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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npyo의 여행이야기
by Sean Pyo Dec 07. 2017

텐트에서 출근합니다.

겨울철 장박 동계캠핑 이야기




형 언제 한 번 놀러 와요. 잘해줄게요.


이 말 한마디에 평일저녁 퇴근 후 염치없이 연천에 위치한 지인의 장박지를 찾았다.




장박이란? 오토캠핑장에 한 달 이상 사이트를 예약해 텐트를 쳐놓은 채 주말에(혹은 원할 때) 찾아가 아웃도어를 즐기는 활동을 말하며 흔히들 겨울철에 월 단위로 계약해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장박을 하게 될 경우 텐트는 물론 간단한 장비도 텐트 안에 두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photo by 캐논 eos 800D


평일 저녁 6시반쯤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도착하자마자 언 손을 호호 불며 서둘러 텐트를 치고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었다.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게 주말 아침 캠핑장으로 출발해서 텐트를 설치하고 일요일인 다음날 텐트를 걷고 철수해 서울로 돌아온다.



photo by 캐논 eos 800D


결국 이동시간과 텐트와 장비를 세팅하고 다시 철수하는 시간이 1/3, 먹고 설거지하는 시간 1/3  나머지 1/3은 잠을 자는 데 사용하는 셈이니...



1박 2일 오토캠핑에 쉼표는 없다.





장박의 장점

겨울철에는 난방용품, 보온용품 등 챙겨야 할 것이 다른 계절보다 더 많아서 주말을 이용해 즐기기에는 시간적인 제약이 많다.


photo by 캐논 eos 800D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캠핑카나 캠핑 트레일러를 구입할 수도 있지만, 여건상 어렵다면 장박도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사이트 설치와 해체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주말이면 부담 없이 찾아가 겨울 별장을 즐기듯 자연 속에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화목난로(좌) 토요토미 반사식 석유난로(우)


겨울에 캠핑을 한다고 말하면 '얼어 죽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인데 대형 텐트나 쉘터 안에 난방 준비를 잘 해놓으면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따듯하다. 다만 화목난로나 석유난로, 가스난로 등 난방용품을 목적에 맞게 준비하는 것은 필수라 할 수 있다. 이때 아래쪽을 개방해 차가운 공기가 유입되고 윗부분은 뜨거운 공기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가 실내의 오염된 공기가 순환될 수 있도록 환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외에도 장박을 위해서는 준비할 것들이 많아서 캠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점이 많다. 결국 장박은 장비와 경험이 부족하다면 도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인의 장박지에 방문하게 되었다.




저의 오랜 친구입니다. 덩치는 곰 만하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탓에 얼굴을 가렸다.


겨울철 장박지에서 생활하려면 난방이 필수인데 작은 사이즈의 돔형 텐트에서는 난로 사용이 불가능하다. 가진 장비의 대부분이 미니멀/백패킹 용이다 보니 장박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경험은 해보고 싶어서 가족이 없는 주 중 저녁을 이용해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찾아와 겨울밤, 모처럼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진으로 만나 형 동생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곰처럼 크지만 수줍음이 많다.


8시면 초저녁이지만 주 중이라 주변은 마치 깊은 밤인 것처럼 숨죽인 듯 조용했다. 먼저 도착한 동생이 미리 난로에 불을 지펴, 텐트는 따듯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로우 체어 깊숙이 엉덩이를 찔러 넣고, 따듯한 커피를 한 잔 나누고 나서야 잠들어 있던 겨울밤이 깨어난듯 했다.






서울에서 1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해 오면서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는데 하나는 졸음이고 나머지 하나는 출출함이었다. 그런 내게 화목난로 위 스텐 더치오븐 속의 수육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은 어떤 인센스나 향수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대감을 주었다.





음식을 향해 조용히 타오르는 내밀한 욕망. 지갑만 열면 어떤 음식으로도 쉽게 위를 채울 수 있는 도시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었다.





H는 그 목마름을 조율이라도 하듯 서두르지 않고 밥을 먼저 덜어 내게 건넨다.






적당히 내린 눈처럼 딱 알맞은 양의 밥은 눈으로 봐도 맛있게 느껴졌다.




형은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돼요




제말 사진좀 찍지 말아요.


카메라 셔터 누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도마를 꺼내고 조용히 올려놓은 재료를 '톡톡톡' 다진다. 말은 없었지만 동작과 소리가 그의 언어인 양 시간 속에 스며들었다.






다시 재료를 치우고 도마 위를 비워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난로로 향했다.





무거운 더치오븐을 테이블에 살포시 올려놓고 수저세트를 챙기는 모습에는 익숙한 경험과 배려가 녹아있다.






때가 되었다.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기다리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적이 있었던가...





물 한 방울 없이 야채와 채소의 수분으로 찐 수육이에요.







아까보다 느린 박자로 턱, 턱, 턱






정성이 스며든 건강한 요리, 아마도 이런 음식을 서비스하는 식당이 있다면... 아니 그런 식당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릇의 반을 비우고 나서야 김치가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각, 사각


겨울밤 텐트 안에는 우리가 움직이는 만큼의 소리만 쌓여간다.




허기를 달래고 음악으로 남은 공간을 채운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복수를 하겠다는 듯 사진기를 든 H





미국 여행을 하면서 네가 많이 생각났어

(국립공원에 곰이 많더라고)





하며 이것저것 선물을 건넸지만






정작 그는 내가 가져온 낡은 요리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photo by 캐논 eos 800D


먼 곳이 아니고 긴 시간이 아니어도 깊고 푸근한 여유로움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오감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 겨울이기 때문에 더 따듯했을 것이다. 시곗바늘은 깊은 새벽으로 조용히 기울어간다.




내일 출근하려면 새벽 6시에는 출발해야겠지?





겨울밤, 우리의 시간은 소리 없이 내리는 새벽의 눈처럼 천천히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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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여행중인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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