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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표 seanpyo Aug 17. 2021

여름, 에어컨을 대신하는 것들

사춘기 아이와 함께한 봉평계곡캠핑

봉평 여름 계곡 캠핑 즐기기


올여름은 봉평에서 캠핑을 즐겼다.




봉평은 유명한 소설의 배경이기도 하고 그 소설 덕에 메밀도 유명한 곳이다.








우리에게는 그저 복잡한 도심과 일상, 더위를 피해 잠시 떠난 도피처였다. 아, 더위는 피할 수 없었다.








되새기고 싶은 것이 있었다. 오래전 외가에서 보낸 희미한 여름의 기억들이다.

지금은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


에어컨뿐이지만


그 옛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에어컨을 대신하는 많은 것들이 존재했고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툇마루에 피어오르던 모기향, 살랑살랑 할머니가 부쳐주시던 부채 바람, 냉장고에서 막 꺼낸 델몬트 유리병에는 시원한 보리차가 있었고 마당 안 빨간 대야에는 냉장고에 들어가지 못한 커다란 수박이 차가운 물에 반신욕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분절된 조각이 모여 여름이 되었고, 여름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만의 즐거움들이었다.







먼 훗날 아이에게 지금의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아이에게 아빠의 오랜 기억을 강요할 마음은 없다. 그저 자연을 찾아 지금의 방법으로 여름을 즐기면 된다.








우리가 찾은 캠핑장은 흥정계곡을 두르고 있다. 하류에 위치해 있어 맑고 깨끗한 정도는 아니지만 눈으로 즐기기에는 좋았다.








카메라 장비를 바리바리 싸들고 갔지만 가방을 차에서 꺼내지 않았다. 민감한 사춘기 소년과 함께 하는 캠핑이라 그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담고 싶은 것들이 있을 때마다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기록했다.








한낮 36도까지 올라가는 더위 때문에 텐트 대신 모기장을 준비했다. 메쉬 텐트는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지는 않지만 더운 공기를 가두지 않아서 여름에 그늘 아래 사용하기에 좋다.








또 아이를 위해 모기채도 주문했다. 날벌레 퇴치는 아이에게는 생존의 문제였지만 약간의 오락성도 있어서 인기 만점이었다. 전기 모기채는 날벌레를 싫어하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캠핑템이 되었다.









날벌레를 모두 처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밤늦게까지 함께 게임을 즐겼다.









다음날







이른 아침 귓가에 속삭이는 냇물 소리에 잠에서 깼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시원한 계곡을 보니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봉평 시내를 찾아 튜브를 구입했다.








또 외출한 김에 메밀국수도 맛보고 돌아왔다.









계곡에 사람이 없었다.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 식사 시간.

식사를 하고 온 덕분에 오롯이 둘만의 계곡을 즐겼다.








바랄 것 없는 소중한 순간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의 어린 시절을 빼앗아간 시간, 흘러 내려간 계곡물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 순간의 소중함 역시 알고 있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빌 나이가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과거의 순간이 왜 그때의 바닷가였는지 사춘기의 아들이 있는 아빠라면 안다.








사람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단 한 시간을 위해 구입한 튜브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다.








물놀이 후 자리 한편에 간이 샤워 셸터를 설치했다.


 






공용 시설인 샤워장에 가지 않고 간단하게 물로 샤워할 수도 있고 사춘기 아이가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는 공간이다.(오픈된 메시 텐트에서 생활하니 필요했다)








한낮의 더위를 물놀이와 샤워로 씻고 나니 입이 심심하다.


속도 시원하게 해 볼까?







한여름, 시원한 보리차는 달짝지근한 음료수보다 맛있다. 보리차를 끓여서 식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린 다음 얼음을 넣는다.








'코로 느끼는 보리의 구수함' 어린 시절 냉장고에서 꺼낸 유리병을 식탁위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을 때 향이 떠올랐다.








추억 같은 구수함이 시원한 냇물처럼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겨울은 귤, 여름은 수박이다. 수박 없이 여름을 보내는 것은 마치 해외여행 없이 한 해를 보내는 지금의 기분과 비슷할 것 같다.








그동안 한 여름 제주도 여행과 캠핑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물놀이 후 그늘 아래에서 시원하게 즐기는 선풍기 바람, 보리차, 수박은 에어컨을 대신할 만큼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더위 '때문'이 아니라 '덕분'에 즐길 수 있었다.








해가 기울어 갈 무렵 해먹 위에 올라 어스름을 기다린다.








나무 그늘 아래 요람처럼 흔들리는 해먹. 입을 지긋이 다문 조용한 시간이 흐른다.








이틀간의 식사는 모두 밀키트로 준비했다. 전 국민이 캠핑을 즐기는 상황이다 보니 요즘 다양한 밀키트가 판매되고 있어 먹는 것이 번거롭지 않다. 요리를 못해도 버너 켤 줄 만 아는 정도면 맛있는 캠핑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렇게 짧은 2박 3일의 캠핑을 마쳤다.

여름 캠핑은 덥고 불편하다는 선입견을 지운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여름의 끝자락이지만 늦지 않았으니 주말 계곡으로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계절은 돌아오지만 오늘의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나저나 문득 궁금해졌다.










시골을 경험해   없는 아이에게 그날의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까?











여름의 맛 봉평캠핑,  10가지 준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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