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션표 seanpyo May 05. 2021

여행자를 위로하는 바다 위 작은 별 비양도

B612양도 백패킹 가이드




추 작가는 제주 비양도의 봉수대를 오르고 있습니다.




이곳의 일몰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서입니다.



손바닥 만한 작은 섬 비양도는 어린왕자의 B612처럼 한 자리에서 해가 지고 몇 걸음 옮겨 해가 뜨는 것을 감상할 수 있는 백패커의 성지라 불리는 곳입니다.






우도에서 연도교로 이어진 제주의 동쪽 끝 비양도. 해 질 녘 섬 가운데 나지막한 언덕 위에 오르면 아름다운 비양도의 일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운전을 하고, 배와 버스로 환승하고 그리고 걸어서 도착한 비양도에 텐트를 치고 일몰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비양도 여행의 매력이
이것뿐일까요?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의 멋과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경험한 비양도 여행의 담백한 맛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종달항을 선택한 이유








비양도로 떠나는 아침. 동행의 제안으로 평대 홀라인에 잠시 들렀다. 백패커의 성지라는 수식을 가진 이곳은 아웃도어 용품 판매점이다. 알록달록 예쁘게 큐레이션 해 놓은 아웃도어 용품과 액세서리들이 많아 캠핑이나 백패킹을 하지 않는 여행자라도 찾아 볼만 한 곳이다.






가게를 나서기 전, 이 곳 점장님에게 근처 식사할 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주변 식당 몇 곳을 알려주었다. 그러다 문득 우도로 떠나는 우리에게 종달항을 이용해보라고 이야기했다.

'여행의 맛'을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종달항도 맛집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종달항을 추천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성산은 많이 가보셨을 것 같아서요.
가보시면 알겠지만 종달항은
시골 같아요.
그런 매력이 있어요.'





남은 커피 한 모금을 삼키고 그녀가 건넨 메모지에 적혀있는 종달항으로 떠났다.

지인의 정원, 섬, 숲, 바닷가... 계획이라고는 매일 밤 텐트를 칠 곳만 정한 여행이다. 길 위에서 만난 누군가에 의해 행선지가 변경되는 것은 바라던 일이었다.






우리는 성산항으로 곧게 뻗은 일주도로를 버리고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해안도로를 따라 종달항으로 향했다.





우도여행 맛집 종달항


지금까지 여러 차례 우도 여행을 했지만 늘 성산항을 이용했다. 성산항은 30분에 한 번 배가 운행하니 도착하면 곧 다음 배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도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성산항을 찾는다.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니 시설도 확장해 여객선 터미널도 규모가 커졌다.







그에 비해 우리가 도착한 종달항의 도항선 대합실은 아담한 매표소 건물이 전부였다. 사람도 없고 주차도 무료라 좋았다. 시간표도 넉넉하니 주변 식당에서 너그럽게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효율을 강요하는 일상에서 탈출한 여행자에게 필요한 게으름이다.





종달항은 하루에 배가 4번 운항한다. 하지만 배편이 적다고 해서 여행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바일 덕분에 여행이 스마트해진 요즘. 불편함으로 인해 더 깊게 새겨지는 여행의 추억은 오히려 경험하기 어려운 가치가 되었다.

종달항은 먼지 쌓인 여행의 기억을 환기시켰다. 게다가 배편이 적은데 승객 수도 눈에 띄게 적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종달항을 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종달항은 여행 맛집이었다.


성산항이 번화가의 패스트푸드점이라면

종달항은 외딴 시골의 국숫집 같은 느낌이다.






관광을 하려면 성산항,

여행을 하려면 종달항

종달항의 매력을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우도의 하우목동항



하우목동항에서 섬 반대쪽에 위치한 비양도까지는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데 우도에는 마을버스가 한 대 뿐이다. 관광버스는 배낭을 멘 백패커를 받지 않았고, 섬에 단 한 대 있는 마을버스는 한 시간에 한 번 운행하니 그 자리에 앉아 긴 시간 기다려야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지도를 보니 하우목동항에서 비양도까지는 도보로 3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만약 하우목동항에서 매시 4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놓쳤다면 비양도까지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40분을 기다려 비양도행 33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섬 안 구석구석을 돌아 승객을 모두 내리고 마지막에 비양도로 향했다.





조일리 복지회관 버스정류장,

버스에서 내렸는데 바다도 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을 안쪽으로 50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비양도에 도착한다. 우리는 거뭇거뭇한 돌담길이 늘어선 마을 구경을 하며 바닷가로 향했다.



 


바다를 만났다. 다행히 비도 바람도 없다. 왼쪽으로 비양도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제주 안에 섬 우도, 그 안의 작은 섬 비양도는 결코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인기 있는 명소임을 반증하듯 입구에 편의점이 있었다.




비양도는 공사중?


아스팔트가 곧게 깔린 연도교를 건너 비양도에 입도했다. 백패킹 3대 성지라는 타이틀답게 평일이지만 섬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선자령, 굴업도와 달리 비양도는 야영이 허용된 곳이다.






하지만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굴삭기다.

굴삭기 한 대가 비양도 안에 구조물을 철거하고 바닥을 고르고 있었다. 거친 바닷바람을 피하기 위해 야영객들이 쌓아 올린 돌과 나무들은 보기에도 흉측하고 그 때문에 바닥에 잔디도 자라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반나절 진행하던 공사가 끝나자 섬 가장자리에 있던 백패커들이 하나 둘 섬 중앙의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우리도 자리를 잡았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배낭 안의 짐부터 일상에서 가져온 마음의 짐까지 느릿느릿 섬 위에 내려놓았다. 모처럼 시계 눈금의 경계에서 해방된 무중력의 오후. 해의 위치를 살피며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먼저 정리를 마친 동행은 비양도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서 마실 것을  왔다. 어젯밤 마당을 내어준 지인이 만들어  김밥도 있다.

맥주와 김밥, 어울리지 않지만 풍경과의 마리아주는 꿀맛이다.






바람이 불었다.








잠깐 한눈 판 사이 순식간에 섬 저편으로 날아가는 비닐봉지처럼 구름도 빠르게 흐른다. 그런데 커다란 구름이 해의 방향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 자칫 노을을 보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며 틈틈이 하늘을 살폈다.







여행자를 위로하는

바다 위 작은 별 B612양도


일상에서는 하늘 볼 일이 거의 없지만 비양도에서는 고개를 들지 않아도 보이니 원 없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다행히 구름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구름이 예쁜 날은 일몰이 아름답기에 기대는 더 부풀었다. 비양도가 백패킹의 성지가 된 이유는 이 자리에 앉아 바라보는 일몰 때문인 것 같다.





해는 매일 뜨고 지지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 두 번의 이벤트를 모른 채 살아간다. 우리가 늘 건물 속에 있기 때문이고, 높은 도시의 스카이라인 때문이며, 사물이 어두워질 즈음 태양을 대신해 사물을 밝히는 가로등 때문이기도 하다.






사그라져 가던 손톱만 한 작은 빛이 지평선에 닿는 순간 하늘이, 아니 세상이 진한 선홍빛으로 물든다.

붉은 노을은 하늘 반대편부터 뻗어오는 심연의 푸르름 속으로 번졌다.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비양도의 사람들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해가 떨어질 때는 언제나 해지는 쪽이 주인공이지만 해가지고 매직 아워가 시작되면서 사방 천지가 찰나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시작했다.








빛이 내린 세상의 모든 것이 마법에 걸린 시간.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 사진가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을 작은 상자 속에 고정했다.








자연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 인간이 만들어 낸 말과 글이 저절로 고개 숙여지는 시간. 우리는 입을 다물고 말없이 풍경을 즐겼다.








그리고 묵직하게 저물어 가는 거대한 풍경을 감상하며 저녁을 준비했다.









뜻밖의 배웅 





다음날,

이제 비양도를 떠나 우도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분명 올 때와 같은 길이지만 빛도, 소리도, 마음도 다르다.

그 헛헛함을 채워주듯 댕댕이 한 마리가 동행해주었다.






텐트 사이를 오가며 기웃거리던 이 녀석은 비양도를 여행한 사람들에게는 꽤 유명하다고 한다. 그는 마을을 가로질러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했다.







여행자의 위로


백약이 오름과 종달항을 추천해준 분들, 마당을 내어준 지인 그리고 지금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동행과 댕댕이... 찰나의 인연이 모여 여행을 완성해가고 있다.


그 순간 문득 영화 Nomadland의 대사 한 줄이 떠올랐다. 이십 대와 삼십 대의 경계에 읽었던 조병준 시인의 에세이 '길에서 만나다'와 흡사한 메시지.





'I'll See you down the road'.


돌이켜 보면 길 위에서 만난 과정의 순간들은 지는 노을만큼 아름다웠다.

수많은 길과 사람이 데려다준 풍경이었기에 그날의 일몰은 더욱 값진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내가 이번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 중 하나는 작별인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작별인사를 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길에서 다시 만나자' 그리고 그렇게 해요. 그게 한 달이건 일 년이건 아니면 몇 년이 되건 나는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거라 생각해요. 길 위에서 반드시...
one of the things I love most about this is that there's no final goodbye. i've met hundreds of people out here and wo don't ever say a final goodbye. we just say 'I'll See you down the road'. and I do. whether it's a month or a year or sometimes years, I see them again. I can look down the road.

- Nomadland 중 Bob Wells의 대사-




제주 여행자를 위한 바다 위의 작은 별 비양도 영상도 시청해주세요!





http://www.youtube.com/seanpyo​
션표의 자연여행 유튜브 링크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로 오르다' 제주 오름의 정석 백약이 오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