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주익 분수의 마법
이십 대 시절
제대 후 머리카락 길이가 이전의 모습으로 자리 잡아갈 무렵
유럽 배낭여행에서 막 돌아온 여자 친구를 만나
한 달 반의 여정 중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는지 물어보았다.
스무 살의 유럽여행은 모든 것이 좋았을 터인데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그 시절 나는 좋은 나라, 더 좋은 나라의 구분이 분명할 거라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돌아온 답은 보다 구체적이었다.
유럽여행의 마지막 행선지 바르셀로나, 그녀는 몬주익 언덕 아래서 분수쇼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만큼이나 아름다웠다고 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유럽 여행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흘러온 시간만큼이나 아득히 느껴졌다.
그녀의 대답은 이후 머릿속에 꽤 오래도록 남았다.
2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나는 바르셀로나에 있었다. 여행을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었던 터라 며칠의 일정을 마치고 남은 하루, 함께 온 이들과 스페인 시내를 산책하며 보냈다.
목적 없는 여행은 값비싼 레저를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던가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루프탑에 올라 고딕지구의 매직 아워를 표정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2월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봄바람의 조금 맵고 시원한 냄새와 함께 불현듯 20년 전 그 대답이 떠올랐다.
세계 3대 분수쇼라는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분수쇼는 오랫동안 품어온 상상보다 소박했고 두바이나 벨라지오 분수쇼의 규모나 화려함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래 전의 대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는 있었다.
사실, 스페인 여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여 년 전 가족과 함께 바람처럼 스치듯 몬주익 언덕을 지나쳤던 기억을 시작으로 수많은 장면들이 순간 정수리를 스쳐 지나갔다. 컴컴한 밤하늘 아래 그때의 기운들을 모조리 부어 놓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지나간 여행들에서 즐기고 버텨낸 수많은 감정을 그곳에 내려놓았다.
그 순간의 기분은 마치 여름을 견뎌낸 가을의 시원한 바람. 혹은 겨울을 이겨낸 따스한 봄 아지랑이 같은 것이었다.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누구나 시한부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간.
분수대의 화려한 불빛 안에
이 세계에서 경험한 모든 기억들이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처럼
세계 3대 분수쇼 바르셀로나 몬주익 분수 영상