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차 스타트업 미션, 비전, 인재상 구축기
최고의 조직을 만들어보는 게 꿈이라고 하셨죠.
저희 회사에서 한 번 실현해 보시겠어요?
원하는 대로 하실 수 있도록 도와 드릴게요
대기업에서만 16년 근무하던 내게, 리더십 스터디 모임에서 알게 된 휴레이포지티브의 경영진이 불쑥 제안했다. 2010년에 창업한 휴레이포지티브는 2019년과 2020년에 시리즈 A, B 투자를 연달아 받으며, 창업한지 10년만에 진짜 ‘스타트업’으로 분류될 자격을 얻었다. 덕분에 이제까지 디지털 헬스 케어 산업에서 잘나가는 골목대장이었다면, 앞으로는 압도적 일등이 되자는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바라는 것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투자를 받아서 더 단단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갈등이 생겼고, 이탈도 늘었다.
그런 상황에서 회사가 나갈 방향을 정의하는 미션, 비전부터 정비하기로 했는데, 레이더망에 내가 걸린 것이다. 회사의 상황과 내가 해야 할 일을 들었다. 쉽지 않은 일들이었다. 대기업에서 해보지 않은 업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제안을 받은지 일주일 만에 16년의 대기업 생활을 정리하고 스타트업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제안을 한 당사자도,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직장 동료들도 모두 놀랐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결정할 수 있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나도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의 제안이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을 최고의 조직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내 삶의 미션을 정확히 건드린 것이다. 작은 조직부터 직접 손으로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휴레이포지티브의 첫 HR 리드가 되었다.
ⓒ 셔터스톡
회사가 나갈 방향을 구성원과 함께 확인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방법이지만 미션과 비전, 인재상을 구성원들과 함께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경영진과 구성원들과 이야기해 보니 그동안 미션과 비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디지털 헬스 케어 산업이기에 ‘고객이 효율적으로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는 형식의 미션이 있었지만, 웹페이지, 제안서마다 조금씩 달랐고, 정확한 워딩으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았다. 비전은 조금 더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디지털 헬스 케어 시장에서 압도적 일등이 되자’라는 경영진의 비전에 대해 휴레이어(휴레이포지티브 구성원의 애칭)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휴레이어가 생각하는 미래 회사는 어떤 모습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명시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던 인재상은 휴레이어와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다.
구성원과 함께 미션, 비전을 만들었던 과정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스타트업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떤 준비를 했고, 구성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고, 만약 지금 다시 시도한다면 무엇을 더 보완하거나 생략하면 좋을지’를 정리했다.
미션과 비전을 정리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프로젝트 이름을 ‘H.O.T Project’라고 정했다. Huraypositve One Team의 줄임말이다. 서른 명 정도 되는 구성원들에게 조직문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미션, 비전을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1년 동안 인사 제도를 세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2월 사옥을 이전하면서 세레모니와 연말 송년 행사, 비전 선포식을 같이 하기로 한 터라, 실제 kick-off 이후 남은 시간은 3개월 남짓이었다.
☞ note.
(+) 조직문화 설문조사는 이후 반기별로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변화를 관찰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
(-) 1년 동안 미션, 비전과 이를 기반으로 채용, 육성, 평가까지의 인사 제도를 세팅한다는 너무 큰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이 걸리고 어려웠다. 오히려 미션 비전을 수립하기 위한 작은 계획에 집중해도 되었을 것 같다. 나머지 제도와의 연결은 이후에 고민해도 좋을 것 같다.
우선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40명가량 되는 구성원이 모두 모여야 하는데 코로나 거리 두기 제한으로 당시는 10명 이상의 집합 교육이 불가했다. 어쩔 수 없이 10명씩 네 번을 나누어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코로나 시국에 다른 팀 사람들과 인사를 해서 반가웠다는 의견이 많았다. ‘바쁜데 불러도 될까’ 하는 운영진의 걱정을 해소해 주었다.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현재 회사의 모습, 앞으로 어떤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는지, 어떤 동료, 리더들과 함께 일했으면 좋겠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크숍에 참석한 모든 참가자들을 개인 인터뷰를 촬영했는데, 미션/비전 메이킹 동영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 휴레이포지티브
첫 번째 워크숍을 진행한 한 달 뒤 다시 전체 워크숍을 진행했다. 첫 번째 워크숍에서 나왔던 구성원의 의견을 기반으로 한 달 동안 운영진이 만들어 본 샘플 미션, 비전, 인재상과 다른 회사의 사례를 공유했다. 그리고 조별로 미션과 비전, 인재상을 직접 토론하면서 써보도록 했다. 조별로 각자의 발표 내용을 벽에 붙여 놓고 모든 구성원이 스티커를 여러 장 들고 다니면서 좋은 문구에 스티커를 붙여서 투표하도록 했다.
☞ note.
(+) 현장 촬영 영상을 편집해 ‘휴레이어가 생각하는 휴레이포지티브’라는 영상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 조별로 구성원들이 미션, 비전, 인재상을 쓰도록 하는 것은 아이디어를 구하는 것 이외에도 생각하지 못한 좋은 효과도 있었다. 회사의 미션과 비전을 문장을 만들어 내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공감해 주었다. 워크숍을 시작할 때 운영진이 만든 미션에 만족하지 못하던 구성원들도 막상 본인들이 직접 작성하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었다.
(-) 첫 번째 워크숍과 달리 두 번째 워크숍은 영상과 사진을 남기지 않았는데 아쉬움이 크다. 찍을 때는 번거롭지만 남겨두면 나중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미션은 발견하는 것이고, 비전은 창조하는 것이다.” - 『리더십 패스파인더』, 이창준 -
워크숍이 끝나고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미션과 비전을 정리하면서 이창준 교수의 저 문장이 무슨 말인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미션은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 즉 회사가 세상에 제공하고자 하는 가치를 말하는데 그 가치가 회사마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찾아내는 것이었다. 구성원들의 의견과 웹페이지, 제안서, IR 자료들을 보면서 우리가 고객에게, 세상에 제공하겠다고 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반면 비전은 달랐다. 미션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모습과 꿈이다. 우리 휴레이어를 가슴 뛰게 할 비전을 만들어 내야 했다. 초창기의 나이키에게는 ‘Crush Adidas’라는 투박하지만 강렬한 비전이 있었고, 배달의민족에게는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곳에서’라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비전이 있었다. 이런 비전을 창조하기 위해 첫 번째 워크숍에서 찍었던 ‘우리는 어떤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대한 구성원들의 답을 꼼꼼히 보았다. ‘건강을 위해서는 누구나 우리 서비스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우리 로고만 봐도 휴레이라고 알아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실현할 비전을 고민했다.
인재상은 휴레이포지티브라는 배에 어떤 사람을 태우고, 어떤 사람을 존중할 것인가를 정의하는 일이었다. 회사가 10년여를 힘들게 생존을 목표로 지내다 보니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동료의 모습에 ‘성과’ ‘집요함’ ‘결과’와 같은 단어들이 많이 나타났다. 이를 반영해서 정리한 내용을 경영진과 사전에 공유했다.
와, 너무 멋지게 정리하셨어요.
그런데… 음… 솔직히 우리 회사 거 아닌 것 같아요,
다른 회사 것 같아요
역시나 우리에게 없는 것으로 인재상으로 만드니 어색했다. 다시 갈아엎고 원점에서 고민했다.
☞ note.
(+)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리더를 비롯한 구성원들과 자주 소통했다. 우리의 ‘현재 모습’과 ‘바라는 모습’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야 했다. 너무 이상적인 것은 구성원에게 와닿지 않고, 너무 현실적인 것은 설레지 않는다.
2021년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타운홀 미팅 겸 미션 비전 선포식을 같이 진행했다.
ⓒ 휴레이포지티브
휴레이포지티브의 미션은 ‘모두의 오늘과 내일에 건강을 더합니다’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동안 이야기하던 미션을 정리한 수준이었다. 미션에 ‘디지털 기술로’라는 문장을 넣을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는데 ‘디지털’이라는 한계에 가두지 말자는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서 넣지 않기로 결정했다.
비전은 ‘Everyone, One Huray’으로 결정했는데, 스토리를 담았다. 건강한 삶을 위한 여정에서는 누구나 적어도 한 번은(One Time) 우리의 서비스를 사용하게 만들자는 의미이다. 마치 일상생활에서 삼성의 제품 없이 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헬스 케어 산업을 통합한 최초의 회사(The first One)이자 유일무이한 최고의 회사(The only One)가 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 하나의 휴레이어(One Huray)가 되자는 의미를 담았다. 구성원들이 원하는 미래의 회사 모습이 중의적으로 담겨 있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해 주었다. 로비에 적혀 있는 비전을 보고 뭉클했다는 이야기해 주는 휴레이어도 있어 감사했다.
인재상은 ‘휴레이포지티브는 건강한 사람을 존중합니다’로 정했다. 디지털 헬스 케어 회사의 가장 큰 가치인 ‘건강’이 미션, 비전, 인재상에서 잘 정렬되었다. ‘치열한 사람을 존중한다’로 될 뻔 했는데, 경영진의 브레이크에 제자리를 잘 찾았다는 평가였다.
사장이 하는 일은 미션을 만든 다음 액자를 만들어서 걸어두는 일이라고 한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이사를 하자마자 로비에서 가장 잘 보이는 벽면에 우리의 비전을 써 붙여두었다. 그리고 책상 이름표, 사원증 등에 비전을 삽입해서 자주 비전을 볼 수 있도록 했다.
ⓒ 휴레이포지티브
휴레이웨이 워크숍도 진행한다. 신규입사자를 대상으로 미션 비전 수립 과정과 스토리를 설명하는 2시간짜리 워크숍도 매번 진행하고 있다. 새로 들어온 휴레이어들은 전 직장에서 한 번도 미션, 비전의 의미를 들어본 적 없었는데, 처음으로 이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주었다. 워크숍에서 한 가지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개인의 비전 고민해 보기’이다. 미션과 비전을 만드는 워크숍을 한 뒤, 어떤 구성원이 ‘회사의 미션을 생각하다가 문득 내 삶의 미션을 한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덕분에 삶의 미션과 비전을 고민하게 되었어요’는 말씀을 해주었다. 이에 신규 입사자 대상 워크숍에서 각자의 비전을 한번 고민해 보게 하는데, 반응이 좋다.
미션과 비전, 인재상 의 내용과 워크숍의 과정을 담은 영상을 채용사이트에 올려 두었다. 채용 과정에서 많은 분이 ‘회사의 미션과 비전, 인재상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주었다. ‘건강’이라는 가치에 맞는 분들이 합류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또 다른 건강한 사람들을 소개해서 들어오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2022년 4월 조직문화 설문조사를 다시 실시했다. 2021년 7월 HOT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진행했던 설문조사와 동일한 문항이었는데,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대부분의 점수가 상승했다. 특히 ‘회사의 비전과 목표가 뚜렷하다’라는 항목은 3.3점에서 4.3점으로 유의미하게 상승했다. 물론 이렇게 점수가 개선된 것이 미션비전 수립 덕분만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덴마크는 행복지수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항상 최고의 점수를 받는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덴마크는 가장 행복한 나라야’라고 국민들의 머릿속에 어느샌가 각인되어 나타나는 효과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행복해’라고 자주 말할수록 그렇게 믿게 되고, 그렇게 믿을수록 행복해지는 것이다.
휴레이포지티브 또한 마찬가지다. 미션 비전을 수립한 이후에 더 자주 ‘건강’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작은 결정을 할 때도 우스갯소리로 ‘이게 건강한 결정이겠지?’, ‘나 더 건강해져야 할 것 같아’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 과정에서 점점 우리는 건강한 존재, 건강한 회사가 되어가고 있다. 건강한 휴레이어가 만드는 건강한 디지털 헬스 케어 서비스, 기대해도 좋다.
* 2022년 8월 10일에 원티드에 릴리즈된 글입니다. 더 재밌고 다양한 글은 아래 링크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