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몽골원정대 고비 여행
2017년 6월, 몽골의 늦은 봄
아침에 빨래한 양말이 오전 집을 나설 때쯤 말라있었다. 몽골의 뜨거운 햇살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그 태양 아래서 고비 최남단 홍고링엘스로의 여행을 떠난다.
3일 동안 여행자 캠프 없이 고비를 종단하게 될 원정대의 단백질 섭취를 위해 소고기를 미리 재워둔다.
캠핑으로 떠나는 여행이라 먹고 마실 식량 준비도 필요했다. Jeep 랭글러 한 차에 5명의 캠핑장비와 6박 7일간의 짐, 남는 공간에는 먹을 것을 빈틈없이 채워 넣어야 한다.
마실 물만으로도 차 한 대가 가득 찼다. 하지만 원정대 멤버들과 한국에서 오리엔테이션과 사전 캠핑을 통해 짐을 최대한 줄이고 꼼꼼하게 준비해온 탓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원정대 여행을 함께 준비해준 고마운 친구들 자화, 빌게, 바츠라 그리고 선호.
공항으로 향하는 길, 듬성듬성 가리지 못한 초원의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사진 속의 풍경(2017년)은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2011년에는 아스팔트도 없었던 공항과 도시를 잇는 비포장로가 매년 무섭게 변해가고 있다.
칭기즈 공항에 멤버가 모두 모였다! 늘 이 자리에서 첫 기념사진을 찍는 원정대지만 이번만큼은 더욱 가슴 벅차다.
고비를 캠핑으로 여행하는 그룹 투어로 이 정도의 규모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4륜 구동 차량 5대, 드라이버를 포함해 총 25명의 멤버. 놀라운 것은 멤버 대부분이 이곳에서 캠핑을 처음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편의시설은 커녕 사람의 흔적조차 없는 고비의 거친 환경을 경험하게 될 7일간의 여행은 모험이라 고쳐 써도 틀리지 않는다. 자연으로 떠나는 날것의 여행, 평생 도시에서 살아온 멤버들에게는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첫 경험이니까.
초원으로 들어가기 전, 다섯 대의 차가 열병식을 하듯 슈퍼 앞에 일렬로 섰다. 맥주를 한 병씩 손에 쥐기 위해서였다. ‘초원 드라이브와 시원한 맥주!’ 여행이 시작되는 지금 이순간, 이보다 행복한 조합이 있을까?
한 시간쯤 달리다 보니 해가 제법 지평선과 가까워졌다. 야영 첫날이라 일찌감치 고속도로를 벗어나 숙영지를 찾았다.
텐트를 처음 쳐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해가 떠있는 동안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몽골 여행도 처음이지만 캠핑여행도 처음인 멤버들은 이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
한국에서의 캠핑이란 좁은 공간에서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생활한다. 내 텐트의 팩이 옆집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공간을 계산하고 구역에 맞는 사이즈의 타프를 쳐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몽골의 캠핑이란 어떤가...
걸어도 걸어도 초원이 펼쳐진 세상... 몽골에서 캠핑을 경험해 본 사람은 더 이상 우리나라의 캠핑장에 만족하기 어렵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4시간 만에 거짓말 같이 몽골의 지평선을 만난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낯익은 이를 만난 것처럼 사진 속으로 만 보아 오던 익숙한 풍경에 놀라 멍하니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풍경 전체가 아름다운 배경지가 되니 연신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어쩌다 누군가 무리와 멀어질 때는 그 뒷모습에 취해 따라나서지 말자.
자연과 만나는 소중한 순간을 지켜주는 것이 초원의 에티켓이다.
비현실적으로 멀리 날아가 버린 홈런볼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던 해가 어느 순간 지평선에 살짝 걸쳤다.
그제야 먹먹한 초원 위를 떠돌던 영혼을 황급히 거두고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처음 경험하는 텐트, 설명서도 없다 보니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여기저기 망치소리가 들린다.
망치를 미쳐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돌을 주워서 팩을 박는다.
앞으로 여행 끝날 때까지 스스로 해야 할 일이기에 가급적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설치하도록 했다.
먼저 설치가 끝난 사람들은 초원에서의 첫 밤을 위한 준비를 한다. 의자에 앉아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밤하늘의 별을 기다릴 것이다.
매직 아워가 시작되었다. 세상의 반이 하늘인 몽골에서 매일 하루에 두 번 펼쳐지는 대규모 이벤트다.
어둡고 선명한 파란빛이 하늘 뒤쪽부터 밀물처럼 몰려와 구름을 덮고 따듯한 오렌지 빛을 까만 지평선 아래로 밀어낸다. 색과 색이 블렌딩 되어 사방의 모든 사물의 빛깔이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변해간다.
우리는 준비한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풍경을 감상했다. 어느 유명한 도시의 노천카페가 부럽지 않은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커다란 보름달 때문에 기대했던 은하수를 만날 수는 없었던 밤.
커다란 보름달에도 불구하고 별들이 반짝였다. 조금 더 별과 가까운 언덕 위로 올라갔다.
은하수를 볼 수 없는 것은 아쉬웠지만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밝은 달이 있어 좋았다. 선명한 웃음소리가 서먹함을 지우던 그런 밤이었다.
멀리 짙은 땅과 하늘의 경계를 바라보며 내일 아침의 풍경을 상상했다. 그렇게 말없이 우두커니 서있으니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시원한 바람이 슬그머니 얼굴을 어루만지고 사라지곤 했다. 가늠할 수 없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서로의 발 밑을 비추며 언덕을 내려간다.
우리 여행은 아직 빈 그릇이지만 마음은 알 수 없는 만족과 기대로 부풀어 그것만으로 벅차있었다.
이미 별은 있어도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