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임원께서 외국 회사의 제도를 벤치마킹해서 적용할 것들을 검토해보라는 지시를 하셨죠. 이 지시를 받은 팀장들은 하나같이 불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니 우리나라하고 상황이 다른데 이거 검토해봤자 필요가 있어?’
‘그리고 검토해봤자 제대로 적용하지도 않을 건데 왜 이렇게 쓸데없는 지시를 하는 거야?’
그렇게 관련부서 팀장, 구성원 모두가 투덜대면서 어쩔 수 없이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보고서의 내용은 ‘제도와 문화 등이 달라서 적용하기 힘들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임원이 원하는 보고서의 내용이 아니었죠. 임원은 내용을 수정하라고 했고, 결국 보고서는 그 임원이 원하는 방향대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 검토는 보고서로 끝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모셨던 다른 임원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다른 임원 분도 비슷한 검토를 시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검토를 시켰을 때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제도를 벤치마킹해서 조금이라도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실천 방향들을 보고서에 담았었습니다. 누구 하나 ‘하지도 않을 건데 왜 시키냐’라는 반응을 보였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다른 임원을 떠올리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똑같은 지시사항에도 이렇게 정반대의 반응이 나올 수 있구나’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고 흔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국어로는 위약효과라고도 하는데요, 설탕이 들어있는 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고 믿고 먹으면 어느 정도 치료 효과를 낸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재미있는 실험이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와 관련해서 플라시보 효과와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해드리면 플라시보, 즉 위약이 오히려 진짜 약보다 더 높은 치료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어떤 상황일까요? 바로 '우수하다고 믿는 의사가 위약을 주는 상황’에서는 ‘우수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의사가 진짜 약을 처방했을 때’보다 치료 효과가 더 높다는 겁니다. 즉 가짜 약이라고 하더라도 더 믿을만하다고 믿는 사람이 준 약이 진짜 약보다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이죠. '치료 방법의 차이보다 치료자에 대한 믿음이 치료 효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죠. 이를 '치료자 효과'라고 합니다.
이러한 결과를 팀의 상황에 대입해볼 수 있겠는데요, 리더십 프로세스와 방법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바로 리더에 대한 신뢰입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서 효과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만약 팀에서 지금 리더십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드리면 ‘팀장이 무슨 성인군자라도 되라는 것이냐’라고 되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저 또한 자신 있게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하고 답해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들, ‘질문하고, 경청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사소한 일에도 관심을 보여주는 것’ 들을 모두 다 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마 이것들을 모두 다 잘하는 사람은 성인군자와 비슷한 모습일 것입니다. 팀장은 이렇게 어려운 자리입니다.
다행인 건 팀원들도 팀장님이 완벽한 성인군자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조금 더 믿고 의지할 좋은 사람이면 됩니다. 물론 쉬운 건 아니지만,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조금 더 듣고,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내 말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조금만 의식해서 이야기해보세요. 이런 것들을 의식하는 순간, 사소한 말들이 바뀔 것이고, 말들이 바뀌면서 행동도 바뀌실 겁니다. 새로운 말과 행동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태도가 되고 습관이 되는 겁니다. 훌륭한 태도와 습관을 가진 팀장님이 바로 팀원들의 눈에는 ‘좋은 사람, 좋은 어른, 성인군자’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