날이 얼마 안 되는 막내 빼고 첫째와 둘째 아이들은 지금까지 모은 돈이 총 100만 원을 넘겨서 아이들도 나도 정말 뿌듯해했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을 자신의 힘으로 구매할 때의 성취감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필요한 것이 생기면 어른의 허락하에 저금통에서 돈을 꺼내어 직접 구매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둘째 아이는 조그만 수첩이나 아기자기한 물건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늘은 문구점에 들러서 구매하고 싶은 것이 있나 보다' 하고 의심 없이 저금통을 열어주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다. 구매하고 싶은 것이 (아기자기한 수첩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인 남생이 일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아이들이 밥을 주고 있었다. 새롭게 우리 집에 합류한 남생이 두 마리에게...
"너희들! 이 남생이 두 마리 어디서 났어?"
"할머니 댁에 있는 거북이에게 친구 만들어 주려고 제가 샀어요."
"엄마가 생물을 키울 때는 그만큼의 책임이 필요하다고 했지? 왜 허락도 받지 않고 구매한 거야?"
"하지만 엄마가 이런 말도 했었잖아요. 저금통에 모은 돈은 다 제 것이니까 꼭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엄마와 이야기하고 구매할 수 있다고 말이에요."
순간 3초간 정적이 있었다.
'아... 내가 그랬었지.'
둘째 아이는 8살밖에 안되었지만 그래도 자기주장이 강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서 가끔 나를 당황하게 하곤 한다.
"그래도 생물을 키울 땐 모두 같이 상의를 해야 하는 거야. 오늘 그냥 가서 구매한 거야?"
둘째 아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놀라웠다. 사실 이 남생이 두 마리를 사기 위해서 많은 고민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는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수풍뎅이 한 쌍을 구매하는 것이 거절당하고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나의 말에 딸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가는 길에 있는 집 근처 작은 수족관에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남생이를 보러 갔다고 한다. 매일 가서 남생이 두 마리에게 인사했고, 어느 날엔 수족관에 주인아주머니께 남생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들, 어느 날엔 밥 주는 빈도수, 그리고 남생이의 가격등 정보를 수집했고 대망의 오늘. 무언 가를 사고 싶어 저금통을 열어달라던 딸아이의 요구의 아무 의심 없이 열어준 것이 엄마의 허락이라고 받아들인 아이는 필요한 만큼의 돈, 6만 원을 들고 가서 구매를 한 것이었다. 이 모든 일이 8살 아이의 두 달의 거친 계획과 노력이 있었다니 놀라웠고, 자신의 노력이 거부당했다고 생각하니 속상했는지 아이는 눈물을 또르륵 흘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물에 마음이 살짝 흔들렸으나 생명이 있는 동물을 너무 쉽게 구매하면 된다는 생각이 심어질까 염려하여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특히 남생이나 거북이 같은 경우에는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물도 자주 갈아줘야 하고 나중에 크기가 커지면 방생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강가나 숲에 사는 다른 동식물들의 ecosystem, 그러니까 환경을 망가뜨릴 수 있어. 갑자기 다른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서 네가 잘 정리해 둔 책상과 침대를 어질러 놓으면 기분 나쁘잖아, 그렇지?"
"네..."
"생명이 있는 동물은 작던 크던 소중히 여겨야 해. 우리가 잘 키울 수 있는 다른 동물을 데려오는 건 어떨까?"
아이는 말없이 눈물만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와 같이 수족관에 가서 남생이를 돌려드리고 대신 빨갛고 노란 열대어 몇 마리를 구매했다. 그리고 결국 장수풍뎅이도 한 쌍을 구매하여 지금도 잘 키우고 있다. 이번 암 컷도 이미 산란을 거친 암 컷인지 아직까지 알을 낳고 있지는 않지만 장수풍뎅이는 집게가 없어서 짝짓기를 거부한다고 암컷을 자르지 못해서 다행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장수풍뎅이를 사줄걸... 결국 돌고 돌아 장수풍뎅이를 키우게 된 아이들은 기뻐하고 나는 어질어질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어 다행인 것 같다.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 정도 지났고 둘째 아이가 장수풍뎅이와 열대어들에게 밥을 주며 말했다.
"엄마, 저 우리 집 생물들 돌보며 우리를 키워주는 엄마가 얼마나 힘들지 깨닫게 되었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