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나 특별한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여행에 DSLR이나 풀프레임 미러리스 같은 고급 장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무겁기도 하거니와 광곽부터 망원까지 렌즈를 갖추려면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죠. 이때 가벼운 보급형 미러리스 카메라가 답이 될 수 있습니다.
7월 말 몽골 원정대 1기 멤버로 참여한 원영씨가 소니 알파 5100으로 담은 여행사진을 건네받아 여행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포스트의 모든 사진은 원영씨가 촬영한 사진이며 포토샵 액션을 이용해 리사이즈와 샤픈 필터를 일괄 적용했습니다.
여행에서 풍경 사진은 장소의 특징보다 해의 위치, 날씨, 그 외의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새벽녘 공항을 출발한 덕분에 우리는 이른 아침 테를지의 낯선 얼굴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따사로운 몽골의 아침햇살에 뽀송뽀송해지는 초원과 함께
잔디 위에 누워 공평한 햇빛 나누기
모든 빛깔이 깨어나는 맑은 하늘 아래, 하늘과 땅의 노출 차를 놓치지 않고 잡아냅니다.
거북바위를 지나 산 중턱에 위치한 아리야발 사원은 부처님이 타고 다닌 코끼리를 형상화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코끼리 코에 해당한다는 108개의 계단을 오르면 마니차로 빙 둘러싸인 본당이 있는 아담한 사원이 등장합니다.
노마딕 캠프에서는 몽골 유목민들의 전통적인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체험처럼 정해진 코스대로 안내자의 설명을 따라 2시간 동안 유목민의 생활을 듣고 체험합니다.
마유주, 아이락 등 전통 음식도 맛보고 코담배 체험도 해보고 전통놀이, 전통음악도 즐길 수 있습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마음과 정을 주고받았던 지난 고비 여행에서 유목민들과의 만남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울란바토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이와 같은 체험을 한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습니다.
유목민 체험을 마치고 우리는 더 깊은 초원으로 들어갑니다.
변함없이 함께하는 지평선은 우리의 속도를 망각하게 하지만 가끔 지나쳐 가는 초원 위 식구들의 존재가 우리의 방향을 일깨워줍니다.
가끔 해와 시간을 먼저 보내고 난 길 위에 멈춰 앉아보기도 하고
창밖으로 만 보던 풍경 속으로 걸어가 자연을 만나며
첫 경유지 엘승타슬하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2011년, 지는 해를 보며 가슴 뭉클했던 엘승타슬하이! 에 다시 찾았습니다.
하얀 빨래가 바람의 존재를 알리는 낯선 초원의 풍경 너머 언덕 위에, 이흐카트링촐로에서 본 듯한 돌무더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해가 지기 전 그곳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고 잠 시후 우리는 실행에 옮기게 되었죠.
뜨거운 해를 피한 게르의 시간들이 지나고
엘승타슬하이 하면 빠질 수 없는 사막과 낙타의 시간들도 지났습니다.
물론 이런 시간도 여행을 기억하게 할 잊을 수 없는 책갈피임에 틀림없지만,
지는 해와 함께한 미지의 시간과의 만남은 앞으로 오래도록 몽골을 기억하게 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언덕
그곳의 돌무더기들은 아마도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전부터 이 초원 위에 이름 없이 놓여있었겠죠.
오랜 시간 동안 셀 수 없는 구름이 이 자리를 지나고 눈과 비도 수없이 내렸을 겁니다. 양, 염소, 말 - 초원의 주인들이 이곳 주변의 풀을 뜯기 위해 잠시 머물기도 했겠지만, 초원 한가운데 놓인 돌산에 어떤 목적이 있겠습니까. 모두 이 곳을 스쳐 지날 뿐.
그러던 어느 날 이곳을 목적지로 삼아 찾아온 우리가 있었습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이곳을 신기해하며 커다란 바위 주위를 돌고 어루만지고 올라가고 한참 머물렀습니다.
앞으로 긴 시간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겠지만 2011년, 우리가 지는 해를 바라보던 이름 없는 언덕을 2년 후에 다시 찾아 사진을 보내준 자화처럼
원정대가 계속되는 한 누군가는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아 안부를 전해주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후, 매직 아워가 시작되면서 초원은 예상치 못한 극적인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내 생에 가장 길고 느린 일몰의 시간
그 아름다움을 증거로 담고
함께 한 친구들과 석양 같은 느린 걸음으로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도시에서는 노을과 함께 하루의 아름다움이 끝나버리지만, 몽골은 해가지면 새로운 감동이 우리를 두근거리게 합니다.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