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예술기행 Gallery0369 사진전 이야기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 알려진 관광 도시와 달리 미에현(三重県)은 이름조차 낯설다.
일본에서 가장 큰 반도(기이 반도)의 동부에 위치해 있는 미에현은 현청 소재지인 쓰시를 기준으로 도쿄에서 기차로 3시간, 오사카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행정구역 상 간사이에 속해 있어 오사카, 교토의 방언을 사용하지만 거리상으로 더 가까운 나고야의 경제 문화권에 속해있는 곳. 매년 많은 우리나라 관광객이 일본을 찾지만 일본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덜 알려진 곳.
미에현의 갤러리(Gallery0369)에서 사진전을 열게 되었다. 미에현 쓰시 미사토초에 위치한 Gallery0369는 미에현의 지역 사진가 마츠 유타카가 2016년에 오픈한 사진 전문 갤러리다.
전시 제목은 ‘서울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길 Seoul Vagabond’로 표현준 ‘한강에서 만난 사람들’, 정혁진 '경계(境界)’이렇게 함께하는 2인 전이다. 이번 여행은 함께하는 전시의 의미도 소중하지만 낯선 미에현을 둘러볼 기회도 있어 더욱 특별한 여행이었다.
미에현 여행만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우리가 흔히 찾아가는 일본 여행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다. 한국이라 착각할 정도로 우리나라 관광객도 많다.
흔한 관광지를 떠나 인적 없는 영화 세트장처럼 줄 서지 않아도 되는 조용하고 느린 여행. 그런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분이라면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만약 미에현으로 여행을 계획했다면 오사카 공항보다 나고야 주부 국제공항을 이용하는 편이 접근성이 더 좋다. 주부 국제공항에서 미에현으로 이동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고속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나고야 시내로 들어가 긴테쓰 특급열차로 갈아타고 해안선을 따라 돌아가는데 2시간이 소요된다. 반면 고속선을 이용하면 47분 만에 미에현에 도착할 수 있다. 이세만을 건너 미에현에 도착하면 여객터미널 버스정류장에서 쓰역(津駅前)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쓰역은 긴테쓰 전철을 이용해 이세伊勢, 도바鳥羽, 시마志摩로 떠나는 미에현 여행의 출발점이다.
해 질 녘 갤러리에 도착해 마츠 유타카 씨의 집에 짐을 풀었다. 80년 된 오래된 고택을 리모델링한 마츠바라 씨의 집과 정원은 다른 호텔이나 료칸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생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갤러리 앞마당이나 인근 야산에서 백패킹을 하기 위해 텐트를 가져갔지만 오래된 전통가옥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3일 밤을 다다미에서 지냈다. 전시를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둘째 날, 미에현 당일치기 여행을 위해 셋째 날로 계획된 전시 오프닝 행사 준비를 밤새 모두 마쳤다.
65%가 숲으로 이루어진 미에현에서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여행지는 두 곳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이세시 중심에 위치한 이세신궁伊勢神宮, 나머지 하나는 시마 지역 연안에 펼쳐진 리아스식 해안으로 1,000km가 넘는 해안선이 복잡하게 얽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하루 행선지로는 조금 멀고 빡빡한 일정이지만 용감하게 길을 나섰다. 배웅을 나와 손을 흔들어주는 마쓰 유카타 씨. 이 지역 출신인 그가 추천한 곳은 검은색 국물로 유명한 이세우동 치토세(伊勢うどんちとせ)다.
미사토 마을의 조용한 반전
마을을 나선 일행은 골목을 벗어나기도 전 일제히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담장 벽에 붙어있는 게시판 때문이다.
마을에서 관리하는 게시판인 줄 알았는데 유심히 들여다보니 한국 걸그룹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인근의 소식도 아니고 도쿄나 오사카 같은 타 지역의 공연 소식이다. 평범한 공연 포스터가 아닌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이 녹아있는 이 설치물로 인해 평범해만 보이던 작은 마을에 범상치 않은 아우라(aura)가 느껴졌다.
일본은 참 알 수 없는 나라다.
미사토 마을에는 단 한대의 버스 노선이 있고 버스는 매 시, 한 대만 지나간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30여 분 만에 도착한 쓰신 마치 역에서 우동집이 있는 이세신궁이 있는 이세시역(伊勢市駅)까지는 긴테쓰로 45분 정도 소요된다.
이세우동 치토세
이세시역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이세신궁이 아니라 마츠 씨가 추천한 우동집이었다.
일행은 간장 육수의 이세우동, 차가운 국물 무우동, 따뜻한 계란우동 등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짜장면 같기도 하고 약간 시큼한 느낌도 있다. 우동도 맛있었지만 친절한 주인과 가게 구석구석 묻어나는 세월의 흔적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세신궁
이세신궁은 내궁과 외궁으로 분리되어있다. 이세시역과 가까운 쪽은 외궁, 내궁은 버스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하루를 여유 있게 이세 시에서 보낸다면 내궁 쪽 오하라이 마치(상점가)도 구경했겠지만 우동집을 나오니 오늘의 목적지 가시코지마 역賢島駅까지의 시간이 촉박했다. (여유가 있다면 내궁도 반드시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외궁 안쪽 신사까지의 길지 않은 산책로를 걸었다. 이세신궁은 신에게 새집을 바치기 위해 20년마다 신전을 새로 짓는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신사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전역의 신사들을 대표하는 중심 시설이라 이세라는 지명을 붙이지 않고 '신궁'이라 부르기도 한다니 미에현의 대표 격인 랜드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세 신궁은 종교적인 의미의 방문도 있겠지만 울창한 숲길을 걷는 힐링의 목적으로도 좋다. 숲 안쪽으로 들어가면 눈길을 끌만큼 커다란 나무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외궁에서 이세 역까지의 상점가는 아기자기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단정하고 한적한 거리에 시원한 맥줏집, 아이스크림 가게, 기념품점, CHALEO라는 이름의 아웃도어 숍 등이 있어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가시코지마 역
이세시역으로 돌아와 가시코지마 역으로 이동한다. 이세시역에는 긴테쓰와 JR이 통과하는 데 긴테쓰선을 이용해야 한다. 토바를 지나 가시코지마 역까지는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4시, 이미 해는 한낮의 그것과는 다른 차분하고 색이 짙은 햇살을 역사 처마 밑으로 뿌리고 있었다. 가시코지마 역에서 나와 100미터 정도 걸어가니 바닷가가 보인다. 눈높이로 관찰하기 어려웠던 주변 모습을 드론으로 확인하니 미디어로 어렴풋 짐작했던 복잡한 해안선이 나타난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곳에 서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가시코지마 역 코앞에는 주변 해안선을 둘러볼 수 있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해 질 녘 만난 태평양과의 눈 맞춤을 뒤로하고 돌아가야 한다. 이미 해는 건물 뒤로 몸을 숨기고 어두운 건물의 그림자가 도로를 뒤덮은 시간이다.
먼 거리를 달려와서 한 시간을 채 머물러 있지 못해 아쉬웠지만 아쉬워서 생각이 나고 우리는 다시 여행을 계획한다. 아쉬움이 없는 여행이 반드시 좋은 여행은 아닐 것이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시코지마에서 우리의 여행은 반환점을 돌았다. 3박 4일 여행 둘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여행은 이제 겨우 반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짙은 아쉬움에 우리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돌아가는 기차에 앉아 풀어놓은 실타래를 다시 감듯 되돌아간다.
일본에서 날아온 초대장 덕분에 오사카, 나고야에서 찾아온 공연기획자, 갤러리 운영자, 사진작가, 학생 등 많은 분들과 마주한 한걸음 한 걸음을 경험했다. 감사한 만남이었고 감사한 여행이었다.
서두에 밝힌것 처럼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도시에 사는 우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 시끌벅적하고 발 디딜 틈 없는 대도시 여행보다 느리고 한적하고 조용한 일본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미에현의 소도시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영상 링크 : https://youtu.be/ifmwrYq-w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