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이야기
캠핑으로 찾아온 제주여행
가능하다면 오름 위에서 일몰과 일출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최근 휴식기로 입장을 제한하는 곳도 있고 야영을 금하는 오름도 많다고 하니 잠깐 다녀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백약이오름 오르기
잠시 쉬어가는 선흘리 아담한 카페, 주인에게 근처 오름을 하나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니 백약이 오름으로 가보라 했다.
오름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쉽고 재밌어서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더구나 백약이는 낮은 편에 속하는 오름이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오름을 오르다 힘이 들면
뒤돌아 잠시 숨을 고르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걸음을 위로 옮길 때마다 시야는 넓어지고
문없는 엘리베이터에 오른 것 처럼 점점 더
땅 위에서 볼 수 없었던 시야를 조망할 수 있다.
20분 정도 올라가면 분화구 중심이 보이는 낮은 능선에 도착한다. 백약이 오름의 분화구는 제주의 오름 중에 손에 꼽히는 예쁜 모양을 하고 있다. 오름의 주인공이 분화구라 생각한다면 바로 이곳에서 백약이 오름의 중심으로 내려갈 수 있지만 현재는 출입이 금지된 모양이다.
분화구를 처음 만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오름의 정상이 보인다.
백약이 오름의 높이는 132미터라고 하는데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쉽게 오를 수 있다.
하늘로 오르는 길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능선 너머의 풍경. 언덕의 끄트머리에 다다를 때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숨이 차오르지만 오름은 걸음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돌려준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한 풍경
제주의 오름은 몽골의 초원을 닮았다. 이곳 백약이 오름의 정상도 그랬다. 동그란 분화구와 완만하게 솟은 언덕 그리고 능선을 따라 난 둘레길. 백약이 오름은 우리가 오름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제주 오름의 정석이다.
잔디에 앉아 가방 안에 넣어온 귤을 꺼내 드시던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이 보기 좋았다. 비싼 돈을 들여 휴양지를 찾지 않아도, 잠깐의 산책으로 얻을 수 있는 쉼.
백약이 오름에 도착한 사람 중 일부는 초입에 있는 계단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정상의 풍경을 잠시 보고 언덕을 내려간다.
하지만 한 가지 숨은 즐길 거리가 남아있는데 바로 능선 둘레길 걷기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멀리 이어져 그 길이를 가늠할 수 없으니 선뜻 걸음을 옮기기 어렵다. 하지만 분화구 주변 능선으로 난 둘레길의 길이는 1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니 시도해 보는 것을 권한다.
둘레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바라본 풍경도 아름답다.
제주의 오름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2011년 몽골에 가기 전까지 내가 제주를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오름이었다.
하지만 제주의 오름은 날이 갈수록 매력이 덜해지고 있다. 난개발로 오름 주위에 도로를 닦고 넓히면서
널찍하던 제주의 초원은 먹기 좋은 돈가스처럼 조각나고 있다.
언덕을 올라 본격적인 둘레길 산책을 시작했다.
주변에 자생하는 약초가 백가지가 넘는다고 해서 백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분화구의 둘레가 평탄해서 정상의 언덕을 제외하고는 평지를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편안한 산책로는 극적인 반전 없는 오기가미 나오코의 느린 영화를 닮았다.
대략 15분 정도면 둘레길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하늘과 가까운 오솔길. 산책로를 따라 늘어선 나무 뒤로 하늘뿐이라 세상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기분마저 든다.
이제 잠깐의 오름 여행을 마치고 야영지로 향한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과 특별한 장소
우리의 발걸음은 오름의 내리막처럼
백약이오름 영상(7분 3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